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반려견과 떠난 미국 자전거 횡단기
이룬 것 하나 없고 잃을 것도 없던 서른의 어느 날, 유일하다시피한 나의 가족 반려견과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언젠가 모든 걸 정리하고 자전거에 꼭 필요한 짐들만 챙겨 세계일주를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짐들을 모조리 처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기란 더더욱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에 돌아올 곳을 그대로 남겨둔 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개월의 여행을 다녀왔다.
세계일주 대신 택한 건 미국 횡단이었다. 강아지를 해외에 데려갈 때 각 나라별로 필요로 하는 서류와 준비기간이 제각각인데,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준비기간이 짧으면서 요구서류도 비교적 간단하다는 점도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방황했다. 나에겐 여행을 마친 뒤 돌아갈 집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돌아갈 곳이 없었다. 돌아온 집엔 아무도 없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긴 여행을 마치고 그리웠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여행 이야기를 풀어내고 집밥을 먹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또다시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나는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는 사이 남들이 '너도 이제 서른인데...'라고 말하는 그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었지만 현실 밖 세상만 떠돌다 보니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듯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기간, 그리고 서른 살의 초반을 우물 바닥 깊숙한 곳에 빠져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처럼 보냈다. 매일을 절망 속에서 허우적댔다.
어느 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쓸모없는 인간, 하찮은 인간...' 나보다 한심한 사람은 없을 거라며 자책했다. 나는 너무 나약해져 있었고 무력감에 시달렸으며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갈수록 체력은 약해지고 그럴수록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감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런 체력으로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겠다고? 그것도 텐트며 조리도구며 온갖 짐을 싣고 강아지까지 태우고?
3개월, 4000km, 300만 원
무비자로 머물 수 있는 3개월을 꽉 채워 계획을 세웠다. 동쪽 끝인 뉴욕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지만 내 체력을 감안했을 때 3개월 동안 뉴욕부터 엘에이까지 가기란 무리 같아 보였고 뉴욕보다는 조금은 서쪽에 위치한 시카고에서 출발하기로 하고 시카고 인, 엘에이 아웃 항공권을 구입했다. 엘에이에 귀국 날짜 전에 도착하기만 하면 될 뿐, 미국에 방문할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머물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개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끝없는 옥수수밭을 지나, 광활한 평야를 지나, 로키산맥을 넘고, 사막을 거쳐, 태평양까지. 우리가 길 위에서 함께한 추억과 풍경들이 점점 옅여지고 끝내 없던 일이 될까 두려워, 내겐 자전거 여행보다 더 시작하기 어려워 미루고 미뤄왔던 이야기를 기록해 둬야겠다.
다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자유와 불안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