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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Jul 31. 2023

너를 기억하게 하는 모든 것

사람좋아 인간인 동시에 미니멀리스트인 내게 선물의 장점이자 단점은 선물 받았던 물건을 보면서 준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ㅡ물건으로 사람을 기억하게 되는 일이다. 선물해 준 마음을 상상하면 감사해서 기쁘다가도 물건 보관을 싫어하니 종종 난처해지고 만다. 소모품은 다 사용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아닌 물건은 버리는 데에 큰마음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떠올리고 추억을 떠올리고 버려도 될지 고민하며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선물을 줄 때도 받을 때도 음식이나 소모품, 또는 비유형의 것들을 선호한다.


사실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건 냄새라던데,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향수나 섬유 유연제, 가향된 로션 등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니 내게 냄새보다 더 큰 기억의 불러일으키는 매체로는 노래가 있다. 한번 꽂힌 노래는 한 달, 길게는 세 달도 내리 듣는다. 그럼 그 즈음에 겪었던 경험이나 감정이 노래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친구들이 내게 착 붙은 노래가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신기하면서도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걸 들으면 또 재밌다. 따뜻한 음악을 말해줬던 친구도, 차가운 음악을 말해줬던 친구도 있었다. 내게도 몇몇 친구들에게 착 붙어서,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친구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출근해서는 독서 모임에서 요즘 핫한 영화를 보러 간다길래 냅다 손을 들었다. 올해 한 번도 모임에 참여 안 했던 주제에 괘씸하려나 걱정이 되면서도 가겠다고 손을 든 스스로를 보며 나 영화 꽤 좋아하는구나 했다. 좋은 사람들이랑 같이 보면 좋지. 그러면서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지금은 멀리 떨어진 친구를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여성주의 영화가 나오면 부지런히 연락해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친구. 그러고 보면 영화를 추천해 주었기 때문에 그 영화에 달라붙은 친구도 있고, 함께 본 영화에 달라붙은 친구도 있다. 좋은 영화여서 자꾸 회자되는 영화일수록 영화에 붙은 친구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늘 내가 사람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제는 모처럼 도서관에서 젤 펜 한 통을 깔끔하게 다 썼고 어깨도 아픈 듯해 뿌듯해하며 집에 오는 길에 써봤던 목차를 복기하고 싶었는데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내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 이젠 정말 좋은 것들로만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든 공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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