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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Oct 25. 2024

말하지 못하는 날들

감정이 극에 달하면 별난 맥락에서 단어 하나, 음악 한 곡, 바람 한 점과 만나 눈물이 된다. 그날,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그 전날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전전날이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철제문에 안전하게 들어가고, 아이가 정원에서 놀았던 삽을 정리하느라 오래 걸려서 기다리던 참이었다. 멍하게 건물 아래 빗물 튐 방지용 조약돌을 보고 있었다. 그 아래 버려진 작대기 하나. 그저께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지고 놀다 집에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던 거다.

영어 원어민 교사가 건물에서 나오다 마주친 내게 인사했다. “잘 지내요? Alles okay?” 꾹꾹 참으며 괜찮아요, 잘 지내요,라는 말을 하다가 어느 날 그 말이 입술에 꼭 붙어 안 떨어지는 날, 그날이 그랬다. 그 말 불투명한 말 대신, 뜨거운 속 투명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이는 세 살이 됐는데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와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아이는 자기 욕구를 칭얼거림과 울음으로 표현했다. 그 표현을 엄마의 모성 본능 혹은 그간 아이와 부대낀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가 관찰하고 실감한 사실을 누군가가 태연하게 조금의 감정을 실지도 않고 말해도, 그것은 더욱 처절한 팩트로 다가왔다.

걱정했다. 몇 년 동안의 유치원 생활에서 마음 맞는 친구가 없었다. 나도 친구가 없었으므로 친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친구가 없는 것은 내 탓일까. 플레이 메이트를 하고 싶어서 함께 노는 아이가 있어야 그 엄마와 친해질 것 같은데 3년이 지나도록 누구네 엄마가 아이와 친하니 함께 플레이 데이를 하자는 말이 없었다. 아이는 그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집에서는 남자와 영어로 대화했다. 아이와는 한국어로 대화했다. 남편은 아이와 독일어로 대화했다. 아이의 언어 발달이 늦어졌다. 말을 못 하는 것이 우울한 내 탓일까. 

독일어 수업을 들었지만, 여전히 버벅거리며, 컨디션에 따라 문법이 꼬였다가 풀렸다가 어떤 날은 그냥 그것 조차도 말하기 싫어서 네(Ja)를 하거나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갔다. 하루하루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 끝은 어딜까. 나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쉬고 철문 앞에서 기다렸던 것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다. 

“애가 아직 말을 못 해요. 집에서 한국어와 영어 독일어까지 아이가 헷갈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늦어지는 게 아닌가… 너무 걱정이 돼요. 그래서 친구가 없는 게 아닌가…….” 그 순간에 할 말이 아니었다는 걸 그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몇 년간의 외국 생활 나 자신을 지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했던 고집이 엉뚱하게도 그녀가 나와 같은 외국인이라는 동질감을 만나 튀어나왔지만 후회했다.  

“바이 링구얼 환경에서 아니, 당신 아이처럼 삼중 언어에서 자란 아이들이 말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려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해결해 주니까.” 눈에 가득 찬 눈물이 콧등으로 떨어질 사이 나는 고개를 돌려 작대기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지나쳐 정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괜찮을 거예요. … 오래 걸리는 법이니깐요.’ 그 말이 귓가에 울렸다. 눈물이 나오기 전에 급히 닦았다. 눈물이 흐르면 곧바로 얼어버려 고통받는 지옥에 인간들처럼 다음 눈물을 참았다. 선생님은 내 눈물을 본 것 같다. 어떤 따뜻한 위로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프라우 부세는 그런 친절을 베풀 만큼 살가운 사람도 아니었다. 우연히, 나를 만났고 인사했을 뿐이다. 나는 얼른 저 철문을 나가기를 바랐다. 나무 작대기를 보며 아이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무척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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