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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Jan 31. 2024

물에 빠진 고기는 싫지만, 물에 빠진 갈비탕은 좋아요.

갈비탕 먹기는 딱 좋은 계절이다/소통의 해장국

 물에 빠진 고기를 싫어한다고 했건만 이율배반적으로 갈비탕은 먹었다. 굳이 말도 안 될 것 같은 변명을 대자면 갈비탕의 고기는 씹는 맛, 뜯는 맛이 있다. 또 파 송송 띄운 맑은 국물이 정말 담백하고 개운하다. 특히나 찬 바람 불어오는 계절에 하얀 쌀밥 한 그릇을 갈비탕 국물에 말아먹으면 속이 정말 든든하다. 어쩌면 대추, 인삼, 은행, 지단 등이 들어간 갈비탕이 영양학적으로 우수할 것 같은 생각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갈비탕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나름 고급 메뉴인 갈비탕을 젊은 시절부터 즐겨 먹진 않았을 터이다. 그러다 생각의 끝에서 결혼식장이 떠올랐다. 맞다! 결혼식장의 갈비탕이 나의 처음 시작이었던 것이다. 요즘 결혼식장의 음식은 대부분 뷔페이지만 예전에는 갈비탕을 대접하고는 했다. 물론 요즘도 가끔 갈비탕 정식 같은 한상차림을 주거나 뷔페 음식들 사이에 갈비탕이 함께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잔치 음식에서 국수가 빠지질 않았다. 또 결혼 언제 할 거냐는 표현으로 “국수 언제 먹여 줄 거냐?"라는 표현을 공공연하게 쓰질 않는가. 기다란 국수 모양 때문에 무병장수와 오래도록 좋은 인연을 맺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대략 고려 시대부터 먹었던 국수는 매우 귀한 음식 중 하나였다. 또 나라나 집안의 대소사에 쓰인 음식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밀가루 자체가 귀하니 자연스레 국수도 귀한 대접을 받을 터이다. 그러던 밀가루가 한때는 미국에서 원조해주기도 했고, 지금은 흔한 식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 당연스럽게 국수도 이제는 대중적인 음식 중에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국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다 보니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는 부족하게 생각되었고, 자연스레 갈비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결혼이란 큰 잔치에서 당연히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시에 비싼 소고기 갈비탕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 한다. 시대에 따라 손님에게 귀한 음식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막상 국수 먹여달라 해놓고 갈비탕이나 뷔페를 먹는 요즘이나 물에 빠진 고기는 안 먹는다고  해놓고 갈비탕은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비슷하다고 우겨보고 싶다. 사실 어쩌면 나도 평상시에 잘 먹지 못하던 비싼 소고기 갈비탕을 먹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먹기 시작한 갈비탕은 이제 쌀쌀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예전의 갈비탕은 갈비를 오래 끓여 고기의 구수함과 담백한 맛이 위주였다. 요즘은 인삼, 대추, 은행, 잣 등을 넣기도 하고 전복이나 낙지 같은 해산물을 넣기도 한다. 또 뼈대 엄청 크고 굵은 왕갈비탕이라는 것도 있다. 고기만으로는 부족한 비타민이나 식이섬유를 채울 수 있는 우거지를 넣은 우거지갈비탕도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 인기라고도 한다.    

  

 갈비탕은 고기도 있지만 뼈가 많으므로 오래 고아야 그 맛이 진해진다. 그래야만 뼈에서 살이 잘 분리되고 고기도 부드러워져 씹기에도 편하다. 나는 이렇게 오래 끓이는 정성을 다 할 수 없을 때는 압력밥솥에 한 번 찐 후, 간을 하고 다시 살짝 끓이기도 한다. 깊은 맛은 조금 덜해도 뼈에서 고기가 잘 분리되고 식감도 부드러워져서 좋다.

    

 가끔은 서로 음식을 가지러 가느라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고 식사만 하고 끝나는 결혼식 뷔페보다 4인이 한 상에 앉아 갈비탕을 기다리던 때가 그립니다. 그 참에 이런저런 안부도 묻고 화기애애 웃음소리 넘쳐나던 그때가 말이다. 때로는 친척 어르신과의 합석도, 의미 없는 질문들에 답하는 것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도 결혼식 뷔페 음식에 갈비탕과 국수를 발견하면 무조건 들고 온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결혼식에는 국수지, 갈비탕이지 하면서 조용히 눈웃음 주고받는다. 이제 이런 걸 잘 알면 많은 세월을 보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뜬금없지만 국수가 됐든, 갈비탕이 됐든, 뷔페가 됐든 결혼식장에서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기회들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본다.    


결혼식장은 또 하나의 소통의 장이기도 했으니깐 말이다. 그 중심에서 우리의 갈비탕도 한몫을 해왔다.


1월, 결혼식은 어떨는지 몰라도 갈비탕 먹기는 딱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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