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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맨 Oct 24. 2021

러시아 친구들을 사귀다

블라디보스톡 여행 동호회 친구들과의 만남

“저녁 6시 30분까지 버스정류장 근처에 카와이라는 일본 식당이 있어. 거기에서 만나자.”

유심카드를 구매하고 휴대폰을 켜니 일마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다. 블라디보스톡 카우치서핑 친구들 이란 이름으로 페이스북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일마. 그녀와 친구들의 정기모임이 있는 날인데 우리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 


“오빠, 처음에 러시아 올 때 바짝 쫄았던거 웃기제? 오자마자 우리 이렇게 친구도 사귀고 나는 벌써부터 러시아가 제2의 고향 같은데?”

“아니 내가 쫄기는 언제 쫄았다고 그라노.”

“택시 안에서 긴장한 거 다 봤거든?”


눈치 100단인 아내는 모르는 게 없다. 부산에서 러시아로 건너오는 비행기에서 북한을 지나올 때 미사일 쏘는 거 아니냐며 염려하는 나에게 어차피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죽는데 그게 오늘은 아닌 것 같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좀 쉬라며 잠을 청하는 그녀. 확실히 나보다 강심장이다. 


유진과 헤어진 뒤 우리는 카와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일마는 업무를 마감하고 오느라 조금 늦는다고 했다. 식당 안에는 먼저 온 친구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하이! 썬맨 앤 조이 나는 나스텐카라고 해. 일마의 친구야.”

“하이 나는 다니엘이야.”

“하이 나는 아티라고 해.”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주는 장점 중의 하나는 온라인으로 맺어진 사전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을 때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친근함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일마는 미리 우리에 대한 자료를 페이스북 그룹에 공유해 주었고, 만나자마자 친구들은 우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카우치서핑 그룹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이고, 우리처럼 본인들의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다른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고 친구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재미있는 모임이었다. 손님을 공유함으로 여행의 기분을 함께 느끼도록 하다니, 이 또한 공유경제의 좋은 사례구만. 


일을 마치고 온 일마도 합류했다. 모임에서 맏언니이자 리더의 역할을 하는 그녀의 등장에 다들 반가워 했다. 아내는 금방 사람들과 친해졌다.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하며 반겨주는 분위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입이 귀에 걸려 함박웃음이 되었다. 그런 아내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 모인 친구들은 굳이 설명하자면 얼리어답터들이라고 할까?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를 신기해하며 우리 여행에 대한 질문세례가 이어졌다. 


“우와 그럼 부부가 같이 세계여행을 하는 거야?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걸 경험해보고 싶어?”

“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는 어디야?”


순식간에 아내와 나는 청문회에 온듯한 상황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질문들이 이어졌고 우리는 어설픈 영어지만 차근차근 우리의 여행 계획을 들려주었다. 청문회는 보통 잘못에 대해 추궁하는 분위기지만 이 청문회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은 팬들로 가득한 팬미팅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과정이 난감하거나 곤란하지 않고 즐거웠다. 친구들은 마치 자기들이 여행을 갈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턱을 괴고 상상에 빠졌다. 


낯선 여행지에서 하나, 둘 친구를 사귀어가는 재미라니,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라며 아내와 키득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제안했다. 


“두 사람한테 진정한 블라디를 보여주자.”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러시아 친구들은 앞장섰고 아내와 나는 진정한 블라디가 뭔지 궁금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그들이 안내하는 곳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언덕이었다. 아마 우리에게 본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경치를 보여주려 한 것 같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정상으로 가는 길은 철조망으로 막혀있었고, 중간쯤 올라가다 다시 내려와야 했다. 


걸어오는 내내 아내와 나스텐카가 꿈에 대해서 조잘거리는걸 보았다. 그녀도 우리의 꿈프로젝트와 같은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 신기한 마음과 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를 손님으로 생각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씨에 이미 감동을 했기 때문에 정상에서 좋은 경치를 보는 것쯤은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다. 


내려오는 길 누군가가 지름길이라며 안내한 길이 암벽등반 수준의 험난한 산길이었고 예상치도 못한 등반에 우리는 웃고 넘어지고 손잡아주고 감동의 조직력을 구사하며 겨우 내려왔지만 다 괜찮았다. 진정한 여행 이야기는 고생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이런 고생의 추억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함께 고생해도 즐거울 수 있는 것. 직장에서의 조직생활이 이런 분위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카우치 호스트 일마가 소개해 준 러시아 친구들
여성팀 촬영
헤어질 생각을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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