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기 Apr 30. 2022

불확실함 속으로

출발, 그리고 시카고에서의 이틀

비행기는 떠나는 설렘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안도감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행기에 타는 순간 좁은 자리에 앉아 꼼짝 못 한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와 압박감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비행기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 놓고 잠을 자도 되고 모든 걸 내려놓고 무엇도 하지 않고 멍을 때려도 된다는 사실은 묘한 위로가 된다.


 나의 개는 약 3년 전 유기견 입양 단체로부터 입양하였다. 소형견은 기내에 같이 탈 수 있는데 케이지에 넣어 내 발 밑 공간에 놓아두어야 하고 도착할 때까지 꺼낼 수 없다. 무언가 기류를 느낀 건지 기특하게도 12시간 남짓 얌전히 잠을 자 주었다.  


시카고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쯤이었다. 적당한 곳을 찾아 의자에서 쪽잠을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포장해온 자전거를 조립하고 가방에 짐을 넣어 자전거에 싣고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태웠다.






출발  시차 적응도 하고 못다 한 준비를 하기 위해 시카고에서 이틀을 머물기로 했다. 웜샤워(Warm Shower)에서 미리  곳을 구해 두었다. 웜샤워는 전 세계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현지인이 잠자리와 식사 등을 제공해주는 사이트다.   호스트는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40 커플이었다. 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 ‘ 병원에서 미술치료 수업을 하는 ‘소피’. 이른 아침 도착하여 팀이 만들어준 간단한 식사를   그가 안내해준 방에 짐을 풀었다. 여행의 설렘 때문이었을까,  시간 비행을 하고 공항에서 쪽잠을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바로 동네 산책에 나섰다. 미국은 처음 와봤기에 어릴 적 영화에서보던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걷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멀리까지  버렸고 집에 돌아가기까지 10킬로미터는 족히 걸었다.  피곤한 상태에서 그렇게 걷고 나니 저녁도 못 먹고 바로 뻗어버렸다. 퇴근한 소피가  방에  저녁 먹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비몽사몽 중에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다시 잠에 빠졌다.


다음날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용품을 구입하고 자전거로 시카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도그비치에 갔더니 개들이 세상 자유롭고 행복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 낯선지 포키는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저녁에는 시카고 피자를 사 먹고 마트에 가서 여정 중에 먹을 식빵, 잼, 시리얼, 아보카도 같은 것들을 샀다. 잠에 들기 전에 팀과 소피에게 감사의 표시로 줄 고양이를 그린 뒤 떠나는 날 아침 선물로 건넸다.  



소피는 특히 핀토가 똑 닮았다며 좋아했다.
소피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미술치료사인데, 원래는 그녀가 가르치는 원데이 클래스가 있어서 나도 가려고 했었다. 아크릴 물감으로 두 시간 동안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것이었다. 근데 병원이다 보니 포키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결국엔 못 갔다.

내가 그림을 선물하자 그녀는 내가 클래스에 오지 못한 것이 더 슬퍼진다며 아쉬워했다.




떠나는  아침까지도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하지 못했었다. 그랬던 터라 팀이 하루  머물며 웜샤워를 찾아보라고 제안했지만, 나는 고민 끝에 그냥 길을 나서 보기로 했다. 어디서 자게 될지 알지 못한  일단 페달을 밟았다.

이전 01화 너와 함께라면 무엇도 두렵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