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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Apr 30. 2022

4000km, 첫 페달을 밟다.

엘에이까지 과연 갈 수 있을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 하고 있는 거지?
고작 몇 킬로미터 달리지 않고도 이렇게 힘든데 엘에이까지 과연 갈 수 있을까?'





Day4 시카고 - 록포트

62km




9월 21일. 출발이다.



처음으로 강아지를 태우고 자전거를 탄 건 같은 해 3월이었다. 언젠간 강아지를 데리고 자전거 여행을 떠날 생각으로 여행용 자전거를 산 건 미국 오기 2년 전. 자전거에 강아지를 태울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마침내 내가 택한 방법은 기내용 강아지 가방에 랙 어댑터를 달아 리어랙에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자전거를 받은 , 드디어 떠나기 위한  스타트를 끊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시승식을 하려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바구니 달린 마실용 자전거나 여행지에서 렌트한 자전거만 타봤지  몸에 맞게 피팅된 자전거, 안장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핸들도 드롭바인 자전거는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도저히 못 타겠어서 결국 지나가던 아주머니께 뒤에서 잡아달라고 부탁한 뒤에야 안장에 오를 수 있었다. 아무 짐 없이 내 몸 하나 싣고도 휘청휘청 불안했다.



며칠 뒤엔 준비한 가방을 리어랙에 달고 포키를 태워 동네에서 타봤는데 포키도 불안하니까 일어서려 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다가 가방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이건 아닌가 싶어 얼마 뒤엔 유아용 트레일러를 샀는데 혼자 자전거, 포키, 트레일러, 짐까지 가지고 해외로 이동하기엔 벅찰 것 같았다.



그렇게 강아지와 자전거 해외여행이라는 꿈은 잠시 접어둔  일상을 냈다.



자전거 여행이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 유럽 자전거 여행을 같이 다녀왔던 친구와 함께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기로 했다. 당연히 포키를 데리고 가는  자신이 없어서 맡기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 당일 아침, 강아지가 새벽에도 계속 끙끙거린다고 맡아줄  없겠다며 데려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나기로  날이었던 만큼, 이대로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포키를 데리고  보기로 했다. 리어랙에 태우는   불안했기에 급한 대로 트레일러에 태워 출발했다.



그게 포키와의 첫 자전거 여행이었다. 물론 쉽지 않았지만 겁먹었던 만큼은 아니었고, 그 여행으로 인해 포키와 떠나는 여행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그로부터  5개월  여기 시카고에서 자전거 뒤에 포키를 태우고  떠나려는 참인 것이다. 무거운 짐을 싣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강아지를 뒤에 태웠다는 무게감은  다르다. 강아지가 뒤에 무사히 있는지 계속 신경 쓰게 된다. 초반엔 계속 신경이 쓰여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



옆에 넓은 도로를 두고도 좁은 인도에서 자전거를 탔다. 차가 다니는 길이 아직은 겁이 나서 그랬던 것이다. 아직 무거운 짐에 적응이 되지 않아 가뜩이나 무게중심도 잡기 힘든데 길이 좁아 더 조심조심 긴장하며 자전거를 탔다. 속으로 계속 넘어지면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진짜로 넘어졌다.















9 말이라 조금씩 쌀쌀해지다 이윽고 추워질 날씨를 걱정했건만, 더위가 문제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9월 말인데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일주일 내내 지속되었다.








너무 더워서 식욕도 없고 계속 갈증만 났다. 중간에 패스트푸드점에 들러서도 탄산음료만  마셨다.



라이딩 첫날. 미국의 거대함을 몸소 느낀 날이다. 시카고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상점 같은 것도 없는 도로만계속 이어졌다.



느지막한 오후 트레일 길 입구에 도착했다. 고민이 됐다. 트레일은 자전거만 다니니까 안전하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는데 해가 지기 전에 이 길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렇지만 가보기로 했다.





쌩쌩 달리는 차와 나란히 달리다가 트레일에 들어서니 좋긴 좋다. 그런데 너무 좋다를 연신 외치며 한결 편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던 것도 잠시, 길이 가도 가도 끝나지 않았다. 이러다간 해지기 전에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해가 지기 시작했다.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한 와중에 노을은 왜 이리 아름다운지 머릿속에 해지기 전에 잘 곳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 한가득이면서도 자꾸 노을에 눈이 멈췄다.






다행히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차가 다니는 도로와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가다간 해가 지고 말 것이기에 이 마을에서 어떻게든 잘 곳을 찾아야 했다. 많은 자전거 여행기에서 본 대로라면 마을 사람들에게 텐트 칠만한 장소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봐 하룻밤 묵을 자리를 찾거나, 운이 좋다면 그 사람이 기꺼이 자신의 뒷마당을 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두컴컴해진 미국 작은 마을의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고 집안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거리를 쓸쓸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용기를 내 불이 켜져 있는 집 벨을 눌러보았는데 응답이 없다.



적막한 거리에 유일하게 야외테이블에 나와 무심한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그들에게 다가가 근처에 텐트칠만한 장소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듣는 둥 마는  하며 여긴 없을 거라고, 다음 도시에나 가야 있을  같다고 말하며 다시 자기들의 대화로 돌아갔다.



두 번째로 벨을 눌러본 집도 응답이 없었고, 세 번째 집에선  한 병을 얻었다. 네 번째 집도 무응답. 다섯 번째 집에는 마당에 아저씨가 나와 계시길래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고 자전거 여행 중인데 오늘 잘 곳을 찾지 못해서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뒷마당에 하룻밤만 텐트를 치고 머물러도 될까요?”


아저씨는 당황하시더니 부인에게 물어본다고 하셨다. 잠시 후 부인과 함께 나온 아저씨가 말했다.


“자전거로 미국 횡단 중이라고요? 매번 이렇게 남의 집에 부탁해서 잘 겁니까?”

“원래는 오늘 졸리엣까지 가려고 했는데 첫날이라 거리 가늠을 잘못했어요.”


두 사람은 엄청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허락을 해 주셨다. 그때서야 나는 강아지도 있다고 말을 했다.

아저씨는 매우 놀라며 “뭐? 개가 있다고? 어서 보여줘 봐요.”라고 했고 나는 멀리 세워두었던 자전거에서 포키를 데리고 왔다. “허허.” 아저씨는 기가 찬 모양이었다. 부부 역시 개를 키우고 있어서 포키에게는 좀 전에 나에게 냉랭했던 모습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포키를 이리 달라며 건네받으시고는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수건을 주며 샤워실을 쓰게 해 주셔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다시 마음이 바뀌셨는지 아무래도 여기에서 재워줄 수 없다고 하시기에, 텐트도 있고 침낭도 있어서 뒷마당에서 자면 된다고 하니 다시 오케이. 뒷마당으로 따라 가보니 차고 안에서 자라고 하셨다.



차고 안에 텐트를 치고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세병과 텀블러에 가득  얼음물, 포도와 요구르트 두 개, 사과 두 개, 초콜릿이 담긴 접시를 가져다주셨다. 거기에다가 포키 사료까지. 너무 감사했다.


당연히 저녁도 먹지 못해서 너무 배가 고팠는데도 음식이 별로 들어가지 않았다. 포도  알과 믹스베리 요구르트 하나, 초콜릿 하나 먹고, 밤에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하루 종일 꿈에 그리던 얼음물이 눈앞에 있는데도 조금만 마시고 너무 힘들고 지쳐서 바로 누웠다. 포키도 사료를 먹고 곯아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1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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