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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Oct 25. 2024

아프면 엄마가 그립다

  사육제를 앞둔 2월, 햇살이 여름처럼 뜨거워졌다가 식었다가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날씨에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금요일 오후부터 아이는 하루 종일 열 감기를 앓았다. 일요일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보내고 사흘 되던 날, 남편이 예언했다. “첫째가 나아지니 이제 나, 다음은 당신 차례야.”


아이 곁에서 책 읽고, 결막염으로 인해 안약을 수십 번 넣었지만, 뭐 그렇게 괜찮을 줄 알았다. 일곱 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는데 뒤척이다, 새벽에 거실에 내려와서 잠을 청했지만 머리가 무겁고 아프다. 머리 깊숙이, 뒤통수까지 그 아래 신경이 있다면 거기부터 우직하게, 머리에 뚜껑이 있다면 두피 아래로 쭉 퍼지는 미세한 통증이었다. 열이 있는 건 아닐까. 머리는 식어 있다. 으슬으슬 춥다. 커피를 한잔 마셨다. 아이와 남편이 만들어내는 일상 소음이 자극적이어서 다시 침대로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잤다. 잔 것보다 더 많이 깨어 있던, 꿈을 꾼 것보다 망상에 더 많이 빠져든, 편하게 누운 것보다 아픔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인체에 뼈마디가 몇 개가 있을까. 발목, 팔목, 허리, 옆구리, 고관절, 팔꿈치, 어깨 등 다른 신체부위로 이어지는 큰 뼈마디를 주리로 뭉근히 늘어뜨리는 느낌이다. 몸을 트는 사소한 동작에도 근육이 아팠다. 기분 나쁜 두통이 머리천장에서 꾹 짓눌렀다.


  한참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아직도 밝은 대낮, 허기가 져서 바나나를 먹는데 어지럽다. 바나나 당분이 위 속에 들어가 열을 내는 것 같다. 등에서 열이 나고 목에서 열이 나고, 속이 쓰리다. 눈 뜨고 참지 못해 감았다. 눈을 뜨니 다시 허기졌다. 남편이 끓여다 준 오트밀을 먹고 속이 메슥거렸다. 한 입 먹고 누웠다. 속이 쓰린 게 게워내고 싶다. 꾸역꾸역 오트밀 한 입을 소화하느라 이리저리 뒤척이며 끙끙거리며 앓았다. 


다시 정신이 들었다. 낮에 이렇게 자도 될까. 이렇게 하루 종일 자면 밤에는 또 잘 수 있을까. 걱정도 할 수 없다. 아프고 또 아프다. 자는 중에도 여러 번 그런 생각에 빠졌다. 잠에서 깨면 억지로 오트밀을 한 입 더 먹고 똑같은 구역질을 꾹 참고 잤다. 마침내 저녁. 두통이 여전하고 무겁지만, 근육통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웠다. 배가 고팠고 먹어야 했다. 그때 고국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그럴 때는 콩나물 국을 뜨겁게 마셔야 하는데…” 그런 게 여기는 없다. 콩나물은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몸져누운 아내를 위해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걸 해주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나는 내 앞에 보이는 음식을 먹는다. 체했을 때 수분과 염분을 더해준다는 오이 피클을 세 개 먹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빵에 버터와 꿀을 발라서 먹었더니 살 것 같다. 기세를 몰아 사과 하나를 다 먹고, 마른 황태채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더니 살 것 같다. 


무상무념으로 병마와 싸운 힘겨운 하루.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회복기를 보이는 아이와 TV를 본다. 그 어두컴컴한 거실과 떨어져, 나는 내 침대에서 조용히 병을 이겨낸다. 


몸살감기가 들면 이불을 돌돌 감고 핏기 없는 누렇게 뜬 얼굴만 뺀 채 땀을 뺐던 엄마가 겹쳤다. 그동안 애쓴 몸을 보듬듯 껴안는다. 등과 목에 식은땀이 흐른다. 땀이 더 이상 나지 않을 만큼 땀을 내고 나면, 몸에 슬슬 이 기운이 차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밥을 하고 시래깃국을 끓이던 엄마. 먼저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 두고, 축 처진 어깨로 맹물에 밥을 말았다. 맥없이 숟가락을 들고 엄마가 말했다.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지. 어떡하겠니.” 아직도, 엄마는 그렇게 몸살을 이길까. 아버지는 아픈 엄마에게 약이라도 사주겠지. 저녁 무렵 아버지가 귀가하면 마구간에서 소가 음메-하고 울었다. 아버지는 소여물을 주며 멀리 떨어진 자식을 그리워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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