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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라이벌

2부. 꿈꾸는 사자의 도전

by 앤드장

합병 후, 인연이 다한 직원은 자신의 둥지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고, 그 자리엔 또다시 새사람으로 채워진다.

매년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들, 사람이라는 게 틈을 메꾸다가 닳으면 새로 갈아지는 부속품처럼 사용되고 그나마 남아 있으려 갖은 모욕을 참고 자존심을 팔며, 배신을 일삼으며 버티는 사람들.

지아미디어가 합병되면서 디자인팀은 해체되었다.

합병 전 전략팀이 분석하면서 대아그룹에는 디자인팀은 맞지 않는다는 판단과 김완태 실장이 퇴사하니 팀장이던 정미정 과장도 함께 자진 퇴사하면서 나머지 인력을 디자인이 아닌 다른 부서에 배치하고 팀을 없애버린 것이다. 디자인 직업을 가진 인력들이 자신의 특기와 무관한 부서에 배치된 것이다.

모양도 보지 않고 엉뚱한 곳에 부품을 억지로 끼워 놓은 꼴이다.

장민호 팀장과 김기만 팀장도 합병이 되며 팀장 직책이 아닌 전략팀에 과장으로 임시로 소속되어 대기 아닌 대기를 하고 있다.

우호적 합병이라지만, 매출 감소로 인한 축소되는 상황으로 기존 조직에 껴 맞춰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부분 손해를 감내해야 했고 좋을 수가 없었다.

김기만 과장은 다시 온 본사에서 본부장의 시종처럼 종이 언제 울릴까 노심초사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번 기회를 꽉 잡을 심산이다.

이강 본부장에게 신임을 받아 팀장이 된 박영진이란 녀석이 있지만, 그런 녀석은 자신과 같은 부류라 상대하는 건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김 과장의 눈에는 이곳에서 인연이란 악연밖에 없다.

밟고 올라서거나 이용하는 사람밖에 없는 곳, 선수를 치지 않으면 자신이 당하는 정글이나 다름없는 곳, 앞에서 웃고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곳, 자신을 보일 수 없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는 곳,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곳, 오로지 돈과 성공을 위해 다니는 곳이 대기업을 다니는 김 과장이 생각하는 직장인의 모습이다.

민호는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스스로는 소통이 잘 된다 생각했거늘, 이곳 대기업의 전략팀에 오니 생각과는 더욱 다른 듯하다. 온통 경쟁자들만 있는 것처럼 일하는 모습이 치열하다 못해 살벌하다.

급하게 돌아가는 이런 분위기에 어떨 때는 숨쉬기도 가쁘고 함께 일하는 게 쉽지 않다.

민호는 이전 회사들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이곳, 대기업에는 없다는 핑계를 대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적응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대기업이라지만 사람이 살고 일하는 게 거기서 거기라 생각하는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전략팀 사람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는 거 같다.

‘혹시, 이곳에서도 나만 모르는 게 있는 건가?’

민호는 한편으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아 그룹에는 두 개의 큰 라인이 존재한다.

회장의 아들인 젊은 박철중 사장과 전문 경영인 이강 본부장이다.

대외적으로는 삼촌과 조카처럼 둘은 친해 보이지만, 회장 아들인 사장은 비서실을 이끌고 이강 본부장은 전략실을 이끌고 있는데 두 부서가 라이벌 구도로 움직이며 서로 앙숙이다.

이곳의 비서실은 여느 비서실과 다르게 그룹 내에서 가장 엘리트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회장이 다음 승계를 위해 아들의 경험과 세력을 키워주고자 비서실이라는 그룹으로 특별하게 조직했다.

사실상 비서 일을 하는 게 아닌, 기업의 촉망받은 인재들을 모아 놓은 브레인 집단인 셈이다.

지금껏 브레인 역할은 이강 본부장이 이끌고 있는 전략팀이 담당해 왔다.

이강 본부장의 지휘 아래, 무리 없이 기업의 이미지와 전체적인 사업을 기획하며 리딩을 해왔는데 지아미디어가 생기며 사장의 비서실도 함께 신설됐다.

비서실은 지아미디어를 관리하고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신설됐지만, 진행하는 일은 전략팀과 겹쳐지는 게 많았다.

그러면서 양 부서 간 여러 번 트러블이 발생했고, 서로 니일, 내일 하는 일도 잦아지며 앙숙처럼 돼버렸다.

부서 간 보이지 않는 경쟁과 힘겨루기로 팽팽하게 긴장감이 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기가 흐르는 전략팀에 아무것도 모르는 민호가 배치된 것이다.

사장은 비서실에 뛰어난 인재가 많으나 리더십이 부족해서 그들을 잘 활용하질 못하는 반면, 본부장은 그만의 오래된 노하우로 인재를 바로 알아봤고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본부장은 직원들의 신뢰가 두터워지는 반면, 비서실 직원들은 사장의 부서라는 자존심만으로 전략팀을 무시하며 물 말아진 그릇에 둥둥 떠다니는 제각각의 밥알처럼 상호 협력이 안 됐고 적응을 못하여 걱정과 불만이 쌓여만 가면서 점차 사장에 대한 불만도 커져만 갔다.

그러나, 사장은 자신의 리더십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고 항상 직원이 전략실의 직원들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회장에게 칭찬을 듣고 신뢰를 쌓아서 빨리 인정을 받고 싶은데 자신을 보좌할 제대로 된 아랫사람이 없는 것이다.

라이벌인 본부장을 이겨야 회장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지아미디어의 사업도 합병으로 매듭지어지며 회장에게 신뢰를 잃고 본부장에게 져버린 기분이다.

그동안 한 번도 이강 본부장을 이기지 못했고 이강이라는 사람이 박철중 사장에게는 두터운 바위처럼 느껴졌다.

자신은 매일 깨지는 계란 같고.


전략실의 오래된 직원들은 모이면 비밀스럽게 이야기 나눈다.

요즘 어느 세상인데 가족끼리 권한 승계냐며 회장 후임은 똑똑하고 회사를 대표하는 이강 본부장이 되어야 한다고….

이런 분위기에 양아치 같은 김기만 과장과 못 보던 장민호 과장이 임시로 전략팀으로 들어온 것이다.

전략팀 직원들은 전략팀에는 아무나 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며 그 둘을 지켜보고 있다.


김기만 과장은 이미 안면이 있는 인물이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물로 여러 직원이 그의 이간질로 오해와 고통을 경험한 게 소문나 있다.

서울 변두리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에 운 좋게 입사하여 남보다 빠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하며 자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지켜보는 직원들은 그가 성실하고 알차게 보내는 게 아닌, 보이기 위한 쇼라는 걸 안다. 항상 빨리 출근한다는 걸 표시 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사내 메신저에 글을 올린다. 내용은 아무것도 아닌데 꼭 무슨 일 있는 것처럼, ‘나 이렇게 아침 일찍 출근했네~’를 알리는 쇼잉이다.

그로 인해 다른 직원들은 아침부터 전두엽에선 좋지 않은 생각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객관성 없는 자신의 생각을 퍼 나르니,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사실 확인을 해 보면 그의 말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그는 성실하고 열심히인 사람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여타 직원들에게 그는 피하고 싶은 인물이다.

엮어서 좋을 게 전혀 없는,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닌, 더러워서 피하는 똥 같은 존재로 그를 멀리하고 있다.

그런 양치기 소년 같은 김기만 과장과 함께 처음 보는 장민호 과장이란 자가 들어왔다.

다들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치부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김기만 과장이 장민호 과장을 영입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 낯선 전략팀에 김기만 과장과 함께 들어와서 그를 동료로 생각하는 민호는 그래도 의지가 된다.

그러나 김기만 과장은 경험 있는 본사 생활이라, 함께 들어온 장민호 과장이 자신과 비교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경쟁자로 벌써부터 경계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민호 과장이 자꾸 친한 척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 웃으며 그를 바라보지만 ‘상황 파악도 못하는 멍청한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김기만 과장은 못마땅하지만, 이곳의 팀장인 박영진 과장이 업무를 지시하면 장민호 과장보다 먼저 나서서 선수를 친다.

그것도 모르고 장민호 과장은 자신을 돕는 걸로 착각한다.

어느 날은 “잘 몰라서 그 일 하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처리해 줘서 고맙다.”며 커피를 건넨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다.

순진한 건지, 착한 건지, 자신과 너무 다른 장민호 과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은 라이벌로, 한 사람은 동료로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호는 냇가에서 종이배로 놀다 어느새 바다로 나와 물에 젖고 있는 것도 모르고 위태롭게 그 종이배 위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공동체에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라이벌과 동료로 복잡하게 얽혀 라인이 길게 늘어서 있다.

득실에 따라 이 라인, 저 라인으로 옮겨 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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