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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May 06. 2024

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 ” 


방바닥은 얼음처럼 찼다. 진이는 기차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마른 개똥이 너저분하게 늘어진 개 집 아래 뜨거운 여름 햇살에 지쳐 자던 백구. 작은 엄마는 그 개가 족보 있는 진돗개라고 했다. 그게 마치 자기 신분을 대변해 줄 듯이 누군가 그녀를 괄시하면 족보를 내밀며 대접받을 자격을 주장하듯이, 진이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다물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도 그 말을 들었다. 잡종 진돗개는 감았던 눈을 뜨고 귀찮은 듯 진이를 슬쩍 쳐다봤다. 

오빠도 사촌도 아무도 없다. 낯선 삼촌 집에 있는지도 이틀째, 처음 바다 해수욕을 하고 진이는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몸을 바닥에 뉘였다. 멀리서 기차가 느릿느릿 지나는 소리가 났다. 수많은 붉고 하얀 전등들이 창조한 네온 사인 숲, 그 사이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그 옆 붉은 조명의 아파트와 술집. 젊은 남녀들의 사랑과 아픔을 그린 <중경 상림>같은 풍경과는 딴판으로, 그곳은 한적했다. 매미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만 요란 가운데, 고요가 있었다.  

경주 시내에서 한 시간 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안강. 동네서 외따로 떨어졌고 집 뒤는 허허벌판, 집 앞에는 기찻길이 우뚝 솟아 있었다. 회색 슬레이트를 얹은 허름한 집 두 채. 방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었다. 진이의 부모님이 돈이 있을 때마다 장만한 좋은 자개 장농, 전축, 새로 고친 부엌이 작은 집에는 없는걸 진이는 금방 눈치챘다. 

천장 낮은 어두운 부엌에 들어가 작은 엄마는 기름기 많고 느끼해도 입에 딱 맞는 그런 요리를 자랑스럽게 쟁반에 담아 밥상을 두고 둘러앉은 사촌들과 진이와 오빠들에게 내려놨다. 젊어서 허리를 다친 진이의 작은 아버지는 누워 있다가 식사 시간 때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나 기력을 차리기 위해 마른 입을 다시며 밥을 먹었다. 그는 노상 누워있었고, 작은 엄마는 그를 대신해 시내 식당들을 전전했다. 그녀는 요리 솜씨보다 주량과 한탄만 늘었다. 그런 이유가 식당에서 그녀를 받아주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면 또 몇 절 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갔다.  

“성님”하는 한 마디가 저편에서 들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장계 댁은 전율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터졌는지. 삼촌 건강이 나빠졌는지, 식당에서 해고당했는지, 혹은 진탕 술을 마셔서 얼큰해진 회포를 풀어보려는지. 잠잠한 수화기 속에서 장계댁은 잠시 머뭇거렸다. 가난하고 무능력한 삼촌의 외모에 반해서 시집 온 그녀는  찌르면 톡 울음을 터트리는 소녀처럼 감성적이고 마음이 여렸다. 장계 댁은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의지할 곳은 남편과 큰 집에만 의지하는 그녀가 가여워서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왔다.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 내고 견뎌냈던 장계 댁은, 절제하는 법이 없이 감정의 날것을 다 드러내는 동서가 귀찮기도 했지만, 그녀의 눈물에 늘 힘이 빠졌다.  

진이는 기찻길을 따라 무성하게 풀이 자란 논길을 걷다 가족들을 발견했다.  “어이구, 깜상 자고 일어났어? 곤히 자는 것 같아서 놔두고 우리끼리 나왔지.” 한 살 세 살 된 사촌 둘은 엄마 손을 최대한 늘린 채 풀과 벌레를 따라 몸을 폈다 늘렸다 했다. 심드렁한 얼굴의 상원은 길가에 주차한 삼촌의 파란색 포터를 보고 눈이 반짝거렸다. 민원도 형의 민첩한 동작을 한 템포 느리지만 따라잡아 트럭 옆에 서서 아직 새것 같은 트럭을 구경했다. 

“거기 서 봐, 작은 엄마가 사진 찍어 줄게. 성아가 장손이니깐 제일 가운데 서고 진이 민이는 성아 손을 잡고, 나란히 트럭을 배경으로 서는 거야.  뭐 하고 있니, 진아, 너도 거기 옆에 서 봐.” 

갓 낮잠에서 일어나 비몽사몽하고 여름 오후 햇살에 후덥지근하던 진이는 모든 게 귀찮았다. 그것보다 작은 엄마가 성아만 챙겨 불만이었다. 집에서야 엄마가 오빠를 챙겨도, 꼬박꼬박 그걸 상기시키지는 않았다. 작은 엄마는 고기를 먹어도, 버스를 탈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가문을 이을 성아를 챙기고 치켜세웠다. 진이와 민원, 사촌들이 그 사실을 꼭 알아 둬야 하는 가문처럼 반복해서 낭독했다. 진이는 경주 시장에서 작은 엄마가 사준 검은 민소매 사이에 두 손을 넣어 늘어뜨리고 트럭 끄트머리 살짝 비켜난 곳에 섰다. 무릎까지 자란 풀이 다리를 할퀴고 날파리가 진이를 성가시게 했다. 기차가 달려오는 것 같았다. 굉음을 내며, 하루에 몇 번이나 낮과 밤잠, 몽상을 깨우는 기차가 언제든 지나갈 것만 같았다.진이는그 소리를 저 멀리서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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