let's kick off
나는 카피라이터입니다.
아니, 그냥 그렇게 불리고 싶은 걸 지도요.
실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업무에
내가 콘텐츠 기획자인지 마케터인지 AE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아정체성이 혼란스럽습니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건 불리는 이름이야 어떠하든
남의 니-즈를 분석해
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깔나게 표현해야만
켕기는 구석 없이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남이라는 건 대표님, 직속 상사, 동료들, 광고주,
광고주의 직속상사, 이벤트 참여자 등 셀 수 없지만
내 마음 하나 읽어주는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어떤 브랜드는 ‘마음이 한다’고 말하죠.
또 누군가는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면
기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으면
마음이 하기 전에 퍽퍽한 내 마음이나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데, 너무 큰 욕심일까요?
각설하고 카피라이터 (라고 불리고 싶은 광고인)는
내 마음이 힘들어도 밥값을 하기 위해선
0.1초의 찰나, 스크롤이 내려가기 전
사람들의 머리를 때리는 ‘소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OTT 사이트가 감언이설로
구린 콘텐츠를 보고 싶게끔 하는 것처럼
줘도 안 쓸 상품이라도 사고 싶게끔 설명하는 것.
누가 클릭할까 싶은 배너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
혹은 이와 비슷한 결의 일을 해야만 하죠.
질 좋은 콘텐츠를 국수가락 뽑아내듯 만들어 내려면
마음이 편하고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고인들은 대부분의 나날을 분노에 찬 채 보냅니다.
어떤 실장님은 ‘일 못하는 애랑은 같은 공기도 마시기 싫다’는 이유로,
어떤 후배는 박봉 받으면서 이 업무 저 업무 못해먹겠다는 이유로,
어떤 동료는 코 앞이 발행인데 포토샵이 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광고인은 그렇게 과로와 박봉에 괴로워하면서도
일이 없으면 허전하다는 이유로 워커홀릭을 자처합니다.
MZ 사이에 낀 95년생 낭랑 이십팔세,
어 리틀 꼰대, 내로남불러인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광고인의 안 좋은 프로토타입이란 프로토타입은
싹쓸이해 버무린 존재가 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멋진 광고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 글은
이십팔세 광고인으로 살아가는,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의 기록이 될 듯합니다.
(그 이유는 저도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이 글이 끝날 때쯤이면 또 뭔가를 깨닫겠지요.)
회사에서 ‘톤 앤 매너’ 맞추는 데 이골이 난 저는
이 글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쓰렵니다.
그렇게 이 글이 내 마음 알아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무튼 회사 욕과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아도
우리 중 대부분은 내일 무사히 출근을 해낼 것이며
거뜬히 일주일을 보내고 새로운 달을 맞이하겠죠.
저 또한 그럴 것이며 힘들 때면 여기로 와서
글을 쓸 거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도
이 글이 좋은 친구가 되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