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실 나도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by 스테이시

소위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첫 출몰했을 때, 나는 10대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1세대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아이돌에게 요즘 말로 입덕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그룹은 바로 영턱스클럽이었다.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의 절반을 지배했던 바로 그 그룹 말이다. 약간의 뽕끼와 단조가 매력적으로 어우러진 노래 '정'의 멜로디와 가사는 이별은 커녕 사랑도 해보지 않은 꼬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는 집에서 나이키를 수도 없이 연습해 보았던 것 같다. 확신하건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나이키 도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매력 넘치는 덧니와 함께 웃는 것이 너무나 예쁘던 임성은 언니의 팬이 되었고, 임성은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턱스클럽의 1집 후속곡은 '못난이 콤플렉스'였는데, 가사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특히 '키 작고 예쁘지도 않아서'라는 가사에서 말이다. 내가 엄청난 미모를 갖진 않았지만 해피 엔딩이 있을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을 갖게 해 준 노래였다. 한 번 가요가 공감되기 시작하자, 나는 가요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이 끝났을 때 보니 나는 100장이 넘는 CD와 50개가 넘는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긁는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록은 제외하고 듣는 약간의 편식이 있었지만, 나는 가요 잡식성으로 성장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가요를 접하고 들으면서 소위 말해 가요에 대한 '감'을 키워나간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하지만 절대 음감이 아닌 사람으로서 노래를 잘 부르게 되는 전제 조건이 있다면, 음악을 많이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에게는 가요에 빠지기 전부터 살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할 때 목소리가 예쁘고 음색이 독특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었고 음역대가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희소성 있는 목소리였기에 그것에 조금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과천 소년 소녀 합창단 오디션에 아무 준비 없이 도전했다가 현장에서 거의 울먹이면서 대차게 망한 이유로 노래에 대한 생각은 접고 있었다.


그런데, 임성은 언니로 인해 다시 뭔가 마음속에 꿈틀거리게 된 것이다. 그 뒤로 중학생이 되자 아무래도 이성에 눈이 떠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젝스키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는 H.O.T와 젝키 중에 어느 한 진영을 정해야만 했고 나는 젝키의 연정, 기사도, 무모한 사랑 등의 단조 음악과 여리면서 단단한 장수원 님의 목소리에 빠져 젝키를 선택했다. 젝키를 좋아하면서 내 인생의 큰 획을 긋게 되는 일이 생겼었다.


바로 젝키가 찍은 영화 '세븐틴'을 관람한 것이었다. 거기 나오는 여주인공은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학교가 끝나고 나면 댄스 크루에 합류해서 춤을 추러 다니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런데, 그 여주인공이 어린 내 눈에 너무 멋져 보이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 여주인공은 아버지에게 혼나고 쫓겨나듯이 유학을 가서 더 이상 춤을 못 추게 되는 설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도 춤을 춰보기로.


그래서 고등학교에 가자마자 댄스동아리에 가입원서를 들이밀었다. 댄스동아리 오디션에서 베이비복스의 'Get up' 안무를 따서 췄는데, 선배들이 나만 따로 불렀다."야, 너 춤 잘 추네." 그러셨다. 그랬다. 반전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노래보다 춤에 더 재능이 있었다. 그 뒤 나갔던 경기도 댄스 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무대에 서면서 조금씩 조금씩 무대 위에서 가슴이 뛴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춤을 추고 있으면 행복했다. 물론 춤을 추면서 욕을 먹을 때도 있었다.


한 번은 학생 주임 선생님이 나에게 "너 춤추러 다니고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지" 라고 소위 말해 내 자존심을 도발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시험부터 졸업 때까지 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춤추는데 아무 잔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서. 정말 세븐틴의 여주인공처럼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싶었다. 이렇게 내가 약간의 음악성 그리고 나름의 춤 실력으로 뭔가 연예계에 입문해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구체화하고 있을 무렵, 연예계에 들어가고 싶은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생겼다.


바로 사랑에 빠진 것이다. 클릭비의 유호석(에반)한테. 나는 친구들과 클릭비의 공연장을 쫓아다니기도 했던 빠순이가 돼버렸다. 빠순이들에겐 닉네임이 있다. 그 가수가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붙이는 닉네임. 나는 '호석습격'이었다. 어느 날, 유호석 씨에게 정말 1미터 앞에서 편지를 직접 건넬 기회가 있었다. 근데 정말 너무 너무 잘생겨서 숨이 멎을 뻔했다. 나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유호석 씨 근처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내가 댄서가 되든 가수가 되든 연예계 필드에 입문하고 싶은 강력한 한 방이 되었다.


다행히 그때 같이 댄스 동아리를 하던 친구들도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 끝나면 교실에 혹은 공원에 모여서 같이 노래와 춤 연습을 했다. 당시 나는 장래 희망에 백댄서라고 쓰고, 엄마는 외교관이라고 썼는데 담임 선생님이 의견 란에 '학생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길 추천합니다.'라고 써주셨던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연습을 해서 친구들과 나는 2번의 큰 기획사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로는 누구나 응시 가능했던 SM 토요 공개 오디션이었다. SM이 압구정에 있을 때였는데 사옥 앞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1층 외부에는 H.O.T, 신화, SES, Fly to the sky의 사진이 걸려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건물에 입장해서는 지하실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던 것 같은데 차례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때 실감이 났다. 정말 많은 사람이 딴따라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차례가 되자 먼저 외모 체크를 위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라고 했다. 그날도 나는 소위 말해 간미연 머리를 하고 있었고, 평소에 양쪽 턱이 비대칭이라는 것을 큰 콤플렉스로 여겨왔던 나는 그만 그 디렉션에 따르지 않고 말았다. 이미 거기서 탈락 확정이었을 터. 아이돌이 되는 데는 노래와 춤 말고도 더 중요하게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뼈 저리게 깨닫고 말았다. 바로, 외모 말이다. 노래는 고호경의 '혹시'를 불렀었는데, 그날 따라 노래가 잘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곡 요청이 없는 걸 보니, 그 자리에서도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노래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바로 한 곡 더 시키는 것을 보았었기 때문이다. 합격하면 3주 안에 연락을 준다는 말은 으레 공지사항이었지만, 3주간은 학교에서도 폰을 놓지 못하고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첫 도전에 실패를 맛보고 나서도 한 번 더 도전을 했다. 이번에는 도레미 레코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회는 쉽게 얻은 기회가 아니었다. 나는 그 당시 같이 연습하던 우리 팀을 어필하기 위해 회사 담당자에게 이메일 보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동영상 까지는 아니고 사진을 보내면서 댄스 대회 수상 경력 등을 언급했던 것 같다. 놀랍게도 오디션 기회를 줄 테니 토요일 3시까지 회사로 오라고 했다. 나는 같은 팀원들에게 이야기를 알렸고 우린 또 열심히 준비를 했다.


그렇게 오디션 당일이 되었다. 토요일도 학교를 가던 시절이라 학교 끝나고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교복을 입고 바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런데 같은 팀 친구 2명이 자기들은 집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가보는 길에 시간도 촉박한데 왜 그러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친구들 입장에선 사복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약 40분 정도 약속 시간을 어기고 말았다. 가는 내내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들은 그들끼리 오라고 하고 나머지 팀원들과 먼저 출발했을 텐데, 그때 나에게 팀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중요해서 그러지 못했다.


늦었지만 감사히 디렉터 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은 우리의 노래와 춤을 보시겠다고 했다. 원래는 녹음실 부스에서 불러보게 하는데 우리가 늦어서 현재는 다른 가수가 사용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때 그분의 피드백은 평생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학생들, 이메일까지 보내서 굉장히 간절하다고 생각해서 기회를 준 건데, 사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부터 실격이야. 비도 오는데 멀리서 와서 일단 오디션을 보긴 했는데, 솔직히 학생들 모두 가수가 될 만큼 탁월한 범주에 들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너무나 명백하게 우리의 잘못이지만, 눈물이 났다. 친구들이 원망되기도 했다. 이메일을 보낸 것은 나였고, 다른 친구들에게는 쉽게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간절하지 않았던 걸까? 사실, 그분의 피드백에는 우리가 시간에 맞춰 왔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내 오디션 도전기는 끝이 났다. 곧 대입을 고민해야 되는 고3이 되기도 했고, 그분이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해주셨던 평가를 나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 뒤 그분이 말한 '탁월'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게 탁월함이 없다는 건 나의 춤과 노래, 나의 외모 관리에서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일까? 내가 춤, 노래, 외모에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걸까? 그렇게 내 고민은 ‘아이돌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 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 내 눈에 콩깍지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