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그 치열한 전쟁

협력이라는 탈을 쓴

by 이녹

갑과 을을 계약서 상에서 보면 동등한 관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갑과 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을보다 갑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갑이라서 갑인 사람은 없고 을이라서 을인 사람은 없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내부이든 외부이든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갑과 을이 존재한다.


외부 고객사와 일할수 밖에 없는 업종에 있다보니 다양한 고객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항상 같은 고객사와 일하는게 아니라 프로젝트에 따라 고객사가 바뀌지만 나는 지금까지는 정말 운이 좋게도 나이스한 고객사들만을 만날 수 있었다. 고객사도 우리와 협력하는 관계라고 항상 말하지만 우리는 항상 을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동료들 중 진상 고객사를 만나 아침 출근부터 밤 늦게까지 몇달간 시달리는 경우를 많이 봤고 지쳐서 몸이 안좋아지기도 했다.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회사는 고객사를 놓칠 수 없었기에 그냥 두었다. 같은 부서의 동료였지만 아무 힘이 없는 입장에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내가 맡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갑에게도 갑이 있다.


이전에 담당했던 클라이언트 중 말도 안되는 일을 계속 요구해서 힘들게 한 클라이언트가 있었다. 항상 그녀의 요구사항은 ASAP, 즉시, 최대한 빨리였고 일정상 안된다고 해도 왜 안되냐며 그래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힘들게 원하는 요구 사항을 되게 만들어 놓으면 회사 내부 사정상 안될것 같다며 엎었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될수 있도록 도와준 협력사에게 안될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해야했다. 그녀에게 지쳐서가 아니라 회사에서 더이상 배울 사람과 배울 일이 없어 이직을 하게 될 무렵 그녀 또한 퇴사한다고 했다. 이직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당분간 쉴거라고 했다. 그녀가 나에게 지독한 요구를 했던 이유는 그녀쪽 아주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도 회사 내의 갑질에 힘들었던 것 같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녀도 그랬듯이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것은 내부의 적이다. 외부 사람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도 철저한 갑과 을이 존재한다. 내부도 같은 협력 부서라고 하지만 윗사람들의 힘의 우위에 따라 갑과 을이 정해지기도 한다. 윗사람이 회사에서 힘있는 사람이라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 중 윗사람을 믿고 비교적 약한 부서에 있는 사람에게 갑질을 하기도 한다. 약한 부서에 있는 사람이 능력이 결코 적은 것도 아닌데 갑질을 하더라도 윗사람이 회사에서 입지가 약한 사람인 경우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부서와 협력할 때 협조를 잘 못받아 힘든 경우도 있다. 회사 내부는 갑의 위치를 점령하기 위한 소위 말하는 정치질이 존재한다. 회사내 정치에서 밀리면 을이 되고 만다.


살아남기 위한 갑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갑질 하는 사람을 원망하다가도 내가 의도하지 않게 갑질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위에서 또는 클라이언트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업무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면 빡빡한 일정에 나 또한 최대한의 아웃풋을 내기 위해 관련된 사람에게 푸시할수 밖에 없다. 업무 리소스가 부족한 팀에 많은 업무가 밀려 있는걸 알면서도 내가 살아 남기 위해 무리한 일정으로 요구한 적이 있다. 함께 일했던 사람이 팀 구조적으로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퇴사했지만 나 또한 일정 부분에 기여한것 같아 너무 미안했던 적이 있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갑질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갑질을 당해보면 그 속 어디선가 깊숙 끓어오르는 어디서도 풀수 없는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래서 화병이 나나 싶기도 하다. 갑이 을이 되기도 하고 을이 갑이 될 때도 있다. 뉴스에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민원을 넣는 사람도 어디선가 분명히 을일텐데 말이다. 영원한 갑과 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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