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원 룸 03화
라이킷 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원룸 2.

by 원더혜숙 Oct 22. 2024

지수는 책을 읽는다면서, 요가를 가르쳐 준다면서 핑계 대고 미영에게 갔다. 미영에게 접근하는 누구라도 막겠다는 듯이 작은 방에 진 치고 미영이 화장하는 걸 구경했고 이것저것 물었다. 미영이 남자친구와의 통화할 때 지수는 미영에게 팔에 매달려 그들의 통화를 엿들으려고 했다. 


“좀 가라. 가.”라는 부드러운 말투에 지수는 이불속에서 우물거렸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지영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지영아, 얘 좀 들어내.”라고 미영이 지영에게 말했다.

“네가 좋다잖아. 냅둬.”

“지영이, 너는 마음이 넓지만 난 아니야. 나는 내 방이 필요하다고.” 


지영은 잠시 지수와 미영의 팽팽한 분위기를 지켜봤다. 미영은 그래도 참을 수 없었는지 “꺼지라고! 네 방으로 가. 나 옷 갈아입을 거야. 내 방에서 내가 마음대로 옷을 못 갈아입지?”하고 지수에게 고함을 질렀다. 지수는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한 달간 지수는 미영과 말을 섞지 않았다.   


지수는 지영의 방문을 두드렸다. 남자 튜터와 통화 중인 지영을 기다리면서 지수는 미영이 남자 친구와 통화했을 때처럼 질투심이 느껴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어제 내가 미영이랑 팔짱을 끼고 걷는데, 일본인 튜터가 우리가 레즈냐고 묻더라. 아니라고 했는데, 일본에서는 그렇게 여자애들끼리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면, 레즈비언이라는 표시래.”


지영은 튜터의 말을 옮겼다. 지수는 지영이 미영의 방에 매일 찾아가는 것이나 평소 행동으로 지수의 속을 떠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지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 사실은… 설사 그들이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는 거야.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일 뿐이니깐. 그 무게를 나눠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야. 사실 나는…”

그때, 미영이 지영의 방에 불쑥 들어왔다. 미영이는 지수가 지영이 방에 있는 것이 의외라는 듯이 쳐다봤다. “지영이한테도 침 발라놨니?” 지수는 미영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지영은 지수와 미영을 앉혀 놓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시큼한 향이 부엌에 에워쌌다. 지수와 미영은 차려진 밥상을 보고 말이 없었다. 지영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서로 민망하지? 이제 그만들 화해해.” 돼지 김치찌개의 기름진 국물이 온몸으로 퍼지자, 미영이 지수에게 물었다. “네 방문이 부서지면 네 성질 때문일 거야.” 지수는 미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화해하는 시점에 그런 농담을 던지는 미영도 어지간하다고. 

이전 02화 원룸 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