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고 나면 부모에게는 쉽지 않은 숙제가 생긴다. 바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이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은 인생에서 굉장히 적은 횟수, 보통은 1회에서 2회만 할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모두 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엄마, 아빠,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도 아이의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칠 이 작명 작업을 하는데 소위 기싸움이 있었다. 남편은 돌림자 애기도 살짝 꺼냈지만, 나에게는 전혀 설득 될 만한 명분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상 끽해봐야 이름이 세 글자인데, 맨 앞글자도 남편이 정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 뒤 글자 지명권도 갖고 싶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했다. 남편의 지분 33.3%, 하나님의 지분 33.3%, 나의 지분 33.3%로 하기로 했다. 즉, 남편은 가장 첫 글자를 결정한 것으로 했고, 가운데 글자는 교회다니는 사람들의 이름에 많이 들어 있는 그 글자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가장 많이 불리게 될 마지막 글자, 그 한 글자가 내 차치가 되었다. 나름 땅따먹기에서 노른자 땅을 먹은 기분이었다. 예를 들어 "하준"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대부분 부모가 "준아~" 이렇게 부르게 되기 때문에 마지막 글자는 앞에 두 글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학창 시절 같은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이름을 가진 친구가 두세 명씩 있을 정도였던 흔한 내 이름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의 이름은 정말 잘 짓고 싶었다. 잘 짓는다는 것은 각자 정의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들었을 때 특이하지만 거부감이 없고, 살짝은 중성적인 느낌도 나면서 발음도 크게 어렵지 않고 의미 있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랄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직 태어날 아이가 아이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혹시 자신을 브랜딩을 하는 일이 생긴 되면 그냥 써도 될만한 이름이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이 모든 조건과 의미를 갖춘 한 글자를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나라고. 그렇게 내 인생 최대의 카피라이팅 역작이 탄생했다.
'潔': 깨끗할 결
그렇게 꼬꼬마는 한 글자로 불려도 완성도 있는 이름을 갖은 채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2차 프로젝트를 하나 더 진행하게 되었다. 녀석의 영어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영어 이름은 한국어 이름만큼이나 중요했다. 적어도 이 녀석에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사람들은 영어 이름이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바꾸기도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평생 가져갈 브랜드로서 영어 이름을 지어주고자 했다.
영어 이름은 한국어 이름과 발음이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부르기 쉽고 만약 이 아이가 아이돌이 된다면 회사에서 이름을 가지고 리프로덕션 하기 좋은 이름이면 좋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영어이름은 한국어 이름처럼 뜻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름이 가진 이미지로 선택해야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생후 몇십 일 된 아이를 누여놓고 아이돌이 돼서 쓸 이름을 정해주겠다니 하는 내가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극하게 치우친 INTJ가 엄마가 된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다. INTJ는 경우의 수를 엄청나게 생각해서, 그 경우에 따라는 대안을 A부터 Z까지 준비하는 성격이다. 그런 엄마를 만나 이 녀석은 아이돌 준비의 첫 스텝, 아이돌스러운 이름 갖기를 벌써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남자 영어 이름 중에 'Joshua(죠슈아)'라는 이름을 좋아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호수아'로 불리는 성경 인물인데, 이 인물은 성경에서 용감함의 대명사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영어 이름을 'Joshua'로 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Joshua'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많을 정도로 굉장히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미국에 계신 내 멘토분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이름을 하나 제시해 주셨다.
바로 성경에서 'Joshua'와의 파트너로 나오는 역시 용감한 이미지를 가진 'Caleb'이었다. 성경에서는 'Caleb'이라고 쓰여있지만 요즘 세대에서는 'Kaylub'이라는 철자로 쓰인다고 말씀해 주셨다. 발음은 "케일럽"이라고 발음된다. 발음을 듣자마자 촉이 왔다. 바로 이거다! 나는 이 아이를 키우면서 의도적으로 한국어 이름과 영어 이름을 번갈아 가면서 불렀다. 나중에 'Kaybub'이라는 이름을 주로 하여 살게 될 때도 인지 부조화가 없도록 말이다. 데뷔를 위한 가명이 아닌, 'Kaylub'의 용감함이라는 서사를 그 녀석의 DNA에 심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이름에서 한자 뜻처럼 아이가 자라나길 바라는 것처럼!
10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수백명이 다니는 영어학원을 여러 곳 다녔지만 학원에서 동일한 이름을 만난 적이 없고, 아직까지 이 이름으로 데뷔한 아이돌이 없는 것 보니 잘 지어진 네이밍인 것 같다! 'Kaylub' 이름을 가지고 2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문구들을 고민하자 'K-Love', 'K❤️'등이 나왔다. '케일럽'의 발음을 활용해서 만들었는데 '대한민국의 사랑을 받는'이란 스토리로 이름을 활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기도를 한다.이 녀석이 어디서나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종종 녀석이 참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 이름처럼 '깨끗하고 용감한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