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미영과 지영은 지수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공항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하늘에 불빛 몇 개가 반짝이며 날아갔다. 몇 분 간격으로 이착륙하는 항공기들이었다. 숨죽인 어두운 벌판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지수는 3평짜리 가게 한편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윙윙 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외로운 시기를 떠올렸다. 높은 불빛 너머에 더 넓은 세상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그곳이 더 좋아졌다.
“공항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을 많이 뽑아. 출국장 31번 탑승구 바에서도 직원을 구했어. 한 번 이력서를 내 봐.” 지수가 밝아진 지수를 눈치채고 흥분해서 말했다.
“직장을 잡는다고 치더라도 살 데가 마땅치 않잖아.” 지수가 풀 죽어 말했다.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자. 세 명이면 월세가 줄어들고. 일본 유학 생활도 생각나고 좋지 않니? 너만 괜찮다면, 지금 이 자리가 네 자리야. 이러니깐, 네가 내 방에서 진 치던 날들이 그날들이 생각나는 걸.” 미영이 말하면서 지수를 보고 찡긋했다.
지수는 주택에서도 침대 밑에서만 생활했었다. 그래도 이 작은 원룸에는 영자매가 있었다. 설사 예전처럼 충돌할지라도 돈도 벌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지수가 바에 채용된 날 저녁, 미영은 지영의 엄마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지수야, 정말 잘 됐다. 교정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며. 여긴 페이가 나쁘지 않을 거야.”라고 지영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스팸 소시지를 미영과 지영의 밥그릇 위에 올렸다.
여자 셋이 한 상에 둘러앉은 광경은 익숙했다. 지수가 미영을 보며 말했다. “내가 한국 음식을 많이 싸왔다고 너네가 비웃었어. 나중에는 그 음식을 미영이랑 다른 친구랑 같이 먹었잖아. 그것 때문에 싸우기까지 했지.”
“음식 때문에 그렇게 다투기는 그렇지만, 네 음식을 축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식사 준비와 설거지까지 맡기는 걔가 가증스러웠어. 나는 너한테 미안해서 설거지를 따박따박했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지. 얻어먹은 만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수는 그렇게 했던 걸 후회했고, 그 친구의 눈을 피했다. 어느 만큼이 음식에 합당한 무게이고, 양심적인 무게인인지 가늠하기 애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수는 그 친구에게 준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영의 가늠척도는 정당해
늦은 밤까지 영자매는 연애 경험을 나눴다. 말다툼과 데이트의 사소한 즐거움도 흥미로운 화제가 됐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그들 얼굴은 여름처럼 빛났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지수는, 남자와의 연애가 그들을 더 친하게 만들었고, 감정을 솔직히 나눌 수 있는 자매의 친밀함을 어슴프레 알았다. 자신도 숨김없이 털어놓고 이해를 받고 싶었다.
이륙하는 항공기 꼬리 불빛을 보고 지수는 숨 가쁘게 달렸다. 영종도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지수는 바람에 고민들을 실어 보내버리고 싶었다. 생각까지 들킬 수 있는 원룸에서 미영과 지영은 왜 자신의 비밀에는 손을 뻗칠 수 없는지, 솔직하게 말한다면 미영과 지영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영에게 십 센티를 두고 멈칫했던 것처럼 오히려, 철저히 감추고 아닌 척하는 게 옳다고, 보란 듯이 남자와 연애해서 떳떳해져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