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의 단짝은 설렁탕
그렇게 첫 설렁탕을 먹었다. /소통의 해장국
음식을 업으로 삼으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사명으로 이런저런 음식들을 먹어보려 애썼다. 그래도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게 고기로 끓인 탕이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특히나 물에 빠진 고기는 더욱 먹기가 힘든 음식이었다.
약간은 우스꽝스럽고 나름 심오한 어릴 적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성인이 되도록 고기를 입에 대질 않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닭장에 닭을 키웠다. 그것도 새까만 오골계였다. 그렇게 오골계는 아버지의 최애 보양식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닭을 닭장에 몰아넣는 건 나의 몫이었다. 그날은 닭들이 닭장에 잘 안 들어가려고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도 약간의 심통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수탉에게 채찍질을 했다. 서너 번의 채찍을 했을 때였다 앞서가던 수탉이 갑자기 날아올라 내 손가락을 쪼아버렸다.
와! 지금도 그때의 공포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른들이 닭대가리, 닭대가리라며 비하하는 말을 자주 쓸 때였다. 나는 철석같이 그 말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닭은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는 그저 식사용인 줄만 알았다. 그랬던 닭이 기분이 나빠서 나를 쪼았다니 정말 다시 생각해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고기류는 일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귀신이 산다’의 영화처럼 정말 집채만 한 수탉이 꿈에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것보다도 나처럼 감정이 있는 동물을 먹는다는 게 도저히 용납이 되질 않았다.
육식을 좋아했던 아버지를 따라서 온 식구가 고기를 좋아했다. 동생들이 고기를 한 점이라도 더 먹기 위해 젓가락 사투를 벌일 때 가끔은 외롭기도 했다. 부모님은 이런 나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애쓰셨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는 매우 완고했다. 아니 완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상한 닭이 자꾸만 떠 올라서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조금씩 육식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핑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닭이나 소, 돼지 등을 떠올리면 젓가락이 다시 내려갔다. 그래서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도 여전히 물에 빠진 고기는 난관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요리를 전공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꿈꿔 볼 조리기능장에 도전하러 상경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거의 종일 기능장 시험 대비용 요리를 배운다. 그렇기에 점심은 학원생분들과 늘 함께했다. 아무래도 기능장 시험이다 보니 학원생분들의 나이가 다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었다. 그래서 점심은 늘 설렁탕이나 국밥이었다. 그중에 설렁탕을 먹으러 가는 날이 훨씬 많았다. 한참 후배인 나는 차마 다른 메뉴를 먹자고 하질 못했다. 또 요리하는 사람이 설렁탕을 못 먹는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용감하게 따라나섰다. 그렇게 첫 설렁탕을 먹었다. 깍두기 국물을 부어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먹다 보니 제법 입맛에 맞았다.
두 번의 도전을 했으나 나는 시험에 붙질 못했다. 일하면서 다시 학원에 다니고 시험에 도전한다는 게 여의치 않았다. 지금도 다시 도전해 볼까 라는 마음의 갈등이 남아있다. 가끔은 그때 먹었던 그 설렁탕 맛이 그리워진다. 또다시 설렁탕을 먹기 위해 다시 학원을 다녀 볼까라는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설렁탕의 참맛을 알아버린 나는 전주의 설렁탕집을 쫓아다니다 드디어 맛집을 찾아냈다. 지금은 가끔 그때의 설렁탕 맛이 생각나면 꼭 그 집에 들른다. 서울에서 먹었던 깍두기는 없지만 전라도 스타일의 젓갈 향이 가득한 뻘건 김치와 무김치가 제법 맛있다.
이렇게 먹기 시작했던 설렁탕은 나의 영어 선생님과의 소통을 수월하게 해 주었다. 미국인인 그는 한국 음식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설렁탕이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브런치나 파스타를 먹으러 갈까 하면 시큰둥한 그가 설렁탕이나 국밥을 먹자고 하면 반가워한다.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설렁탕에 소면까지 말아 후루룩 후루룩 먹는 외국인이 신기한지 힐끗힐끗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친구는 한국에 완벽적응했는지 설렁탕이 나오기 전에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먼저 먹고 탕이 나오면 국물을 먹는다. 나보다도 김치와 깍두기를 많이 먹기도 한다.
설렁탕을 먹으면서 나는 단어로 소통하는 짧은 영어지만 설렁탕의 역사와 내가 설렁탕을 먹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설렁탕이 서울의 향토음식이자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던 제에 쓰이던 음식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열심히 들어주고 재밌어하던데 다 알아듣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차 그의 전공은 히스토리라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음식에 관련된 역사도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유창한 영어로 그에게 더 많은 음식 역사를 설명해 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더불어 설렁탕의 단짝인 깍두기도 함께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