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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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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보라 다움의 훼손, 그 승리

뜨거운 여름을 증상과 줄다리기를 하며 지낸 오보라 씨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월요일, 회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오보라 씨의 목적지는 가정법원이었다.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30여 년이 넘는 질긴 인연을 끊는다는 것이 이토록 간단한 일이라는 것이 오보라 씨를 놀라게 했다.


다만, 접수를 받는 직원은 서류를 보고 다시 오보라 씨를 보고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오보라 씨에게


“진짜 이렇게 하시게요?”


라고 눈으로 묻는 것 같았지만, 하루라도 더 오보라로 살지 않겠다는 오보라 씨의 결심은 확고했다. 아니, 오로라 씨의 결심은 확고했다.


오래간만에 병원 방문이 아닌 이유로 연차를 낸 하루를 뜻깊게 지내고 싶었던 오로라 씨였지만, 머리를 자르는 것은 너무 상투적인 새 출발의 클리셰 같아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로라 씨는 다만 머리를 묶을 수 있는 핀을 몇 개 고르기로 했다. 머리카락은 오로라 씨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머, 언니 머리 묶으니까 더 어려 보이시네요.”


오로라 씨는 액세서리 가게의 직원의 별 뜻 없는 칭찬에도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목적지는 마트였다. 오로라 씨의 장바구니는 박력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이스트, 초콜릿, 우유 등으로 묵직했다.


마리를 찾기 전 한 시간쯤 시간이 난 오로라 씨는 카페에 들어가서 베이글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좀 늦은 브런치를 즐기며 오로라 씨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 오로라 씨의 눈을 번쩍 띄우게 한 기사가 있었다.


백신 접종 후 뇌질환, 법원서 정부가 피해 보상 판결


백신을 맞고 뇌 질환 진단을 받은 피해가에게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코로나 19 백신 부작용 관련 피해 보상 소송에서 피해자 승소 사례가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A 씨는 지난해 백신을 접종한 뒤 발열과 어지럼증, 다리 저림 등 증상이 나타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은 뇌내출혈과 대뇌 해면 기형, 단발 신경병증 진단을 내렸고, 이후 A 측은 진료비 337만 원과 병간호비 25만 원의 피해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진병 관리청은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원회 심리를 거쳐 “질병과 백신 접종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A 씨는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원고가 예방접종 전에 매우 건강했고 신경학적 증상이나 병력도 전혀 없었다” 며 “예방접종 다음 날 두통과 발열 등 증상이 발생했는데, 이는 피고가 백신 이상 반응으로 언급했던 증상들”이라고 밝혔다.  


기사를 읽은 오로라 씨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자신은 질병관리청에서 보상 거부하면서 이의가 있으면 제기하라는 말을 흘려 넘겼는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분이 있다는 것에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오로라 씨가 백신 부작용 보상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는 백신을 맞고 예민한 척하는 사람들이라는 시선이 더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 같아 오로라 씨는 설레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오로라 씨 본인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까지 했다. 그때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1시, 이제 곧 마리를 찾을 시간이었다


‘혹시나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 어쩌지?’

‘다른 아이들 엄마를 만나면 뭐라고 인사해야 하지?’


생각이 길어지기 시작할 때, 그 생각을 멈추는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 "


마리는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자신을 찾으러 와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멀리서 엄마를 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이내 마리는 오로라씨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듯 물었다.


“엄마, 엄마 왜 머리 묶었어?”

“핀이 예뻐서 지나가다 샀어. 배고프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빵 만들어 먹을까?”

“빵은 빵집에서 사는 거 아니야? 엄마, 빵도 만들 수도 있어?”

“그럼, 엄마가 만들면 빵집에서 산 거보다 맛있을걸?”

“오! 좋아. 엄마 그럼 빵은 만들 거니까 빵 먹을 때 마실 음료수는 사가도 돼?”

“그래, 무슨 음료?”

“전에 엄마랑 같이 스타벅스 갔을 때 먹었던 망고 바나나 주스 먹고 싶어.”

“음, 그럼 먼저 사이렌 오더 하고, 조금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오늘 엄마가 데리러 와서 걸어도 좋아.”


마리는 스타벅스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스타벅스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을 때, 음료 제조가 끝났음을 알리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로라님, 사이렌 오더 하신 망고 바나나 주스 나왔습니다.”


장바구니와 음료로 두 손은 무거웠지만, 오른손의 저림이 자신을 저격하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 오로라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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