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꿈꾸는 사자의 도전
두 개의 보고서를 작성 중인 민호.
하나는 김 실장용이고, 하나는 이강 본부장용이다.
현재 상황을 사실대로 작성하면 김 실장이 본부장에게 보고를 못하게 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거짓으로 이강 본부장에게 보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각기 다른 두 개의 보고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작성 중이다.
하나는 회사소개서처럼 일반적인 문서를 준비하고, 다른 하나는 팀 내 문제점과 실력이 아닌, 말과 아첨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에 대하여,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자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문화이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미 퇴사한 주연 대리가 나가게 된 경위까지 상세하게 적었다.
누가 보면 보고서라기보다 상소문에 가까워 보이는 내용이다.
민호는 회사 소개서는 두 명 모두에게 보내고 상소문은 본부장에게만 보냈다.
메일의 내용을 본 본부장이 장 팀장을 부른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인가?”
“네.”
민호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한다.
“자네를 우선 부서 이동시키겠네. 일단 임시로 조직된 전략팀으로 들어오게.”
본부장의 세상에 들어오니 그의 주변엔 따르는 사람이 많다.
경계하는 눈빛들, 동료인가? 경쟁자인가?
순간 뇌리를 때리는 생각.
‘앗, 라인에 서게 된 것인가?’
이강 본부장의 동아줄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잡아버린 것이다.
전략팀은 본부장이 지아미디어에 파견을 나오며 함께 온 인력들과 새로 입사한 인재들로 급하게, 임시로 꾸려졌다.
소속된 대부분의 인원의 학력이 SKY로 스마트한 모습에 일 처리 또한, 능수능란해 보인다.
이강 본부장의 잘해주라는 말에 민호를 웃으며 대하는 동료들.
민호는 오랜만에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일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들과는 가까워지지 않고 그 친절이 민호 앞에서만 나오는 가짜라는 걸 느낀다.
그들만의 플레이 그라운드에 민호는 잠깐 날아온 짱돌인 것이다. 어차피 튕겨져 나갈 돌멩이.
민호의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 후 이 때다 싶게 정미정 과장이 바로 팀장으로 승진되어 디자인팀으로 다신 돌아갈 수 없다.
이젠, 전략팀에서 자리 잡아야 하는데 혼자서 다른 인종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소외감에, 힘들었지만 디자인 팀장 시절이 잠깐씩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전략팀이 낯설지만 민호는 특기를 살려 업무를 맡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학력은 모자라지만, 본부장과 함께 한다는 자부심과 열망으로 그들과 라인에 함께 서서 시나브로 경쟁하고 있다.
민호가 보고할 게 있어 본부장의 사무실에 들른 어느 날, 온갖 서류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잡동사니 또한 많지만 치우는 걸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놔둔 채 본부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용건이 있다며 전략팀 박영진 과장이 들어와서는 잠시 뒤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어라, 함께 치울까 말까? 사나이가 줏대가 있어야지’ 휴대폰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로 한다.
얼마 후 이강 본부장이 사무실에 들어오며 보니 박 과장은 걸레를 들고 책상을 닦고 있고 장 과장은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사진처럼 눈에 들어온다.
‘이상하군. 반대의 그림이어야 내 생각과 맞는데?’
“먼지 날리게 웬 청소야. 그만두게.”
“기다리기 지루해서 몸 좀 풀었습니다. 본부장님.”
기다렸다는 듯이 아부 기질이 다분한 박 과장이 너스레를 떤다. 때맞춰 본부장이 들어오니 이때다 싶었다.
“서류 때문에 잠깐 들른 거라, 급한 게 아니면 다음에 보게들. 난 바빠서 다시 나가네.” 서류를 찾아들고 바로 나가는 본부장.
박 과장은 하던 청소를 계속한다.
“청소하지 말라잖아, 박 과장. 난 먼저 가네.”
민호는 청소하는 박 과장이 신경 쓰였으나, 본부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사무실을 나간다.
본부장은 늦은 시간 사무실에 돌아와서 깨끗해진 사무실을 보며 흐뭇해한다.
줄이라는 것도 모르고 아부 기질도 융통성도 없는 장 민호.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만 할 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인데 너무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럽다.
특히, 이런 대기업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런 것이 영향력이고 힘의 흐름을 이끌 수 있다고 본부장은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곳에선 청소하는 행위도 그를 위하는 마음이고 충성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했다.
기업이라는 곳, 사회라는 곳을 생각해 봐야 했다.
민호에게는 본부장은 하나였지만, 본부장에겐 민호는 여러 부하 직원 중의 하나였고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본부장에게는 설사 자신의 잘못된 말에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믿음직한 부하가 필요했다.
그러나, 민호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할 그릇이 아닌, 자립심 강한 리더형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강 본부장은 자신과 비슷한 기질의 민호는 맘에 들었지만, 태양은 둘일 수는 없었다.
그는 그의 길을 갈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아쉽지만, 본부장은 박영진 과장을 주로 불렀다.
민호는 그것도 모르고 본부장이 자신보다 박 과장을 찾는 것에 서운함을 느꼈다.
‘본부장님이 왜?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왔건만, 박 과장보다 부족한 게 무엇인가?’ 존경하는 이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서글픔과 자조 섞인 자책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아첨 같아도 방 청소를 했어야 했나? 아니지, 그건’ 민호는 청소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다 얼마 전에 꾸었던 사자 꿈이 떠오른다.
“그 빛이 본부장님이었던 걸까?”
민호는 꿈에서처럼 언제나 이강 본부장을 바라보고 있겠다고 생각하며 인연이면 또다시 기회는 있을 거란 생각으로 이내 미련을 떨쳐버린다.
그러나, 본부장의 생각처럼 이곳의 리더는 하나면 족했다.
사자와 호랑이는 사는 환경도 행동 양상도 달라 함께 살 수가 없다.
꿈에서도 결국은 그 빛을 만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