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원 룸 08화

원 룸 7.

by 원더혜숙

지수는 화려한 공항 터미널을 걸으며 들떴지만, 표류선처럼 떠도는 게 불안했다. 배가 뱅그르르 돌면 지수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옥상에 올라 전화했다. 휴대폰 속의 먼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지수는 설령, 단 몇 분이라도 정박해도 족하다고 생각했다. 지수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기 착륙 소리를 들었다.


실패는 시도와 함께 예정되어 있었다. 지수는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선과 자기기만 빼고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지수에겐 공허한 관계만 남았다. 카라뽀.(空っぽ) 텅 빈 자신이 미웠다. 끝까지 차 오르고 싶었다. 그런 자신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 그 없음에 기대, 있음을 갈구한 자신. 그건 누구일까. 묻고 또 물었다. 질문은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미영이 야근 근무를 간 사이 원룸 통창에는 여름 비가 내리쳤다. 지수는 으슬으슬 추워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지수야, 이번 주말에 미영이 커플이랑 영종도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기로 했어. 우리 오빠가 운전하면 편히 갈 수 있을 거야. 같이 가자. 너도 그 남자를 데리고 와.”


“이제, 그 남자를 안 만나.”

“뭐라고?”

“조개구이 먹으러 갈 때 시계집 남자 데리고 오라며? 그 남자랑 연락 끊은 지 꽤 됐어.”

“지난주에 만나러 간다고 했잖아.”

“사실은…… 그때 어떤 여자를 만나고 온 거야.”

지영은 숨죽이고 지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머릿속에서 그린 장면이 마침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수는 자신이 수백 번 고민했지만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는 말의 시종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니깐, 최근에 계속 연락하던 상대가 여자라고.”

“장난이지? 너, 저번에 그 남자랑 잤다며.”

“응. 여자랑도 자.”

“미영이도 그걸 알고 있니?”

“아니,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지영은 잠시 멍해졌다.


지수는 비밀을 말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지영을 배려 못한 것 같아 민망해서 벽을 바라봤다. 그래도 지수는 지영이라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다. 눈을 들어 지영을 봤다. 장난기는 가시고 하얗게 질려있었다. 믿을 수 없으니깐 장난이었다고 말해달라는 애원하는 얼굴이었다.


“미영이한테는 비밀로 했으면 좋겠어.”

지영은 얼굴을 찌푸리고 지수를 다시 봤다. ‘너는 누구니?’라고 묻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7화원 룸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