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돌아오고 지수는 휴학했다. 치아 교정을 결정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했다. 아이스크림은 차고 딱딱했다. 심신이 그처럼 굳어가는 것 같았다. 일을 했지만 돈에 쪼들렸다. 지수는 교정비를 낼 때면 돈의 행방을 멍하게 생각하며 헐거운 지갑만 쏘아봤다. 매일 밤 여자 매니저가 지수를 술집으로 불렀다. 새벽까지 술자리에 앉아 있다 아침 여덟 시 반에 매장을 여는 일상을 반복했다. 매니저는 다른 직원의 빈자리를 메꾸려 지수를 휴무에도 불렀다. 지수는 언제라도 휴대폰이 울릴 것 같은 미묘한 긴장과 피로에 시달렸다.
어느 날 지수는 무단 결근하고 인천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영자매는 귀국 후 공항 부근에 살았다. 미영은 공항 콜 센터에서, 지영은 출국장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일했다. 9평짜리 원룸에 들어갔을 때 공항로 쪽으로 낸 통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창문턱은 어른이 양반질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아이보리 바닥과 흰 벽으로 마감했고 한 칸짜리 싱크대와 욕실이 있었다. 방에는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오른쪽은 미영, 왼쪽은 지영의 침대였다. 한기가 창에서 들어오고 천장이 높아 추웠지만, 전기장판이 있었고 여자 셋의 열기로도 훈훈했다. 지수는 재빨리 미영의 침대 밑에 이부자리를 깔았다.
다음날, 지수는 잠결에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를 들었다. 영자매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번갈아 보며 화장했다. 지수는 칙하고 향수 소리를 듣고, 달콤한 향을 맡고 눈떴다.
“냉장고에 반찬이 있으니깐 꺼내서 밥 챙겨 먹어. 밥도 해 놨어.”
눈을 비비고 다리를 꼼지락 거리는 지수는 지영의 말을 얼핏 들었다.
“우리는 오후 세 시에 퇴근이야.”
현관문이 쿵하고 닫히는 소리에 지수는 깼다. 금방이라도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올 것 같았다. 왜 오픈을 아직도 안 했느냐고 호통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개구리 같은 왕 눈을 치켜뜨고 그녀를 째려보았다. 손님을 대할 때마다 보았던 거짓 눈웃음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아이스크림 통이 지수의 가슴에 떨어졌다. 그녀는 뭉그적 뭉그적 따뜻한 전기장판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뒤집었다. 겨우 일어나 이불을 둘러쓰고 창가에 걸터앉았다. 맞은편에는 공항 청사가 보이고, 그 옆에는 텅 빈 운동장이 보였다. 쪽창으로 딱 숨 쉴 만큼의 공기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