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 나무들.
사랑해 105동 205호.
아침이 되면 덥건 춥건 간에 창문을 활짝 연다. 베란다와 연결된 커다란 안방 창문을 열면 창밖에 푸른 소나무가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팔을 뻗어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소나무에게 정다운 눈인사를 보낸다.
한옥에서는 창을 풍경을 담는 액자로 보았다는데 우리 집도 차경, 풍경을 빌려와 사계절 다양하게 변하는 풍경 액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겨울에는 앙상한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도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덕분에 마음도 덩달아 지지 않고 푸르다.
소나무 뒤로는 키가 삐죽이 크거나 작고, 옆으로 넓게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기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들쭉날쭉하지만 오히려 아파트가 아닌 자연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키가 큰 나무의 가지에는 새들이 집을 지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도 나무는 흔들리지만 새집은 나뭇가지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새처럼 창의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이고 견고한 집을 갖고 싶다. 내 집 마련 자체가 욕심이겠지만.
우리 집은 3층 높이라 나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한다. 나무들이 우리 집 안을, 나를, 우리 고양이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나도 지그시 눈을 맞춘다. 어느덧 사계절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또다시 아름답게 만개할 봄이 다가온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겨울이었지만 앙상한 나무와 푸른 소나무가 그것들대로 멋스러웠다. 앙상해서 쓸쓸하기보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의 연륜 같은 것이 있어 부드러움과 카리스마가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홀딱 반해버려 90년대에 지어진 이 낡은 복도식 아파트를 끝까지 고집했다.
항상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남편의 눈에는 내가 보는 것이 보이지 않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만 보았다. 오래된 배수관 낡은 나무문과 오래된 새시 창틀 같은... 그러나 '이 집에 가장 오래 있을 사람은 나잖아.' 한마디에 마지못해 합의했다.
나는 원래 집순이지만 더더욱 집순이가 되어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우리 집 고양이와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더 가까이에서 나무들을 보기 위해 좁디좁은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앉아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담요를 가져다 몸을 둘둘 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생생한 계절의 냄새를 맡기 위해 창문도 활짝 열었다. 결국 감기에 걸려 한 겨울에는 창문을 꽁꽁 닫아야 했지만.
아침이 되면 베란다 한가득 햇빛이 쏟아졌고 그 햇빛을 받으며 살랑거리는 나무들이 너무나 예뻤다. 푸른 소나무는 빛을 받아 연둣빛으로 반짝였다. 하루 종일 망부석처럼 나무들만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아 깜깜해지면 나도 퇴근하듯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내가 봄이 오니 어땠겠는가.
봄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싱그러운 싹들이 올라오고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벚꽃이 흩날렸다. 식물들의 축제였다.
식물들의 축제는 동물들의 축제로 이어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축제.
나는 또다시 봄을 맞을 생각에 설레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앞선다.
내년, 이곳의 봄을 또 볼 수 있을까? 일 년 후면 계약 만료라 헤어짐을 앞둔 연인처럼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벌써부터 올라와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만든다.
나는 단단히 결심한다.
다가오는 봄을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아 질리도록 만끽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