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꿈꾸는 사자의 도전
김완태 실장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왠지 코너로 몰리는 느낌이 든다.
분명 본부장이 자신을 자주 찾아야 하는데 도통 부르질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김 실장은 불안하다.
수소문에 능한 김 팀장을 불러 정황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김기만 팀장은 김 실장이 자꾸 부르는 것이 탐탁지가 않다.
그동안 김 실장 주변에서 그의 신뢰를 쌓기 위해 무슨 일이건 마다하지 않고 해 왔지만 합병된다는 소문이 도는 마당에 힘 빠진 김 실장의 뒤에 서 있는 게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장 팀장이 없어지길 바랐지만 예기치 않게 갑자기 타 부서로 전출되고, 돌아가는 상황이 소문이 사실 같다.
그렇게 되면 김 실장도 별 볼 일 없으니 라인을 바꿔 타야겠단 생각을 하는 중인데 자꾸 불러댄다.
“실장님, 찾으셨어요?”
“어, 그래 김 팀장. 바쁜가? 요즘은 얼굴 보기 힘들구만.”
“아, 네 좀 바쁘네요. 무슨 일로?”
“요즘 직원들 잘 지내지?”
“저도 모르죠. 다른 직원들을 제가 어떻게 알아요. 실장님.”
예전 같으면 묻기 전에 귀찮을 정도로 한 명 한 명 세세하게 보고하던 녀석이 저렇게 무심하게 받아친다.
‘뭔가 잘못되고 있군.’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그래? 최 팀장 불러서 물어봐야겠구만, 알았어 나가 봐~”
“네~에.”
“이 자식 봐라.”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살갑게 대하던 예전 같지 않고 무뚝뚝한 김 팀장이 괘심하다.
이번엔 장 팀장을 부른다.
‘부서 이동까지 했는데 김 실장이 나를 왜 부르는 거지? 혹시 보고서가 탈로 난 건가?’ 민호는 불안하다.
“부르셨어요?”
“어, 그래. 장 팀장. 잘 지내지? 타 부서로 보내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늦었지만 미안해서 불렀네. 걱정도 되고. 거긴 어떤가?”
‘진심이야? 왜 저러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강 본부장님은 어떤가?”
“좋으신 분 같습니다.”
“그래? 보고서는 잘 전달했고?”
“아. 네.” 민호는 흠칫 당황한다.
‘이상하다. 그런데 왜 날 안 찾지? 올해 실적이랑 사업이 궁금할 텐데. 차주 연례회의 때 보게 되니 그때 이야기 좀 해봐야겠군.’
“알았네. 가서 일 보게.”
밖으로 나오며 민호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숨을 길게 내쉰다.
12월 추운 날씨지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여기저기 캐럴이 울려 퍼지고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다.
1년을 정리하는 연말 연례 회의가 열리는 날, 임직원들이 모처럼 대강당에 모여든다.
강당의 높은 공간으로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울려 더욱 분주하고 시끌벅적하게 느껴진다.
주요 임직원들은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강 본부장이 앉아 있는 걸 확인한 김 실장은 옆자리가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 잽싸게 착석한다.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이제야 이강 본부장은 본인이 대적할 상대가 아닌, 잘 보여야 하는 상사라는 걸 느끼고 자세를 낮추고 있다.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아, 네.”
“지아미디어 업무는 다 파악이 되셨습니까? 뭐, 궁금한 게 없으신가요?”
“아, 잠시 후에 발표가 있을 겁니다. 그때 이야기하시죠.”
“네, 본부장님.”
사내 경영이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연례 회의에 모여주신 임직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순서는 올 한 해 업무 실적 발표와 내년도 사업 방향에 대해 차례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김 실장은 뻔한 이야기가 지루하다. 얼마 전 김 팀장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지아미디어의 실적도 발표가 될 것이다.
“올해 지아미디어는 실적이 목표 대비 마이너스 50%입니다.”
‘헐, 뭐지? 플러스로 보고했는데 어찌 된 것이지?’ 김 실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본사에 합병되어 운영하게 되었음을 공지드립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지아미디어의 우두머리인 나도 모르게 이런 발표를 하다니, 이강 본부장 무슨 일을 꾸민 것이야?’
“본부장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네, 보고된 것처럼 실적이 너무 안 좋아서 저런 결정을 하게 됐으니 실장님도 잘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제길’
“… 네.”
사무실로 돌아온 김 실장은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다.
‘어찌 된 거지? 분명 장 팀장이 본부장 옆에서 무슨 짓을 했을 거야. 이미 엎어진 물이라 담을 수도 없고 둘이 붙여놓은 게 잘못이지.’
합병이 되면 김 실장은 설자리가 없게 되고 얼마 후에 인사 발표가 날 것이다.
사실 김 실장이 실적 보고 문서 작성 시 김 팀장의 도움을 받아 함께 작성했다.
발표된 대로 실적은 마이너스 50%로 참담했다. 이걸 그대로 보고하면 안 된다고 옆에서 부채질한 게 김 팀장이다. 그리곤 김 팀장은 본부장의 라인을 잡을 생각으로 사실 문서를 들고 몰래 이강 본부장에게 따로 보고를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뒤통수를 친 것이다.
김 실장은 김 팀장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못하고 민호만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후, 지아미디어의 조직이 대아그룹에 전체 흡수가 되면서 조직 구성도 모두 바뀌었다.
김 실장은 팀장으로 강등되고, 이에 이강 본부장실로 달려간다.
“본부장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김 실장님, 그럼 어떻게 실적 보고서를 거짓으로 보고할 수 있습니까?”
“김 팀장 아니었으면 속을 뻔했어요. 제가 어떻게 김 실장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팀장도 다행인 줄 아세요.”
‘김 팀장, 이 자식’ 김 실장은 혈압이 올라 목덜미가 뻐근해짐을 느낀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혔다. 생각해 보니 어쩐지 얼마 전부터 김 팀장의 태도가 이상하긴 했었다.
“아, 아~~.”
김 실장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러 주저앉을 뻔했다.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이제 동지도 없고 설 자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를 다니는 것도 창피스럽다.
합병 발표 후 고민했지만, 이젠 그만두어야겠다고 확실히 결심한다.
김 실장의 출근 마지막 날,
짐을 싸고 있다.
장 팀장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실장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장 팀장, 와줘서 고맙네. 그리고, 미안하네.”
김 실장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끔 이상한 말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자신도 잘한 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채용한 상관이 떠나감에 아쉬움과 허전함이 몰려온다.
민호는 순간, 심한 갈증이 올라와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김 팀장은 김 실장의 퇴사에 본인이 한몫했단 생각에 뿌듯하다.
그것보다도 이강 본부장의 신임을 얻었단 생각에서다.
보고 이후 본부장이 자주 자신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이제야 라인을 제대로 잡은 느낌이다. 이제 다시 본사로 복귀했으니 다시 시작이라 생각하며 다짐한다.
‘이젠 다신 줄을 놓지 않으리라.’
민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조건 상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이런 대기업의 시스템에 반감이 든다.
이곳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커 보이고 하루하루 발전하는 게 아닌 오히려 퇴보되는 느낌이다.
하는 일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대기업이란 곳은 그가 생각하는 일보다 거대한 시스템이 더 중요하고 동료를 경쟁자로만 바라보게 되는 적들이 가득한 곳인 것이다.
김 팀장은 본부장의 사건으로 열의가 들어찼지만, 민호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