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이 와인 메뉴판을 보시고 계시면, 저는 은근슬쩍 다가가서 말씀드립니다.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추천해 드릴 수도 있구요.”
그러면 보통은 추천해달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 질문을 한번 더 합니다.
“가격대는 어느 정도면 될까요?”
그리고 나서 어떤 스타일을 찾으시는지 이야기를 해보고, 적당한 와인을 추천해 드립니다.
지금 말씀드린 이 과정이, 어떻게 와인을 골라야 하는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즉, “가격대를 정한 뒤, 가게 직원에게 물어본다” 입니다.
“1~2만원정도로 레드와인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3~4만원정도로 스위트 화이트와인 추천해주세요.”
“선물하려고 하는데, 10만원근처에서 이탈리아 레드와인 하나만 골라주세요”
같은 식으로요.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이유는, 그 매장에서 팔고 있는 와인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소믈리에가 온다고 하더라도, 가게에서 팔고있는 와인에 대해서는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와인의 종류는 정말 너무나도 많아서, 세상 모든 와인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와인생산자(와이너리)가 몇이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저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림잡아 백만 혹은 이백만 정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동네에서만 만들어서 마시는 아주 작은 와이너리도 포함한 숫자입니다.) 이렇게 많은 와인을 다 안다는 것은, 아무리 유능한 소믈리에라고 하더라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와인을 찾기 위해 대신 애써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수입업자들에 의해서 1차 품질 필터링이 된 와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와인들은 모두 다 수입업자들이 고심해서 수입해 오는 것들입니다. 와인을 팔려고 수입하는 것인데, 일부러 맛 없는 와인을 수입하는 수입업자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맛있고 가격이 좋은 것들을 골라내서 소매상(와인샵, 와인바, 레스토랑 등)들이 팔고 있습니다. 맛있고 저렴해야 잘 팔릴테니, 소매상들에 의해 2차 품질 필터링이 이루어 지고 있는 셈이죠. 그러니, 어떤 와인을 사야할지 고민이 된다면 직원에게 물어보세요. 가게에 있는 와인 중에 손님이 원하는 적절한 것을 골라 줄 겁니다.
그리고 물어볼 때에, 가격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와인은 비쌀수록 맛있는 것인지라, 직원이 추천을 해줄 때 가격을 정해주지 않으면 추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거든요. 만약 손님이 "여기서 제일 맛있는 거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직원은 좀 난감해 집니다. 우리 가게에서 제일 비싼 와인을 줘야하나? 아니면 가성비 좋은 와인을 찾는건가? 아니면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으니 유명한 걸 권해줄까? 등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냥 깔끔하게 "2~3만원짜리로 골라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직원의 고민이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더 적절한 추천을 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