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3일차날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늦게 리조트에 도착했다.
체크인에 약간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분위기 있는 리조트 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화장실의 배수가 안되어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앗! 이게 무슨 일이지?' 하바나보다 3배의 숙박료를 들인 고급리조트인데 이런 일이 다 있다. 말도 안 통하는데…. 그냥 인터폰을 들어 할 말을 한다. 이곳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었다. 한때 우리 제주도에 중국관광객이 발에 걸리듯 이곳도 한국관광객이 워낙에 많아서 표지나 안내문에 기본적으로 한국어로 표기되어 있고 관련종사자는 간단한 한국어회화정도는 하는 듯했다.
맛사지사가 건네던 모두 같은 억양의 독특한 "괜찮아?" 그 단어가 떠오른다. 아마도 베트남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지 싶다.
어쨌거나 밤늦은 시각, 한 시간가량을 배수처리하느라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여행에 기분을 망쳐놨다.
그래놓고는 별일 아니라며 툭 털고 만다.
'와, 안 그래도 맘이 편치 않았는데 불을 지른다.' 역시 후진국이라서인가 서비스정신이 엉망이다.
머무는 동안 3 대중 1대만 온전하던 엘리베이터마저 고장 나서 4층에 숙박 중인 우리는 계단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어째 5성급인 호텔인데 이렇게 엉망일 수 있는지….
죄 없는 수선공에게만 냅다 소리 질러서 놀란 그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럴 수 있지"하며 넘어갔으면 나뿐이 아닌 모두에게 훨씬 편안했을 것을…, 어차피 개선되지 않았을 이곳의 느린 일처리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이었거늘….
나는 환자라고 생각하면서 발생하는 불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만만 토로하고 있었다.
그에 맞게 자존심도 내려놔야 하는데….
지금 나는 비정상. 불균형, 불안정한 상태다. 익숙한 것에는 어는 정도 룰을 찾았지만, 낯선 것에는 아직 정리할 수 없는….
이젠 새로운 일들이 두렵다.
이곳은 온수풀을 갖춘 수영장과 나름 퀄리티 있는 식사가 제공되기에 4일차는 휴양을 위해 하루 종일 리조트에 머물렀다.
아니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서로를 배려하려 조금씩 지쳐 있었다.
푸르디푸른 아름다운 풍광과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며 기분전환이 됐다.
수영장과 식사는 아주 근사했고, 날씨 덕에 사진은 끝내주게 나왔다.
비현실적일만큼...
우리가(아니면 나만?) 미묘하게 발생(발견?)한 문제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과제처럼 이해하거나 개선하기 위해서 설명할 부분이 있는 거였다.
그래서 난 미묘하게 발생한 그 틈을 직시하며 잘 메꾸어 보려,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한다.
난 환자라 말하며 예전 같은 일반인처럼의 여행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아직 나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내가 느낀 이야기를 해본다.
누군가에게 의지한 행복. 현실직시해야 하는데…, 내 아픔을, 힘듦을 나누려 했던 내가 잘못이다.
휴양을 와서 군인을 이끌듯 땀방울을 쏟아데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즐거운 표정이 없는 나를 의식하는 모습에 신경 쓰느라,
짧은 순간이라도 어색해질까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조급한 모습에,
어른이 아프다는 걸 알기에 신경 써야 되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있는 나는 즐겁지 않았다.
여행은 우선 내가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즐거워지고 함께 즐겁다.
나를 희생하면 상대방도 즐거울 수 없다.
나를 희생해서 네가 즐거울 수 있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서로 사랑한다면….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 내가 행복해야 너도 행복해."
우린 그런 사이야.
첫날 하바나 호텔에서 꿈을 꾸었더랬지….
다양한 역할을 했던, 나도 모르는 다양한 모습의 동영상 속 앤드장을 보며 형네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꿈. 멋모르던 철없이 젊음만 믿고 혈기 왕성하던 어린 날의 모습들을 보며 "너 맞아?" 그러면서….
꿈속 즐거운 여행식사자리에서 내 젊은 날을 함께 이야기하며 그렇게 웃고 즐기며 추억하는 꿈.
쿨하고 경쾌하고 가볍고 생기발랄하길 바랐지만, 꿈이었다.
그건 젊은 날의 정상일 때나 가능했던 꿈같은 일이었다.
이젠 상황에 맞는 적당한 일정과 부담 없는 계획으로 웃고 즐기는 추억하게 될 여행,
그렇게 가볍게 기분전환만 되어도 좋을 시간,
그거면 된다.
이번여행은 알고 보면 너무 신경 써서, 너무 배려해서 그래서 느껴졌던 편하지 않은 자연스럽지 않은 여행이었다는 거…. 그래서 여행을 자유를 즐거움을 놓쳤다는 거다.
이런 고민하는 여행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안타깝고 붙들고 싶고 미안하고 고맙다.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여유와 낭만을 찾아 떠나는 게 여행이라는 것을…, 일탈을 하는 게 여행이라는 것을 우리는 깜빡했다.
계산과 역할로 머리에 가득 채우고 떠난 여행은 자유도 낭만도 즐거움도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었다. 누구 하나 힘들어하면 그 기분이 전파되어 함께 힘들어하는 우리 사이라서…, 문제였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다음 여행은 여유 있게, 너무 기대지도 말고, 너무 챙기지도 말고, 먼저 자신이 즐겁도록 하자.
그래야 상대도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으니….
나는 깨닫는다.
이젠 나는 제약사항이 많은 나라서 여행을 하려면 각오를 해야 한다.
말과 표정이 일정치 않고 조절이 안돼서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런 부분이 가까운 사이라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점점 아파질수록 관계를 만남을 회피하게 되는 이유다.
장시간 같이 있다 보니 나의 부자연스럽고 서툰 순간과 표현이 나보다 상대가 더 난처해하고 민망해하는 느낌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차라리 일정하게 아프면 상대가 혼선은 없을 텐데…. 이 병은 무엇보다도 변덕으로 인해 사람이 떠나게 될 병이다. 외로운 병.
그런 점 때문에 이제 누구와 관계를 맺거나 친해지는 게 두렵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 계속 혼란스럽고 다그치기엔 지치고 앞날이 너무 힘들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내가 컨트롤 가능한 것들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다간 수렁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젠 세세하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런 감각들의 기능이 떨어진다. 어쩔 수가 없다.
오해 안 살 다른 방법이 있는가?
이렇게 친한 사이도 이런 부분이 신경 쓰이는데 다른 관계는 말 다했지….
그러나, 난 무소의 뿔처럼 가야 할 것이다. 살아가려면, 계속 나 자신만 자책하고 있을 수가 없다….
멋진 풍광들 사진사이로,
나의 즐겁지 않은 얼굴표정이 먼저 보여서 한동안 사진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이제야 유심히 살핀다.
내 생각에 여행의 느낌 있는 베스트 컷이다.
당신의 맘에 담긴 베스트 컷은 무엇이었을까?
나트랑에서의 아름답던 풍경과 순간순간 즐거웠던 눈부셨던 순간들은 또 다르게 저장되어 있다.
현실감 없이 맑고 푸르고 빛나던 공기, 바람, 햇살,…, 풍광들. 나트랑은 이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그 배려를 고마움을 아니까. 그래, 그걸로 충분히 됐다.
이번여행은 내게 다른 경험과 다른 사고를 안겨준 좋은 경험과 추억이었다.
빨리 일반인이 되어 무리 없이 함께 여행할 날을 고대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이기에 가능한 경험과 깨달음을 느끼며, 5박 6일간의 마지막을 마사지와 맥주와 랍스터로 아쉬움을 달래고 따듯한 그곳을 떠나 춥지만 내가 있을 현실로 향했다.
아우네는 학생시절을 마감하는 여행으로, 지친 직장생활과 걱정을 조금은 가볍게 해 준, 다 함께 여행 간 것에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간다고 슈퍼맨이, 정상인이 될 수는 없었다.
나트랑 여행 END.
P.S
서투름에 나의 시선으로 쓴 글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해 줘~~ 모두 고마웠어요. 우리 즐겁게 웃으며 삽시다!!!
※ 여행이야기지만, 나의 상황(파킨슨환자)에 느끼는 일반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글임을 고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