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형'이 어색한 '엉아'가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많이 의지해서일까, 더욱 커져버린 그 자리.
곧 직장을 그만두게 될 거라며
눈을 비비며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나를 서글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시험에 떨어지고 자꾸 멍청해진다는 그 말에,
삶이 힘에 부쳐 보이는 그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를 나약하게 만드는 주변이, 사실은 별거 아님을….
늙어가는 게 약해지는 게 힘이 없어지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의 기억은 아주아주 어린 시절로 올라간다.
시골에 연예인이 공연을 오면 키 작은 우리는 앞의 자리를 얻기 위해 엄청난 인파들 사이를 뚫고 가기 위해 내 손을 꼭 쥐고 나아가던 그, 난 그의 손만 꽉 잡으면 되었다.
한 살 터울인데도 큰 사람으로 느껴지던 그는 어디 다닐 때면 나의 보호자 같은 느낌이었다.
나무 장작을 보관해 둔 창고에서 불 장난하다 불을 끈다고 부채질하던 두 아이.
더운 날 아이들에겐 깊은 저수지에 수영하려 홀딱 벗고 들어가는 커다란 그를 따라가던 작은 아이.
비 오는 날엔 우산이 가족수 보다 모자라 등하굣길에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다녔는데, 비가 그쳐 큰 우산을 들고 집에 가는 길에 서로 들기 싫다고 우산을 길바닥에 버리고 온 철없던 아이들.
하굣길엔 내가 들만도 한데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게 그의 존재는 나이 많은 사람이자, 보호자란 생각에 우산을 한 번씩 들어야 한다는 그런 논리를 수긍할 수 없었나 보다.
한 살 터울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자라며 경쟁하고 비교하고 싸우며 지냈고 나는 그 싸움에서 한 번은 이겨보고 싶었는데 한 번을 못 이기고 가지고 싶던 파랑은 빼앗기고 빨강이 항상 나의 몫이었다.
방하나를 같이 쓰며 방 한가운데 테이프로 줄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며 자기 구역을 만들어가던 예민하던 학창 시절, 매일 그렇게 싸웠지만 내가 그 쪽방으로 내려간 건 고3, 그를 위한 내 나름의 배려였음을 모를 거다.
그러나 그게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못한, 배려가 아닌 게 돼버렸지만….
앞마당에서 나를 엎어뜨리다 창이 깨지며 유리 조각이 나의 허벅지에 박혀 피가 철철 흘러 바가지에 받을 정도인데도 병원도 안 가고 집에 누워만 있었던 기억,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멍청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함께했던 이런저런 일들이 에피소드처럼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유년시절 그는 나의 리더이자, 보호막이자, 친구이자, 형제인 유일한 존재였다.
그렇게 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의지하며 자라온 탓인지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을 때, 가장 먼저 떠올라 전화를 걸게 되는 그.
파병 이후엔 사회생활을 꺼리게 되어 더욱 형댁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이제는 친구처럼 이웃처럼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표현이 서툰 형제에게 생긴 사랑하는 그녀들은 또래라서 인지 부담 없이 형제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이어주었다.
줄곧 이 나이 되도록 그렇게 옆에서 이웃처럼 친구처럼 무척이나 의지하며 살아온 듯싶다.
이사하면 멀어질 물리적 거리에 벌써 서운함이 밀려온다.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여전히 늦게까지 TV보다 잠들어 아직도 자고 있을까? 피곤한 몸을 일으켜 출근했을까?
별일 없이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겠지?
로또를 사서 지인에게 선물하고 일주일의 희망을 품으며….
장남이란 감투를 기꺼이 두르고 도리를 다하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정성스레 제사를 치르는 예의와 기본이 된 사람.
누이들과 내게 신경을 써주고 주변을 도우며 재미있게 만들고 복잡하지 않은 흐뭇한 사람.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이 그를 좋아하니 잘 살았네, 잘 살고 있네.
매력 있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처럼 잘 살아가면 되는….
나이가, 직장이, 일이, 형제자매가, 자식이, 와이프가 그를 둘러싸고 있다.
감싸고 있는지 옭아매고 있는지, 때론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음이다.
그럴 땐 한 짐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볼 시간도 필요하다.
훌훌 털어버리고 2막을 준비할 마음채비를 할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엉아를….
P.S
반백이 넘은 지금도 엉아라고 부르다 보니, 형이란 단어가 어색하다.
엄마를 어머니라, 아빠를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 어른이 된 거 같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형이라 부르는 순간, 나만의 엉아가 아닌 누구에게나 있는 형이 될 거 같은…,
그래서 그냥 엉아로 부르기로 했다.
#엉아 #어린시절 #추억 #혈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