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이 오리라는 걸 믿지 못했다. 기다린 건 아니지만 이 날이 올 것이었고 마침내 왔다. 이제는 그렇게 지나치며 인사하지 않는 엄마들과 나보다 더 굳은 얼굴을 하는 선생님들 혹은 무슨 말을 할지 잘 몰라 망설이는 사무직 직원들까지 츄스 하고 영원히 떠난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안에서 문을 열어 주길 기다린다. 그들은 문은 얼마나 두껍고 높고 묵직한가. 관공서, 병원, 화장실까지 문들은 비스름하다. 고의로 숨겨 놓았던가 싶을 정도로 분간이 어렵다. 딱 하나의 표지를 통해 닿을 수 있다. 명패의 의사 이름은 깨알처럼 작다. 어떤 문이든 그 문을 열기까지 험난하다. 예약을 해야 하고, 누군가의 허락 없이는 들어설 수 없다. 들어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이유다. 그리고 그 위용에 수그러들지 않게, 어깨를 곧추세워야 한다.
인터폰이 삐-하고 전자음을 냈다. 소리를 듣자 문을 힘껏 밀었다. 아니면 금방 닫히는 문은 나를 언제나 긴장하게 했다. 딱 문에 붙어서 이제나저제나 소리 나기를,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상하다. 문을 밀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담장 너머 유치원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푸라우… 윈터… 문 좀 열어 주세요.” 정원에서 아이들을 보던 선생님이 직접 와서 문을 열어줬다.
“또 문이 고장 났나요?” “몇 년 동안 얼마나 자주 고장 났는지 몰라요. 고장이 안 나면 이상한 거겠죠. 기술자가 와서 고쳤는데 여러 번 고장 나요. 아예 문을 바꾸든지 어떻게 하던지 해야지. 이 일로 이곳을 드나드는 학부모 특히 직원들만 골치 아프죠.” “고장 나면 선생님이 나와서 열어줍니다.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걸요. 이렇게 얼굴 마주 보고 몇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고요. 앞으로 이런 친절한 대접을 어디서나 받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런 얽히고설킨 농담을 했다. 사실, 다시 문고장이 나더라도, 여기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날 듯 기뻤다. 상관할 바 아니지만, 선생님을 바라보며 당신은 아직도 몇 해나 그걸로 고통받아(leiden)야겠지요. 문은 계속 고장 나고 또!라고 불평을 외치겠지만. 수많은 어린이와 학부모가 이 철제문을 들락거리겠지요. 나와는 상관없어요.(Das ist mir Wurst.)
아이가 정원에서 잘 놀고 있는지 보고 계단을 올라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이의 포트 폴리오를 받아 들고 복도와 계단에 아이 만들기와 그림, 신발장의 사진까지 뗐다. 그 앞에서 6년 동안의 기록이 쌓인 대갓집 족보처럼 두꺼운 포트 폴리오를 들고 섰다.
그저께 마지막 담당 선생님과의 한 시간 동안의 상담을 마쳤다. 처음 그곳에 앉았을 때 긴장하고 떨리던 느낌이 선명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3층에서 계단으로 통하던 무거운 투명 유리문을 힘겹게 열어서 급하게 나오던 날의 찌릿함이 떠올랐다. 그때는 말 한마디도 못했다. 남편의 꽁무니를 쫓으며 그들이 나를 훑는 시선을 피했던 걸 생각한다. 이제는 혼자서 당당하게 묻고 싶은 말, 감사의 표시, 작은 초콜릿까지 전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유 있고 뿌듯하게 그 문을 나왔다.
몇 천 번을 이곳에서 서서 긴장하며, 누군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오늘만큼은 누구라도 마주쳐서 내 감상을 나누고 싶었다. “프라우 윈터.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6년 동안 이곳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그 말에 나는 돌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누구와도 그렇게 눈 마주침을 하고, 마지막을 인상 깊게 남기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몇 초 사이에 눈에서 눈물이 찰랑거렸다. 프라우 윈터는 어색하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말했다. “시간 참 빨라요. 엊그제 마테오가 적응기간을 가졌었는데. 이제 말도 잘하고, 친구도 있고, 숫자도 셀 줄 알고요.” “힘들 때 유치원이 있었어요. 잘 보살펴 준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며칠 전,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두 선생님이 아이를 그네처럼 흔들다가 깔아 둔 매트리스 위에다 던졌다. 유치원생은 슐 튜테(초등학교 입학식 때 가져가는 고깔 모양의 봉투)를 들고 책가방을 짊어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집 철제문을 나오면서 내 인생도 이제 아이들처럼 초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우울해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이곳에 적응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와서 구시가지 카페에서 도넛을 먹었다. 스산하기만 하던 도시는 내 일상이 되었다. 작아서 아담하고 깨끗하고, 마로니에가 빨갛게 떨어지고, 싱싱한 화분 꽃이 웃는 곳, 지나가면 꼭 남편의 s동료를 만나서 시선을 피해야 하는 곳, 내가 절교한 친구를 만날까 봐 우회하는 곳 하지만 친한 친구와 우연히 마주치고 수다가 건물 곳곳에 울려도 부끄럽지 않은 곳. 6년 전, 호젓하던 일요일 올드 시티의 모퉁이 카페에서 언뜻 전등 빛을 보았다. 그 카페는 몰랐을 뿐이지 일요일에도 정오까지 손님을 반겼다. 그 이후로 지역 특색 제과는 전등 빛 아래서 항상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