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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May 20. 2024

뒤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담임이 채변 봉투를 주며 그걸 가져오란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각자 나눠 든 황토색 봉투를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비닐봉지가 덧대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을 상상하는 표정을 서로에게 들키고 나서 우리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야, 그러니깐 땅에 싸고 그걸 찍어서 여기다 넣어 와야 한다는 말이지?” “나는 못 해!”라고 답했지만 그걸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우리가 그 봉투를 들고 만났을 때는 우리 모두가 자기 그것을 찍어서 넣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봉투에 그것이 들어간 것처럼 검지와 엄지로 집어서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는 길에 내일 아침에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각자 고민했다. 



그날 공식적으로 땅에 눌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쭈그려 앉은 나는 그것이 떨어져 잘 말려 올라간 걸 보았다. 김이 났다. 들큼한 냄새도 났다. 왼손에 봉투를 잡고 벌렸다. 내 몸에서 나왔지만 내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그것. 반 걸음 물러나서 나무젓가락 하나로 그것을 푹 찔렀다. 쑥하고 들어갔다. 선생님이 얼마만큼 채집해야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비닐에 황색 줄을 그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다시 한번 그것을 푹 찔러 건져 올리려 했다. 젓가락 하나로는 그것을 헤집기는 가능해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젓가락 두 개로 젓갈을 집듯 집어 올렸다. 들큼한 냄새가 진해졌다. 백 원 크기만큼을 봉투에 넣었다. 이 정도로는 모자랄까. 접었던 봉투를 다시 벌리고 또 한 젓가락 젓갈을 집어서 봉지에 넣었다. 봉투를 접으면서 그 부위를 안 만지려고 했는데, 만져 버렸다. 불룩하게 온기가 남아있는 봉투. 이제는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듯 봉투를 검지와 엄지의 손톱으로 잡고 흔들거리면서 학교에 갔다. 우리는 각자의 비밀을 채집 봉투에 넣어서 만났다. 각자의 과제를 훌륭하게 마친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낸 듯 으쓱했다. 




변소는 마당 끄트머리 소마구 옆에 있었다. 변소에 다가가면 계절마다 질감이 다른 소 똥이 짚과 섞여 소 발굽 아래와 사이에 낀 게 보였다. 그 냄새는 진했다. 여섯 살 된 진이는 높은 나무 널빤지 계단을 양손을 무릎을 짚고 네 번씩 짚고 올랐다. 변소 널빤지에 올라서 유독 약해 보이는 널빤지에 괜히 발을 굴렸단. ‘무너지지 않겠지? 판자가 부러져서 똥 통에 빠지는 일은 없겠지?’ 다리를 힘껏 벌려 변소 구멍 위에 섰다. 변소는 동네 길에 접해 있었다. 엉성한 판자로 만든 화장실 판자는 마음먹고 들여다보려면 누구든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진이는 누가 지나가지 않는지 두리번거리고, 잠시 후 조용한 틈을 타 살며시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 엉덩이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황소가 진이를 보고 있었다. 콧구멍에서 콧김이 하얗게 나왔다. 변소 칸에 쟁여둔 신문을 먹으려고 긴 혀를 쑥 빼고 날름했다. 고개를 빼고 종이에 닿으려는 소의 눈은 찢어졌다. 흰자위는 진이를 놀리고 있었다. ‘깐 엉덩이 다 보여.’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이라지만 진이는 가랑이를 가렸다. 그 와중에 담장 너머에서 타박거리는 소리에 놀라 뒤뚱했다. 진이는 중심을 잡고 정신을 다잡았다. ‘여기서 떨어지면 바보가 되는 거야.’ 옆집 아줌마는 똥 통에 빠져 똥을 먹고 똥 가스 때문에 바보가 된 아이가 있다고 했다. 그것보다 죽는 게 낫다. 이 더러운 변소에 빠지는 건 죽을 만큼 더러운 상상이었다. 진이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그 일을 마치려고 했다. 거친 신문지에 불이 붙을 만큼 비벼서 부드럽게 만들었다. 뒷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삐걱거리는 판자 변소에서 뛰어내렸다.  








초등학생이 되자, 아버지는 재래식 변소를 허물고 신식 푸세식 화장실을 지었다. 기억으로는 소가 그 짓을 목격하는 재래식보다, 푸세식 화장실이 진이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시멘트 건물에 알루미늄 샤시 문이 달린 화장실은 초록색 환풍기 끝에 고깔이 바람이 불면 뱅글뱅글 돌아갔다. 겨울은 그냥저냥 견딜만했지만, 고깔이 멈추는 여름이면 냄새가 고약했다. 나프탈렌을 걸어도 그 독한 암모니아 냄새를 막을 수 없었다. 시멘트 건물은 작열하는 태양빛에 달궈졌고 그 아래 검은 플라스틱 통에 생명들도 데웠다. 끓다시피하는 출렁이는 똥, 속에서 흰 구덩이들은 서로 몸을 부대끼며 꿈틀거렸다. 그 흰 생명체의 움직임은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눈을 감고 그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냄새를 느끼지 않으려고 코로 얕게 숨을 쉬었다. 최대한 빨리 그 일을 보고 나가야만 했다. 아니면 이곳에서 질식해 버릴 것이다. 마지막 똥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리고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렸다. 여름 열기에 부드러워진 그것이 2미터 위까지 치솟을 수도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습, 하고 입으로 냄새를 들이키고 입을 닫았다. 휴지로 얼른 뒤를 닦고 바지를 올렸다. 숨이 막혀 왔다.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다. 아, 이대로 하다간 다음 들숨을 암모니아 냄새의 공격을 받을 것 같다. 아씨. 에라이 모르겠다. 급하게 문 고리를 돌리고 나왔다. 아, 후. 후덥지근하지만 깨끗한 공기를 폐까지 양껏 채웠다. 냄새 지옥에서 살아난 단테처럼 상쾌했다. 오늘의 배설 숙제는 끝났다는 뿌듯함에 하늘을 높이 나는 잠자리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화장실은 열 살 진이에게 매일 밀린 방학 숙제였다. 진이는 그 똥 지옥에 들어가기 거부하고 뒤꼍으로 갔다. 본채를 왼편에 두고 직진으로 가면 뒷마당에는 작은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그 옆은 뒷집. 뒷집 앞에는 소 죽을 끓이고 설 두부를 하는 부뚜막이 있었다. 그 사이로 들어가면 슬레이트에서 내린 빗물이 물길을 만들었고, 버섯이 자라는 썩은 나무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 아래에 검은 흙에는 실한 지렁이가 집을 짓고 살았다. 살짝만 땅을 파도 지렁이가 붉은 몸을 드러냈고 지렁이 치고는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진이는 그 구석에 앉아 볼일을 봤다. 응달의 한기가 느껴져도 다리 아래에는 개미들이 기어가고, 돌조각이 보였다. 그때 왜 하필, 바글거리는 흰 벌레들이 생각나는지.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는 그곳에서 일을 보고 나면, 진이는 검은 흙과 대조적인 누런 온기를 흙으로 가리기에 바빴다. 혹시 엄마나 아빠가, 오빠들이 본다면 놀릴 게 뻔했다. 삽을 가져와 주변의 흙을 찍어내듯이 파, 그것 위에 덮었다. 흙 덩이가 그것을 눌렸지만, 아직 어떤 형체인지 알 것 같았다. 다시 흙을 파 덮고 삽 등으로 탁탁 내려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런데 진이는 매일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했다. 그곳은 진이의 똥 무덤가였다. 지렁이와 공벌레가 그것을 아침 식사로 먹을 것이었다. 어떤 것은 부패가 진행되어 보기에도 푸석했다. 봉분을 피해 피해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게 훤히 보일 만큼 나와서 일을 해결할 때는 간이 콩콩 떨렸다. 



여름이었을 거다. 자두가 영그는 초여름, 오빠는 자두를 따려고 뒤꼍으로 들어오는데 바지를 올리고 있는 진이를 목격했다. “야 너 거기서 뭐 했어. 똥 싼 거야?” 제길, 큰오빠한테 들켰다. 그는 동생한테 귓속말을 하더니, 둘이 입을 맞춰 놀리기 시작했다. “진이는 똥싸개래요. 뒤꼍에 똥 천지래요.” 



진이는 그렇게 놀림을 받는 게 죽기만큼 싫었다. 오빠들은 왜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둘이 패를 짜고 자기를 놀리는 걸까. 그들을 죽도록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때리면 배로 얹어 맞을까 봐 무서웠다. 진이는 오빠들의 비아냥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 몇 번은 그 구더기 천지와 암모니아 폭탄 속으로 들어갔지만, 결국에는 오빠들에게 들키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 몰랐다. 뒤꼍 구석에 앉아 흙을 파는 오줌 줄기를 보면서, 누군가의 인기척이라도 느끼면, 언제라도 바지를 올리기 위해 손에 힘을 꽉 줬다. 눌러 앉은 다리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게 힘을 주고. 진이는 그 기억을 지울 수가 없어서, 마흔이 넘어도 애쓰는 일을 앞두고 더러운 화장실에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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