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시부모님이 손자를 보러 오셨다. 저녁으로 미트볼과 볶음 채소, 스매시 포테이토를 요리했다. 그들은 서둘러 먹고 왕성하게 대화했다. 그들에게 첫 손자를 안겨줬다는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딴 한순간,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는 일은 엄마가 해야 한다는 불평을 접어두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다른 회사로 전직하는 사람들이 많고 숍플로어에는 우울한 기운이 감돌죠.” “그래도 브라질보다 나을 거 아닌가. 그래서 네 보스는 뭐라고 하지…”
독일어 수업을 갓 듣기 시작했을 때다. 반 친구들 중에서 말을 잘하는 편이었고 선생님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데 그들의 말은 샐러드를 씹고 있으면 잘 안 들렸으며 짧은 의견이라도 말하려면 단어들은 숨었고 문법이 뒤죽박죽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내가 대화에 참여하든 안 하든 개의치 않았다. 흐름을 깨면서까지 끼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밥을 빨리 먹었다. 아이 밥 먹는 걸 도와주고 물을 떠다 먹여주고, 아이가 흘린 음식을 치웠다. 그들은 아직도 대화 중이었다. 와인을 마시고, 일 년 동안 만나지 않은 것치고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슬그머니 일어나 남편의 그릇과 아이 것 시부모님의 그릇, 냄비를 치웠다. 식탁을 닦았다.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 중이었다.
아이와 나의 공용어를 써야 할 충동을 느꼈다. 한국어로 아기에게 말했다. “밥 먹었니깐 우리 놀러 가자.” 내 어투는 평상시보다 친근했다. 바로 식탁에서 일어섰다. 아이와 놀이방에 가서 놀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돌아갔다. 티브이를 보고 그들은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켜 놓은 티브이에 시선이 갔지만 못 알아들었다. 그들은 열심히 보고 있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다시 침실로 사라졌다.
일기장을 붙잡고 울컥했다. 쓸쓸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닐지라도 내 편이라고 생각한 남편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며 아이와 아내는 안중에도 없다. 천연스럽게 아내를 소외시키는데 가담했다. 그가 미웠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로 결정한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자 후회였을 수도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딸의 밥그릇에 밥이 남아있는지, 고기를 먹는지 물이 있는지를 살피며 식사 했다. 무뚝뚝해도 짧은 식사 시간만큼은 다른 어느 집처럼 따듯하고 화목했다. 상을 파하고 아무 말없이 티브이를 볼지라도. 내 가족들과의 시간이 그리웠다.
출산 후 몸조리할 때 먹을 것을 챙겨주고, 방의 적정 온도를 봐주고, 산모가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말소리를 낮추는 가족들이 없다. 그들과 몇 대륙만큼 떨어져 있고 이 차디찬 침대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불 안이 온기로 따뜻해질 때까지 부슬부슬 울었다. 온몸이 눈물에 젖어 무거워지면 잠들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자, 사랑을 일기에 썼다. 서운한 마음을 남편에게 표현하는 게 빨랐을 테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 생각은 많은데 말이란 도구를 제대로 다룰 줄 못하는. 초인종을 누르고 가만히 잠자코 기다리는 게 익숙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늦게까지 꾹 참는 사람. 표현 방법을 알았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산모의 감정과 기분을 오해 없이 남편이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심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감정 삭이기만 아는 사람.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걸 진작에 알았고 연락도 드물었다. 엄마에게 아이 영상을 보내고, 밥 먹었냐는 물음에 어. 에서 멈췄다. 그 뒤에 나는 아이와 홀로 남겨지고, 밥을 하고 목욕을 시키고 청소하고 장을 보고, 소통되지 않는 남편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멍했다.
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기 전, 가족을 떠나기 전, 그로 인한 고통을 예견했더라면 고국에 남았을까. 가족과 점점 멀어져 갔다. 가장 먼저 친척들의 경조사에서 다음은 가족의 건강 문제, 그다음은 좋은 일에서 명절까지. 나는 그들 곁에 없었으며 천천히 배제되었다.
관계에서 해방되는 일은 한편으로 편했다. 주말과 휴일, 명절까지 그 시간이 오로지 아이와 남편 위주의 가족에게만 흘러들었으므로. 그러나,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가족 상실과 비슷했다. 관계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떠나왔는데, 막상 아무와도 관련 없는 자유는 고독했다. 손 내밀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 같은 고독.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쌌고 그 사이에 광야가 생겼다. 사방으로 뻗어 방향이 없는 황야. 찬 바람이 불어오는 황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