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보행자거리에서 국제음식 페스티벌이 열렸다. 만날 사람 없어도 축제 분위기를 즐기러 나갔다. 고국의 음식과 다른 햄버거, 소시지, 피자, 스페츨레 등의 음식들 가운데, 이국적 음식 냄새가 나를 고국이 속한 아시아 대륙으로 보냈다. ‘우리 태국 카레 먹자.’ 나는 맵고 붉은색 카레를 골랐고, 남편은 볶음 누들을 주문했다. 우리는 힌터레 가세(Hintere Gasse) 어귀에 마련된 독일식 비어 가든 벤치에 앉았다. 아이는 자고 있었다. 뒷골목은 조용했지만 하웁스트라세는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잦았다. 벤치에 앉아 귀한 햇살에 잠시 몸을 녹였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의 바이올린의 경쾌한 음이 머리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남편이 음식을 가져왔다. 향긋한 재스민 라이스와 레몬 그라스 향이 상큼하게 입맛을 자극했다. 한 입 두 입 먹었을 때 누가 벤치로 다가와 고개를 올렸다. 뒤에도 자리가 있는데 굳이 우리 옆에 앉겠다는 건지. 빈 벤치들을 힐끔했다.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가 우리 옆자리에 양해를 구하고 앉았다. 마주 앉은 사람과 몇 마디 나누지 않는 게 이상하리만큼 비어 가트너의 테이블은 좁다.
나는 평화로운 햇살 요양을 방해를 받아서,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서 불편했다. 카레를 묵묵히 먹었다. 독일 남자들은 우리를 위해 영어로 대화했고, 가끔 여자가 말을 섞었다. 나는 아이 유모차를 밀었다가 당겼다가 했다. 이 작은 도시에 이 회사 동료가 아닌 게 이상할 정도이지만 알고 보니 남자 둘은 회사 동료였다. 각자의 부서가 어디 있는지, 집까지 얼마나 가까운지 등 가볍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금세 공통점을 찾았다. 나와 남편은 중국에서 만났고. 그들은 케냐에서 만났다. 독일인과 외국인 커플, 여자와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잠시 스치는 인연이겠거니, 밥을 먹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국에서 우간다 친구들 틈에서 노란 콩처럼 끼여서 놀았던 일, 또 옆방 르완다 출신 룸메, 공항에서 만났던 수많은 흑인들까지, 그들과 이어진 인연의 끈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한다면 더 살갑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겠지만… 남자들의 대화가 금방 끝나길,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시선을 두고 싶은 대로 두기만 바랐다.
마로니에 잎이 빨갛게 타고 같은 색의 열매가 떨어지자 곧 겨울에 들어섰다. 눈이 내려도 도시는 금방 눈을 녹였다. 남편은 겨울 어느 날, 회사 앞 버스 정거장에서 온몸을 미라처럼 칭칭 두르고 있던 아프리카 여자와 마주쳤다. 축제 때 만난 그녀. 사랑니를 빼고 집에 가는 길, 바로 언덕 위에 살고 있었던 그녀는 눈이 녹지 않는 경사진 빙판길을 걸어갈 수 없다고 덜덜 떨며 말했다. ‘당신 아내에게 전화번호를 전해줘.’라는 말을 남편에게 남겼다. 그렇게 그녀의 전화번호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 번호를 등록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한번 만나서 커피 한 잔 해.”
머지않아 친구가 나를 집에 초대했다. 그녀는 갓 출산했고 우리는 커피숍보다는 집이 편한 아기 엄마들이었다. 그녀는 언덕 하나 차이로 눈이 많이 내리는 언덕에 살았다. 겨울날 유모차를 끌고 그 길을 오르기에는 위험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운전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몇 번의 실전 운전 수업을 받았다. 이 날을 위해 그런 노력을 했던 게다.
오랜만에 친구를 위해 김치를 담갔다. 맵지 않고 발효가 잘 되어 먹기 딱 적당했다. 며칠 전부터 걱정한 걸 치면 그냥 친구가 사는 언덕을 부숴버리고 걸어서 만나고 싶었지만 이미 약속했고 결전의 날은 성큼 다가왔다. 운전이라는 언덕은 꼭 넘어야 했다. 싫어도 이 날은 꼭 이겨내고 싶었다.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 학원에서 배운 대로 '위험한 순간에는 브레이크를 밟아라.' '감속하라.'라는 남편의 조언을 새겼다. 또 저속일 때 차는 어디를 처박아도 결코 위험하지 않다. 차는 이동 수단이지 누구를 다치게 하는 무기가 아니다. 누구도 스스로를 다치게끔 운전하는 본능은 없다.라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다졌다.
아이를 뒷좌석 카시트에 태웠다. 집 골목에서 나오면 도로에서 직진하는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다른 차가 오기 전에 진입을 해야 했다. 초보에겐 그것마저도 버겁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금이야!!' 하고 기세를 몰아 도로에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 사거리는 혼잡해서 미리 질겁했다. 다행히 차가 적었다.
그날은 눈 온 다음날이다. 서리가 반짝반짝 얼어 잔털처럼 돋았다. 덜덜 떨면서 언덕길을 운전한다. 경사 45도 정도 될까. 히브리드 10년 구형차는 모터를 돌리면서 힘겹게 웅장한 소리를 냈다. 서리와 얼음투성이 언덕길을 긴 수증기 꼬리를 달고 서행했다.
긴장으로 땀이 나고 식어 추위로 덜덜 떨었다. 몸이 미묘하게 떨렸다. 심장이 벌떡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이 실제로 터져 나오는지 잠시 기다렸다. 심장은 쿵쿵 뛰었지만 실제로 터지지도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내 머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해도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제발 뒤에 다른 차가 붙지 않기를… 나를 그냥 내버려 두길... 다행히 뒤를 돌아보니 텅 비었다. 그리고 내가 올라온 길에 찔끔 놀랐다.
나는 오른쪽 가드라인을 박을까. 맞은편에서 차가 오기라도 하면 차선을 넘어설까 불안했다. 시속 30km, 내비게이션으로 친구 집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면서 여러 번 뒤에 차가 붙는지 확인했다. 아기는 잠자코 있었다.
겨우 친구 집 앞에 도착했다. 5층짜리 아파트, 이렇게 높은 건물을 근방에서 본 적이 없다. 아파트 앞 주차장은 차가 빼곡했다. 아파트에서 먼 뒷마당 쓰레기 분리 처리 장에 넉넉하게 주차했다. 아이를 데리고 4층까지 올랐다. 그녀가 미리 나와있었고 아직은 어색하기만 했던 친구에게 김치를 줬다. 까만 얼굴에 바짝 마른 입술, 하얀 치아가 나를 반겼다.
“이게 뭐야?”
“김치라고, 독일의 자우어 크라우트 같은 발효 음식이야. 유산균이 많아서 몸에 좋지. 약간 맵지만 아프리카 사람들도 매운 거 즐겨 먹지? 우리나라에는 함께 먹어야 친구가 된다는 말이 있어. 친해지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먹을 걸 주는 거야. 이왕이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일상의 끼니는 무심하고도 정성스러움이 무섭고 위대하지. 매일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하므로, 어떤 장소나 음악보다 음식과 관련된 기억은 더 자주 떠올라. 비슷한 재료나 먹거리를 보며 밥 먹듯이 늘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될 테니깐. 그래서 함부로 먹을 것을 주지 말라는 말도 있고.”
친구는 커피와 초콜릿 쿠키를 내어오고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아이는 어항을 구경했다. 아이는 투명한 어항 속의 잔 흰 물방울무늬 검은 청소 물고기 비파, 노란 물고기 알지티어와 수초의 자잘한 흔들림을 구경하며 턱받이 가재 수건이 흥건해졌다. 넋을 잃었다. 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누구 집에 간 날이다.
“아 참, 나 이혼했어. 나중에 알게 되는 것보다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 남자는 무능했고, 무감각했어. 여기서 한 시간 떨어진 도시에 살아. 이혼하고 고국에 돌아갔다가 지금 남자를 만나 2년 전에 다시 여기 왔고, 전남편과 한참 이혼 소송 중이야. 그 와중에 임신했어. 결혼은 잠시 미뤄야 하지만,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지. 그나저나 이렇게 영어로 가볍게 소통할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다. 앞으로 아시안 음식도 얻어먹을 수 있겠고.” 그녀는 튼튼한 이를 드러내며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문이 없는 사람이었다. 불쑥 다가와 덥석 손잡았다. 우리 둘은 영어를 하고, 독일 남자를 반려자로 두고, 이제 낯선 타향에서 갓 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적응해야 했다. 같은 처지로서 그 애로사항을 아주 잘 알았다. 그녀는 내 삶에서 가장 가까웠고 실제로 진실되게 가까워졌다.
집에 갈 시간, 다시 이가 덜덜 갈릴만큼 떨려왔다. “나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나 지금 달달 떨고 있지?” “나도 운전 배운 지 얼마 안 됐어. 나도 너처럼 긴장해.” 그녀의 위로에 힘이 났다. 작별 인사는 최대한 밝게 했다. 후들후들거리는 양손으로 핸들을 잡았다. 어디 가는지 모르는 아이 눈에는 불안의 흔적이 없다. 위로로 생긴 용기는 금방 사라졌다. 달라진 건 없이, 현실에서 '나는'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여전히 차체를 가늠할 수 없고 앞뒤가 보이지 않으며, 뒤에 차가 오면 겨드랑이에서 땀이 났다.
내리막은 오르막보다 힘들었다. 미끄러워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너무 세게 밟아 몸이 앞뒤로 휩쓸리기를 여러 번. 왼쪽으로 커브를 돌고, 직진 차선에서 맞은편에 차가 오는지를 확인하고 왼쪽으로 꺾어 집 앞에 차를 댔다. 시동을 끄고도 손발이 미세하게 떨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말 못 하는 아기에게 고개를 돌려 엄마 해냈어”라고 소리 질렀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배시시 웃었다. 그제야 나는 첫 운전을 성공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길을 운전한 그날 대단한 걸 해낸 것처럼 벅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