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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원 룸 07화

원 룸 6.

by 원더혜숙

비행기는 밤에도 날았다. 지수는 점멸하는 불빛을 손으로 따라 그렸다. 그 끝자락에 미영이 앉아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갰다. ‘나는 미영을 좋아해. 도도해 보여도 소탈하고, 쓸데없는 것도 다 들어주는 인정까지 예뻐.’


“미영아, 누구에게 고백해서 거절당한 적 있어?”

“아니. 이 미모로 그럴 리가 있겠어?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하고 싶구나.”

“그래볼까, 고민만 했어.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거절당할까 봐 두렵니?”

“누구에게 받아들여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거절당하면 내가 싫어질 것 같아. 사랑을 많이 받은 너는 잘 모를 테지만.”


지수는 어둠 속에서 잡히지 않는 빛을 좇는 것 같았다. 안달 나면 맨손으로 땅 파는 두더지처럼 채팅방에 들어갔다. 한 달에 한두 번, 상대를 달리했다. 바람이 잠잠해지면 원룸 창가에 앉아 섬멸한 인연들을 세었다.


미영은 승무원이 꿈꿨다. 매부리코를 성형하면 승무원 면접에서 붙을 거라고 생각해 코 성형을 했다. 붓고 푸른 미영의 얼굴은 흉했고, 지수는 눈을 깔았다. 지영만은 여느 때처럼 살가웠다. 수술 통증으로 잠을 설치는 미영에게 물과 약을 갖다 주고, 머리를 감겨줬다. 미영은 지영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지수는 자기는 애써도 못하는 일을 감당하는 지영이 대단해 보이면서도 눈에 거슬렸다. 지수는 아무리 미영을 좋아해도 그런 일에 도무지 엄두가 안 났다. 또 지영이 나섰는데 끼어드는 건 오버라고 생각했다. 욕실에서 들려오는 영자매의 쾌활한 웃음소리는 지수의 귓가에 크게 울렸다. 지수는 애초부터 그 사이에 낀 게, 원룸에 들어온 게 실수였다고 중얼거렸다.


원룸의 냉장고는 전등이 안 보일 정도로 세 집에서 보내온 김치와 반찬으로 꽉 찼다. 셋은 더 이상 밥상에 둘러앉지 않았고, 밑반찬은 상해갔다. 지수는 영자매와 같이 밥 먹고 밤새 유학 시절을 추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수는 치아를 거울에 비췄다. 앞니가 가지런해지고 돌출했던 입은 들어갔다. 거울 속의 미영의 이마와 코는 검붉었다가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옅어졌다. 지수는 미영이 냉담해졌다고 느꼈다. 섭섭한 게 있는지 물어볼 수 있었지만, 침묵하기로 했다. 괜히 물어봤다가 속내를 들킬까 봐, 두려웠다. 수술을 안 해도 예쁘고,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원래대로 피하는 게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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