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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맨 Oct 24. 2021

응. 내 이름은 보바

러시아 친구 바보 아; 아니 보바 이야기

“안녕, 내 이름은 보바라고해.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하하하.”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마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기대하라고 했다. 기대했던 그가 나타났다. IT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유쾌한 러시아인 보바.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의 말재간은 주변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인생은 말이야. 어차피 한번 살다가 가는 짧은 시간이야. 그런데 인상 찌푸리고 힘들게 살아갈 필요가 없잖아? 웃으면서 즐기면서 살기에도 할 일이 너무 많다고.”


그의 강렬한 신념과 재잘대는 말솜씨에 처음에는 뭔가에 홀린 사기꾼 같은 사람 아닌가? 싶었는데 점점 빠져들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컴퓨터 설비 관련 사업이었지만 그는 우리에게 사람들에게 해피바이러스가 되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컴퓨터를 설치하면 빨리 전염되도록 해피바이러스를 심어놓는다는 농담까지 빼먹지 않은 그는 센스쟁이. 


원래 우리는 러시아의 백야현상을 보여주겠다는 일마의 안내로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진 치고 앉아있었다. 백야현상이란 지구의 자전축과 가까운 위도가 높은 극지방에서 여름 동안 밤이 되었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백야라는 표현은 주로 러시아에서 쓰는 표현이고 스웨덴 등 다른 지방에서는 이를 ‘한밤의 태양’으로 부른다고 한다. 주로 6월 말부터 3개월간 지속되는 백야현상은 12시가 되어도 낮처럼 환하게 해가 떠있다고 한다. 이를 활용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에서는 매년 동유럽 최대 수준의 백야축제를 연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도 백야를 체험할 수 있다는 일마의 말에 기대감이 잔뜩 생긴 우리. 8시가 넘었는데도 한낮처럼 밝았다. 


백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보바의 쉴틈 없는 개그 시도로 우리 테이블 분위기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 한국에 여행 와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보바의 말에 귀띔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보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들어야 돼. 한국에 여행 와서 친구들을 사귈 때 니 이름을 소개하면 한국 친구들이 웃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해해야 돼.”

“왜 웃는 거야?”

“한국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데, 바보를 거꾸로 하면 보바거든. 그래서 보바라고 말하면 머릿속으로 바보를 연상하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나쁜 뜻으로 웃는 건 아니니깐 네가 미리 알고 있으면 오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오 그러면 내 이름이 한번 말해도 한국사람들은 다 기억할 정도로 특별하다는 거잖아? 좋은데 이거?”


혹시 이 친구, 정말 바보는 아니겠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보바정도의 멘탈이라면 어지간한 인생의 고난이 닥쳐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과 반응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지나치게 타인 의존적인 우리의 삶의 모습에 보바와 같은 뚜렷한 주관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11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한낮이다. 시계를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와 일마 이게 정말 현실 맞는 거지? 내가 시계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게 맞는 거지? 어떻게 밤 11시가 되었는데 한낮 같지?”

아내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거렸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거야. 우리는 여름 시즌이 되면 해가 길어지거든. 그래서 일을 마치고도 한낮처럼 여가를 즐길 수가 있어. 하지만 이제 금방 해가 질 거야. 다른 지방에는 더 늦게까지 해가 떠있는 곳도 있는데 여기는 그래도 늦게나마 지는 편이거든.”


11시까지 한낮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밝았던 세상은 이후 30분 만에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런 현상을 처음 보는 우리에겐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낮을 멈춰놨다가 갑자기 밤으로 바꾼 것 같은 마법같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지평선 뒤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 장황한 광경에 일마도, 보바도, 함께 온 보바친구도, 아내도, 나도 할 말을 잃고 황홀함에 젖어들었다.


“여보, 참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일들이 많다 그렇지?”



개그왕 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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