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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원 룸 09화

원 룸 8.

by 원더혜숙

한 방에 살고도 서로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영자매는 지수보다 늦게 귀가했고, 아침에 일찍 나갔다. 세 여자는 식사를 따로 했다. 냉장고의 반찬은 조용히 썩어갔다. 그것은 지수가 한 고백의 결과일 것이다. 지수는 짐작이 틀리길 바랐지만, 둘 다 짠 듯이 그리 얼굴을 달리할 수는 없었다. 지수는 지영을 의심했고 씁쓸했다. 한편으로 영자매는 감정에 솔직했다. 지수는 그들 행동의 이유를 따질까 고민했다. 감정이 팽창하고 불포화하여 폭발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날은 미영의 승무원 합격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수는 그들이 문자로라도 알려주길 바랐다. 무소식은 꼬리가 길었다. 지수는 발을 끌고 집으로 걸었다. 지수는 편의점을 지나다 고깃집에서 탄 고기 냄새를 맡았다. 지수는 무심코 어둑한 식당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영과 지영, 그리고 그들의 연인이 딱 붙어 앉아 있었다. 화기애애해 보였다. 홀리듯 지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들 앞에 섰다. 일행의 시선이 지수에게 쏠렸다. 축제 분위기는 애매해졌다. 침묵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지수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미영아, 승무원 합격 축하해. 같이 축하하고 싶은데 이렇게 처지가 다른 사람이랑은 같이 할 수 없는 네 마음을 내가 이해해 줘야 할 것 같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영이 받았다.

“네가 미영한테 말했지? 그래서 둘 다 나를 피하는 거겠고.” 어리둥절한 남자 둘이 지수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조용한 데 가서 말하자.” 지영이가 지수의 소매를 끌었다.


“내가 무슨 병에 걸렸니? 너네는 정상으로 태어나서 내가 희귀종으로 보이지?”말을 맺자, 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수를 쏘아보며 물었다.

“너, 혹시 나, 좋아하니?”

“나는 사람을 좋아할 수도 없는 거야?”

미영은 그제야 이해된다는 듯이 혀를 찼다.

“나는 너랑 더 이상 한 방에서 못 살겠으니깐, 좀 나가줬으면 좋겠다.” 미영이 말했다.

“울렁거려. 내가 이륙하는지 착륙하는지 나도 모르는데 그 느낌이 동일해.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억울한 건 나야. 너희들 표정을 보면 더 잘못한 것처럼 울렁거려.”

지수는 쥐어짜듯 말을 꺼냈지만 또 장난처럼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안 마셨지만 취기때문에 지수는 속은 울렁거렸다. 욕지기가 났다.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네가 언제 말했던 양심이 아니니? 그것과 이건 달라? 나도 너희처럼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간을 볼 수 있는 거잖아. 너희랑 내가 뭐가 다르지?”


‘내가 누군가와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들이 이해해 줬을까?’ 그 과정의 지저분한 꼴은 치부인 걸까. 지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누군가를 진실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빈 껍데기 같은 자신이 지독히도 혐오스러웠는데, 친구들의 눈에서 그걸 보았다. 벌레가 징그러워서 피하는 본능적인 혐오의 실제가 거기 있었다. 상냥하던 그들의 눈이 돌연, 별종을 역겹게 쳐다보았다.


타인의 눈에 씐 셀로판지는 벗길 수 없다. 지수는 그런 덧씌운 시선이 가장 두려웠었다. 가까운 사람들의 눈의 비친 혐오는 자기혐오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고 외로웠다. 뜨거운 것에 덴 어린아이처럼 지수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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