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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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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돌아온, 아니 새로운 일상

일상으로 돌아온 오보라 씨의 삶은 다를 게 없었지만, 오보라 씨의 마음은 달랐다. 적어도 이제 이름 모를 괴물이 앞에 버티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보라 씨에게는 편마비 성 편두통이라는 적군의 이름을 알게 된 것만으로 큰 수확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싸움은 누가 더 영리하게 끌어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편마비 성 편두통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고 애쓸 것이고, 오보라 씨는 편마비 성 편두통이 무대에 등장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애쓸터였다. 오보라 씨는 마치 체스 판 위에 서 있는 퀸이 된 것 같았다.


월요일 점심시간이 되자 오보라 씨는 약을 챙겼다. 닥터 김은 오보라 씨에게 아침, 점심, 저녁 약을 챙겨 먹어야 되는 의무를 주었고, 마치 그것은 오보라 씨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약을 드셨는데 , 그게 어른의 조건인가 보다고 생각하게 됐던 오보라 씨였다. 식사 후 회사에서 약을 먹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보라님 아직 회복 다 안되신 거예요? 약 계속 드셔야 되는 거예요?”

“아 제가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신경과 약을 당분간 먹게 돼서요.”

“백신 부작용 있으세요? 제 친구도 백신 맞고, 한 달에 생리를 두 번 하게 됐대요. 그리고 저 아는 오빠는 여름인데 백신 접종 후 오한을 느껴서 병원 갔었어요. 생각보다 크고 작은 부작용 겪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


오보라 씨는 그제야


“다들 자신이 예민한 줄 알고 참고 있는 거예요.”


라던 닥터 김의 말이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오보라 씨는 회사의 모니터 앞에 “숨쉬기”라고 써서 노트를 붙여 놓았다. 그 말을 써놓고 하루를 지내보니 자신이 얼마나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오보라 씨는 평소에 타이핑 치는 소리가 빠르게 탁탁 들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는 했다. 아니 본인이 느낀 희열보다 회사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더 중요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보라 씨는 간간히 타이핑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뱉기를 반복했다. 혼자 타이핑을 치는 것에서는 닥터 김의 디렉션을 따르는 것에 성공했지만 아직 전체 회의 시간에는 긴장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회의실에 분위기가 조금만 무거워지면 여지없이 보라 씨의 오른팔을 떨려왔다.오른손으로 들어 올린 컵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이면 오보라 씨는 주머니에 있던 비상약을 꺼내 들었다.
 
 비상약에는 오보라 씨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뇌혈관 수축 억제를 도와 편두통을 치료를 돕는 씨베리움 캡슐과 메니에르 증후군을 잡아줘 어지러움을 막아주는 메네스 정이 들어있었다. 다행히도 비상약은 빠르게 효과가 있었고, 오보라 씨가 가장 우려하는 증상이 발작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언제 언제 증상이 발생하고 어느 때 비상약을 먹으면 된다는 법칙을 깨달은 오보라 씨는 가끔 이 법칙을 역이용하기도 했다.
 
주로 증상은 피곤할 때, 긴장할 때, 날씨가 습할 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 심해지고는 했는데 한 번은 너무 피곤해서 연차를 낸 금요일이었지만 마리는 엄마가 쉬는데 자신이 학교에 갈 수 없다며 놀이동산에 가자고 졸라댔다. 오보라 씨는 이 정도 피곤함일 때 시끄러운 놀이동산에 가면 100% 증상이 타나 나리란 걸 알았지만 마리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비상약을 주머니에 넣고 외출을 나갔다. 놀이공원에 도착한 지 2시간 만에 오른손이 떨려오고 어지럼증이 몰려왔으나 오보라 씨는 당황하지 않고 비상약을 삼켰다. 이내 놀랍게도 평온해졌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다시 증상이 슬슬 고개를 들었고, 오 보라님은 다시 한번 비상약을 들이밀었고 그날 하루는 무탈했다.
 
이렇듯 오보라 씨는 이제 오른쪽 마비, 아니 편마비 성 편두통과 나름의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닥터 김은 밤에 푹 잠들지 못하는 오보라 씨를 위해 저녁 약에 강박증 약으로 쓰이는 푸록틴 캡슐과 신경안정제인 알프라낙스정을 넣어준 것 같았다. 낮에는 분주하기로 해서 가끔 하던 생각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밤에는 한 번 생각이 시작되면 날이 샐 때까지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닥터 김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푸록틴 캡슐과 알프라낙스정은 정신과에서 주로 쓰는 약인 것 같았지만 오보라 씨는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약을 처방해 준 사람은 신경과 의사이니 말이다.
 

오보라 씨는 비상약을 먹어야 하는 순간들을 대부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예고 없이 오른쪽 저림이 찾아와 비상약을 먹어야 할 때는 왜 이 증상이 나타났는지 뭘 안 했어야 했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비상약이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적어도 증상이 호흡곤란까지 가지는 않았고,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전에 오보라 씨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커피를 들이붓고는 했는데 이제 커피숍에 들어가긴 했지만 빵을 사는 것으로 행동을 바꿔보았다. 동료들은


“보라님, 이제 커피 안 드세요?”


놀라고는 했지만, 커피 전문점 베이커리들이 구비하고 다양한 빵 덕분에 그리 아쉽지는 않았던 오보라 씨였다.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마카롱 하나를 사 먹은 보라 씨는 마리가 생각났다. 맛있는 빵을 만나면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오보라 씨는 마카롱 하나를 더 주문해서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일상은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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