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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Oct 25. 2024

사랑 받고 싶은 영혼

독일에서는 생일을 맞으면 직장이나 유치원에 직접 만든 머핀을 가져간다. 그걸 해보고 싶어서 거의 매일 연습삼아 케이크를 구웠다. 그대로 레시피를 따라한 것 같은데 퍼석하고, 떡 지고 순수하게 밀가루 맛이 났다. 두 번째도 실패, 세 번째도 실패. 반복되는 실패에서 패배감을 느꼈다. 어찌 노력하면 될 것 같아 보였던 베이킹마저 실패하다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사이 아이는 돌을 맞았다. 결국 직접 케이크를 굽는 대신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다. 파티를 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누구를 초대할 건지, 음식은 무엇을 대접할 건지,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 또 생일 파티 플래카드 준비 등 일거리가 버거웠다. 무엇보다 그게 누구라도 손님을 대접하고 응대하기는 피곤하다. 


남편의 아이디어로 우리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남편의 동료 중국인 부부와 독일인 커플을 초대했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고 그때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크루아상, 양귀비 씨가 달린 빵, 바게트 빵, 크림치즈, 소시지와 각종 과일 상 가득 차렸다. 4인 분을 생각하고 접시를 세팅했다. 


중국인 커플은 전날 밤에 못 온다고 연락을 받았다. 독일인 커플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 30분이 지났다. 마침내 초인종이 울렸다.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은 독일 여자가 들어왔다. 아이를 위해서 누군가를 초대할 마음을 가까스로 냈던 건데, 그래도 아이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마음을 썼는데 쓸쓸하게 여자만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우아한 옷차림이었다. “아이와 남편은?” “안 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 그것도 너무 늦게. 그게 뭔가, 그들은 왜 나를 무시하는가 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지만 꾹 참았다. 아이 생일 파티에 다 초대했는데, 그것도 늦게 달랑 엄마만 오는 게 말이 되니.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보기 싫어졌다. 앉으라는 말도, 안 했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를 두고 남편은 그녀에게 의자를 건네고 커피를 대접했다. 그녀는 생일 상을 한번 훑어보고 빵을 조금 뜯어먹었다. 남편과 회사일에 대해서 대화하고, 나에게는 독일어 향상을 위해 독일 뉴스를 보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초대에 대한 감사 인사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랑은 차별적이다. 농도에 따라 관계는 달라진다. 진할수록 경계를 허물고 허물없이 다 보여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나는 어렵게 내민 손을 거절당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관계의 농도차에 따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차별적인 태도에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기분이 처지고 슬퍼졌다. 나도 사랑받길 원했다.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사람까지도 존중하라. 모든 사람 안에는 우리 안에 사는 영혼과 똑같은 영혼이 살고 있다.”(쇼펜하우어) 사랑받고 싶은 영혼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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