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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하룻강아지와 범

2부. 꿈꾸는 사자의 도전

by 앤드장

김완태 실장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마지막으로 장 팀장까지 내보내면 이제 부서 내 사람 정리가 끝나고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본사와 합병된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돈다.

사람을 솎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오래 걸리는 바람에 김 실장은 한동안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터라 합병설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린 사장이 김 실장을 부른다.

충실한 개인 양, 늙은 하이에나가 잽싸게 사장실로 달려간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무슨 일 있습니까?”

“인사하세요. 이쪽은 이강 본부장입니다.”

“저희 실적이 좋지 않아서 본사에서 지원 인력으로 오셨습니다. 여기 본부장님이 지아미디어를 당분간 총괄하실 겁니다. 실장님이 잘 도와주세요.”

“네.”

김 실장은 태연한 척 가볍게 대답한다.

그러나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몹시 당황했음을 알 수 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이강 본부장과 눈이 마주친다.

김완태 실장보다 네 살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동안인 덕에 강산이 변할 만큼 한참 어린 사람처럼 보인다.

김 실장은 자신만의 아지트를 거의 완성해 가는데 웬 훼방꾼이 불쑥 나타났다고 편협한 생각을 한다.

‘어린놈이 어딜’ 김 실장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있다.


이강 본부장은 사실 본사에서 파견 나온 전문경영인이다.

합병 전에 그룹을 파악하고 평가해서 기업의 방향을 계획하는 전략팀의 요직 인사다.

직책에 걸맞게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옛 위인 중에 똑똑하고 총명한 오성과 한음이, 현대적으로 이야기하면 영특한 명탐정 코난의 이미지가 떠오를 만큼 총명해 보이고 예의 바른 모습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아그룹에 평직원으로 입사하여 직장 생활과 학업을 계속 병행하며 자기 계발에 게을리하지 않고 커리어를 키워온 근면 성실한 인재로 차곡차곡 성장하고 있는 전도양양한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함께 고생하며 지내온 동료와 후배들이 즐비했으며 그야말로 대아그룹의 인싸 중의 핵인싸에 해당하는 인물로 이십여 년의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이젠 기업의 중요한 일에는 꼭 참여하는 핵심 인물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다 인정하는 기업을 대표하는 실제적인 인물인 것이다.

그야말로 대아와 함께 차분하게 성장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아미디어의 합병 전에 다각도로 판단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IT업계에서 이직한 김 실장은 이곳의 실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김기만 팀장은 너무도 잘 아는 인물로 과거에 이강 본부장에게 혼쭐난 경험까지 가지고 있었다.

본부장은 부드럽고 순해 보이지만, 무서운 사람인 걸 김 팀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실수하거나 밑 보여서는 안 되는 대아그룹의 대세 인물, 기업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젊음, 성실, 스마트한 기업 이미지가 그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김 팀장은 그의 눈에 띌까 조용히 몸을 낮추며 다녔었다.

그의 눈 밖에 나면 대아그룹에서는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김 실장은 자신의 심복이라 생각하는 김기만 팀장을 불렀다.

“김 팀장, 혹시 이강이라고 아나?”

“그럼요, 왜 그러시죠?”

“본부장으로 온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인가?”

‘헉! 안 되는데….’ 김 팀장은 속으로 놀란다.

김 팀장은 잠시 고민스럽다.

‘어쩌지? 김 실장 라인인가? 이강 본부장인가? 이미 본부장 눈 밖에 났는데….’

그러나 김 실장은 어차피 이강 본부장과 상대가 안 되니, 굳이 그 라인에 설 필요가 없다고 이내 판단한다.

바로 잔머리를 굴리는 김 팀장.

“대학 졸업 후 바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다니는 고인물이에요. 한마디로 꼰댑니다. 별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그에 비하면 우리 실장님은 오리지널 IT 물을 먹은 실력자죠. 하하하”

“그래? 별거 아니란 말이지? 알았어.”

김 팀장은 순식간에 김 실장을 몰아낼 궁리를 해냈다.

이강 본부장을 피할 수 없다면 일단 그의 라인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간에 있는 김 실장은 걸림돌만 될 뿐이라고 순간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계획보다 빨리 김 실장을 몰아낼 수 있겠군. 후후’ 김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머금고 방에서 나온다.

김 실장은 지아미디어의 우두머리 자리에서 일은 안 하고 세력만 키우려다 밀려나게 되는 꼴인 것이다.

김 팀장이 손쓰지 않아도 이미 김완태 실장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었다.





김완태 실장은 이강 본부장을 어떻게 할지 생각 중이다.

갑자기 사장과 자기 사이에 걸림돌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인력 정비가 되면 실적 올려놓고 자기 뜻대로 어린 사장도 조정하려 했거늘.

‘음, 어쩐담. 이런 시점에 실적이 좋아지면 모두 저자의 성과로 돌아갈 테고….’

“죽 쒀서 개 줄 순 없지.”

김 실장은 장 팀장을 부른다.

김 실장 앞이라 그런지, 몸이 경직되어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나타난 민호.

애써 우울을 숨기며 대답한다.

“실장님, 무슨 일이세요?”

“어, 내가 장 팀장과 상의할 게 있어서. 실은 이번에 이강 본부장이라고 본사에서 우리 회사로 잠시 부임 왔는데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자네를 추천했네. 잘 모시도록 하게.”

“아, 네.”

민호는 간단히 답하고 조용히 나오며 생각한다.

‘또, 무슨 일이지?’ 민호는 벌써 걱정이 앞선다.


김 실장은 이강 본부장이 대적할 상대가 아닌, 해명하고 잘 보여야 할 감찰사인 암행어사 격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우선 둘을 엮어 놓고 문제를 일으켜 한꺼번에 내칠 생각을 한다.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꼴이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굵고 강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장 팀장은 긴장하며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강 본부장을 만났다.

민호는 그를 보며 첫눈에 동화책에서 본 오성과 한음이 떠오른다. 똘똘하고 당찬 이미지다.

‘본부장인데 저렇게 젊다고?’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 민호는 좀 당황했다.

젊어 보이는 스타일을 한 탓인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가에 삶의 깊이가 묻어나고 눈동자는 빛을 발하고 있다.

외모뿐만이 아닌 마인드조차 범상치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걸 아우라라고 하는 것일까?’

여러 해 직장 생활로 으레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지만, 이런 느낌의 부류는 처음인지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민호.

‘뭔가 다르다.’

얼굴, 아니 눈동자를 유심히 본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요?”

크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인데도 정확히 뇌리에 파고드는 강직한 울림의 목소리다.

“아, 아닙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나오지 않을 자신감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다.

“당분간 날 도와준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잘 부탁해요, 장민호 팀장.”

“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뭔지 모를 흥분과 기대가 생긴 듯, 아니면 그에게 압도당한 것일까? 평소보다 높고 큰소리가 목청을 뚫고 나온다.

민호는 스스로도 순간 의아해한다.

‘내가 왜 이러지?’

“차차 물어보도록 할 테니, 나가서 일 보세요. 아, 회사 소개서 같은 거 있으면 보내주고요.”

“넵!” 민호는 조금 더 머물고 싶었으나 조심스럽게 뒤돌아 나온다.


잠시 후 김 실장이 민호를 부른다.

“어때?”

“……”

“본부장이 무슨 말하던가?”

민호는 갑자기 또 심장이 나댄다. 아무래도 김 실장을 보면 긴장하고 몸이 불편해지는 듯하다.

어쩜, 그렇게 느낌이 다른지, 김 실장과 이강 본부장.

두 사람을 연달아 보니 비교가 된다.

‘본부장을 오늘 처음 봤지만, 만약 둘 중 누굴 따르겠냐고 물으면 당연히 이강 본부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민호는 이강 본부장과의 첫 만남이 뇌리에 강하게 남으며 한순간에 맘을 빼앗겼다.

이강 본부장을 보고 민호는 처음으로 직장 상사라는 것에, 리더십에, 자신의 나아갈 길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회사 전반에 대해 자료를 준비해 달랍니다.”

“그래? 본부장에게 보고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가져오도록, 알았나? 자네가 회사에 피해 준 걸 생각해 보라고. 내 말 알지?”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냥 대답한다.

“… 네.”

‘참 지저분한 인간이다.’




이강 본부장과 단둘이 외근을 나가게 되어 운전하는 본부장 옆의 보조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민호.

한 것 풀이 죽어 있는 민호를 보고 본부장이 말을 걸어온다.

“장 팀장, 회사 다닐만한가?”

“네.” 말을 더 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다시 본부장이 말을 건넨다.

“난 말이야. 이 회사가 좋다네. 내 청춘을 함께 했지.”

‘뭐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긴 시간을 말이야. 그래서 누군가를 보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나 할까.”

“자네는 나와 같은 부류 같네만.”

“나도 알고 보면 무척 내성적이라네. 그렇게 안 보이지?”

“아, 네~~.”

본부장이 민호에게 건넨, 관심 어린 몇 마디는 민호의 마음에 빗장을 열게 했다.

청렴결백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르게 하는 따뜻한 이 사람을 민호는 정말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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