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지 2년 즈음 흘렀을 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한 적이 있다. 책 속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해외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book뿐 아니라 해외배송까지 해가며 온갖 자기계발 책을 공수해 읽었다. 그때 섭렵해 읽었던 책 중 내 마음속 깊숙이 들어온 문장이 있으니 바로 ‘한비야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칭 ‘한비야 키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반해 중문과로 전공을 변경하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했을 때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이었다. 이 책의 소개 글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 구호 활동가로 활동 중인 저자의 중국 생활기. 저자는 7년에 걸친 세계 여행과 국토 종단을 마치고 오로지 중국어 공부만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학원이나 책으로 만나는 중국인이 아닌 생활에서 느끼는 중국 민족을 1년간의 유학 생활에서 꺼내놓았다. 중국의 사계 속에서 느끼고 겪은 가깝고도 따뜻한 일들과 중국을 만나면서 깨달은 저자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문화체험서”
대학생 때 그녀의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울 때는 몰랐는데 머리가 좀 커서 보니,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가 중국에서 경험하고 이룬 것들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비야처럼 멋진 여성이 되겠다며 중국으로 왔지만, 나는 한비야처럼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아둔 돈도 딱히 없었고 중국어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된 것도 아니었다. 그녀처럼 뚜렷한 목표를 갖고 인생을 살지도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하루하루 살기 바빴다. ‘세상에는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 같은데 왜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기비하에서 시작된 의문은 인생에 대한 고찰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때 만난 문장이 바로 ‘한비야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였다. 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 구호 활동가, 오지 여행가, 국제 난민 운동가,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등 그녀의 이력은 참으로 화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처럼 사는 인생만이 ‘잘 사는 인생, 멋진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처럼 어려서부터 뚜렷한 꿈과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또는 여전히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한비야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중 누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대학생 때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와 술잔을 부딪치며 꿈과 진로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너는 좋겠다. 건축과이니까 가야 할 방향이 명확하잖아.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야 그렇지 않아. 우리나 의대처럼 졸업 후 진로가 확실한 전공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똑같아. 오히려 인문계는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지만, 우리야말로 졸업하고 나면 갈 수 있는 길이 한정되어 있는걸. 내가 아는 한 의사는 십 년 넘게 한 길 만 걸어왔는데 문득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대. 다른 일이 해보고 싶은데 한 길만 바라보고 걸어와서 다른 길로 갈 엄두가 안 나더라고 하더라.”
그때는 진로를 걱정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소리라 생각하며 가볍게 흘려버렸던 대화였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그 의사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종종 보아왔다. 그 중에는 한때 일에 대한 꿈과 목표가 분명했던 사람도 있고, 어쩌다 보니 그 일을 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그들을 만나면서 비록 나는 내가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최소한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이 역시 조금은 대견하다 싶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다 할 꿈이 없어 다양한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으니 꿈이 없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신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대통령, 화가, 우주비행사 조금 엉뚱하게 강아지, 꽃이 되는 것이 꿈인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빼고는 우리가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좋은 대학교와 직장에 가기 위해 꿈은 잠시 접어두고 오직 수능 시험 고득점만을 바라보고 공부했으니 말이다. 다른 선진국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탐색하기 위해 다양한 취미 활동과 직업 체험을 한다고 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대학에 가기 전에 갭이어(gap year)라고 하여 1년 정도 여행 또는 인턴 생활을 하며 진로를 탐색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달달 암기하며 공부만 했으니,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일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꿈이나 진로를 향한 뚜렷한 방향이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만일 내가 ‘오직 승무원만이 내 길이야!’라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면 해외 취업과 상하이 생활이라는 멋진 경험을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사팀과 같이 안정적인 부서에서 일하는 것이나 승무원 또는 고객지원일 같은 서비스 업무만이 나한테 잘 맞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면 마케터로 이직을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꿈과 인생에 대한 고찰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내가 추구하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 꿈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다면, 나는 왜 하고 싶은 일이 없을까? 라며 자책하고 있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걱정하지 말라고.
한비야처럼 대단한 꿈을 갖고 인생을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고민하고 분투하며 사는 것 그 자체로도 이미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취업 합격 소식을 받고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7년 이라는 긴 시간을 상하이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치도 못했다. 한 2년 정도 상하이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오겠지 싶었다. 큰 계획 없이 그저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 상하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매력 있었고, 그곳에서의 직장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직장 생활이 재미있을 수 있다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다른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매일 놀이터에 가는 기분으로 직장에 출근하여 일을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렇게 고객지원 말단 직원에서 마케터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비즈니스 매니저로 성장하게 되었다. 확고한 꿈이 없었기에, 남들 다 있다는 그 ‘꿈’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열심히 방황한 덕분이다.
그러니 어차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생, 꿈이 없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어깨에 긴장과 힘을 살짝 빼고, 일단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꿈을 찾게 되지 않을까? 또 꿈이 없다 한들 또 뭐 어떤가? 하나의 꿈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책 <눈 꼭 감고 그냥 시작>
집에 나오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고 타지 생활이 힘들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던 사회 초년생이 외국인 상사의 웬만한 지적 질도 호기롭게 날려버리는 짬빱 제대로 먹은 사회인이 되기까지 이야기를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꿈이 없어 속상하고,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 좌절하고, 타지 생활의 외로움에 지쳐 눈물을 흘렸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했고, 힘든 날 보다 행복한 날들이 훨씬 더 많았기에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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