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의 말처럼, 지수도 그 원 룸에서 같이 숨 쉴 수 없었다. 지수는 몇 개 되지 않는 물건들을 쌌다. 며칠 전, 오빠가 가게 일을 도와달라는 호출을 받았다. 이 일이 없었다면 고민을 할 여지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선명해졌다. 지수는 영자매에게 알리지 않고 원 룸 문을 쿵하고 닫았다.
지영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 듯 지수를 보고 눈인사했다. 지수의 목을 타고 슬금슬금 무언가가 기어올랐다. “꺼져. 꺼지라고.”라는 말이 혀끝에 달랑거리다 지영의 뺨에 부딪혀 떨어졌다.
“내가 아웃팅 한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다 알게 됐는 걸.”
“상관없겠지만, 사실은 중요한 거야. 미영이가 어느 날 네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서 글을 읽고 댓글을 읽다가 눈치챘나 봐. 전 매니저가 너한테 집착했다며? 그때 전화 통화를 우연히 들었대. 그리고 네가 일본에서 보였던 행동들로 짐작했대. 고깃집에서 확신했던 거고.”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지수를 싣고 문을 닫았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았는데 열렸던 문은 그대로 닫혔다. 사랑은 애매했고 우정은 허무했다. ‘아마도 나를 둘러싼 세계는 원래 애매모호하고 알 수 없다.’라고 지수는 생각했다.
지수는 인천대교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뻘을 보았다. 매끈한 검은 뻘 표면에 생명의 숨구멍이 뻥끗뻥끗 뚫려 있었다. 구멍 수 천 개가 별처럼 깜빡였다. 흐늘흐늘한 인조 가죽에 지영과 미영의 표정이 오버랩되었다. 숨 막혔다. 버스는 공항처럼 창을 열 수가 없다. 원 룸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기가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자유롭게, 공중을 나는 비행기처럼 날아가고 싶다. 미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