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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May 05. 2022

느리더라도 꾸준한 게 최고란다.

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Day5~6


'대단한 모험기는 아닐 수도 있다. 매일이 불확실하고 두려운 길로 떠나는 모험인 동시에, 그저 하루 끝에 무사히 잘 곳을 찾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더없이 행복했던 소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Day5

록포트 - 채나혼 주립공원

33km





다음날 아침


어젯밤 신세진 집의 개와 포키


포키는 다른 강아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도망가기 바빴다.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고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갔는데 아저씨는 이미 출근하신 뒤였고,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간식 봉투를 주셨다.



아침 8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오늘 갈곳도 정하지 못했고 유심도 아직 사기 전이라 인터넷도 사용할 겸 졸리엣(Joliet) 근처 웬디스로 향했다. 문이 닫혀 있길래 문 앞에 앉아 포도랑 오렌지랑 아주머니가 주신 초코간식을 먹고 있는데 점원이 보이기에 물어보니 열 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열 시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서 칠리를 시켜 놓고 인터넷을 했다. 그런데 입맛이 없어 음식이 영 들어가질 않았다. 점원에게 물을 달라고 했더니 얼음 가득 채운 물을 주었다.



처음엔 강아지 출입이 안된다고 해서 밖에 잠시 둘 수밖에 없었는데 밖에 날씨가 너무 덥다며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덕분에 포키도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드디어 유심을 샀다. 데이터 6기가에 50달러정도 했던 것 같다.






오늘은 가까운 채나혼 주립공원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너무나 더워서 지치고 얼음물이 간절했다.



바이크트레일에서 포키를 잠시 내려주었는데, 냄새 맡느라 정신 없어서 잘 따라오지도 않는다. 포키도 나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이크트레일은 한적해서 좋기도 하지만 울퉁불퉁해서 달리기 힘들다. 반면 차 다니는 도로는 자전거 타기는 좋은데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신경쓰인다.




캠핑장 도착하면 시원한 얼음물은 없으니 바로 널브러져 사과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달렸다.


그러나 실상은, 캠핑장 도착하면 바로 널브러지기는 커녕,


자전거 세우고 포키 내려주기

돗자리 어느 가방에 있는지 찾아서 깔기

사과 찾기

캠핑장 요금 계산하기

포키 주위에 꼬이는 벌레 쫒기

부터 한 뒤에야 비로소 사과를 먹을 수 있다. 바로 자전거 내팽개치고 사과 한 입 베어 무는 건 한낱 바람일 뿐이다.




옆 텐트에서 나눠준 음식












포키가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인지 아무거나 베고 자버리는 모습에 괜한 고생시키는 게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후 5시가 지나니 선선하니 기분이 좋아졌지만, 곧 모기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컵라면 먹을 물을 끓으려고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가스를 켜보려는데 너무 오랜만에 해보다보니 가스에 스토브 연결이 잘 안됐다. 그래서 저 멀리에 있는 텐트에 가서 물어봤는데, 그들도 해보다가 실패하자 이따가 스테이크 구울거니 그거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


“오오 정말?? 좋아요!”



텐트로 돌아와 왜 안부르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스테이크 접시를 가져다 줬다.

“저쪽으로 오고 싶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들이 주고 간 스테이크와 무려 차!가!!운!!! 콜라를 들고 찜통같은 텐트 안으로 들어가 손전등을 켜고 먹었다. 차가운 콜라라니.. 거기에 맛있는 스테이크, 나초, 샐러드까지. 이 순간 세상 부러울 거 없이 행복하다. 배부르지만 언제 또 볼 수 있는 음식일지 몰라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Day6

채나혼 주립공원 - 일리니 주립공원

54km


아홉시 출발.


오늘도 역시나 덥고, 바이크트레일은 너무 힘들다.차가 없고 그늘져서 좋지만 길이 울퉁불퉁하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자전거 타기가 너무 힘들다. 반면 도로는 차가 신경쓰이고 그늘이 없지만 속도를 낼 수 있다. 가장 좋은 길은 주택가 앞 도로들. 차도 별로 없고 적당히 그늘도 지고 매끄러운 도로.



소중한 그늘



포키가 아침부터 축 쳐져 있다. 아침에는 물을 줘도 안먹고 늘어졌다. 너무 걱정되었다. 내 욕심에 포키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이 여행이 맞는 건지.








0.81달러의 행복


편의점에 이렇게 큰 컵에 탄산음료를 담아 먹을 수 있게 판다.







오늘 도착한 일리니 주립공원 캠핑장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이 있어서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그리고 어제는 가스불을 못켜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오늘은 가스불 켜는데 성공해서 컵라면을 먹었다.


낙엽 치울 힘도 없었다




조금 쉬다가 샤워를 했다. 포키는 여전히 기운이 없어서, 평소엔 내가 사라지면 불안해하는데 이날은 내가 가던말던 텐트 안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후 돌아오니 일어나서 다가오는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다. 이제 조금 기운이 난 것 같아 같이 캠핑장 산책을 했다. 평소처럼 이곳저곳 냄새도 맡고 배변활동도 했다. 안도감과 함께 혼자 괜시리 코끝이 찡해졌다.


고마워 포키야, 그리고 미안해..






일리노이강이 바로 옆에 있어서 밥먹고 산책가야지 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포키가 기운이 없는데. 포키가 텐트 안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나도 포키 옆에 있어야지.



천천히. 쉬엄쉬엄. 포키를 위해서라도. 그게 나를 위한 것이니..





"시카고에서 출발했어요."
"그럼 오늘이 첫번째 날인가?"
"아뇨, 세 번째 날이에요. 제가 좀 느려요."


"Slowly but steady is the best.”
“느리더라도 꾸준한게 최고란다."

  

              -캠핑장 주인 아저씨와의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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