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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Jul 11. 2022

사랑한다는 흔한 말

강아지와 미국 90일 자전거여행 Day 11


Day 11
블루밍턴-링컨


날이 쌀쌀하다. 이틀 전만 해도 반팔, 반바지 입고 이너 텐트만 치고 침낭은 걷어차고 잤는데 이제는 아침이 엄청 춥다. 긴팔에 바람막이까지 입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자전거 타기엔 딱 좋은 날씨다.


어제의 호스트 켈리 출근길에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켈리가 아침 먹을 베이커리 집 앞까지 안내해주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였다.


무엇을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캐러멜 애플 바(caramel apple bar)를 골라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춥기도 하고 음식이 더 들어가지도 않아서 반은 포장한 뒤 다시 출발했다.






오늘은 길도 날씨도 너무 좋았다. 트레일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마침내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도로인 루트 66을 만났다. 시카고에서 엘에이까지 이어진 66번 도로는 과거 미국인들이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던 도로라고 한다. 지금은 거의 이용되지 않아 방치된 느낌이 들고, 길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루트 66과 나란히 바이크 레인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맘 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라이딩을 했다.




66번 도로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오늘은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속도가 시속 24킬로미터까지도 나왔다. 늘 하던 ‘대체 언제 길이 끝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달려도 금방 길이 끝났다. 깜짝 놀랄 정도로.

음악을 들으면서 흥얼거리며 달리다가 아무도 없어서 삼각대를 놓고 사진 찍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다. 포키도 신이 났다.




이틀 푹 쉰 덕일까? 아니면 내 체력과 허벅지가 단련된 걸까? 어찌 된 것이든 좋다. 오늘은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아서 태양이 뜨거운데도 불구하고 그늘도 물도 찾지 않았다.


포키는 내가 안 보이면 불안해해서 항상 나를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밥을 먹으러 간다. 빅맥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그날 어디서 잘 지 정하지 못했을 때는 적당한 거리에 있는 도시의 소방서나 교회를 목적지로 삼고 출발하곤 했다. 오늘 역시 소방서를 목적지로 삼고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탄 백발의 아저씨가 반갑게 나를 불러 세웠다. 교회 앞이었고 손에 전단지 같은 것을 들고 계시길래 교회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내 여행에 관심을 보이셨다. 그는 바로 앞에 있는 공원의 파크레인저라고 했다.


"오늘 어디서 자요?" 남자가 물었다.

"잘 곳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그럼 우리 공원에 텐트 치고 자도 좋아요. 지난주에도 자전거 여행자 한 명이 자고 갔어요." 자전거 여행자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며 그가 말했다.


그래서 그를 따라 공원으로 들어가 안내를 받았다. 그는 한국사람을 처음 본다고 했다.

그는 물을 쓸 수 있는 곳, 화장실, 텐트칠 장소를 알려주었고 재차 “화장실은 저쪽에 있고 물은 저기 있고 밤에 가로등이 켜질 거예요…” 말하며 또 더 알려줄 게 없나 계속 생각하셨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시는 걸로 보아 정말 공원 관리인이 맞으신 듯했다.


그때,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던 노부부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오셨다. 80대로 보이시는 할머니는 너무나도 곱고 정정하셨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다가오시더니 포옹을 청하고는 말씀하셨다.



Welcome to USA.
미국에 온 걸 환영해요.



홀로 강아지를 데리고 동양에서 온 낯선 여자아이를 대뜸 안아주시던 그 따뜻한 마음은 어떤 것일까? 모르는 사람을 안아줄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뭉클해졌다.


할아버지는 전직 경찰이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나를 또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사랑해요."


나도 답했다. "사랑합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또다시 나를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사랑해요.”


뭐지 이 감정은…. 세 번의 포옹과 세 번의 '사랑합니다'가 오가던 그 순간,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느꼈다.


관리인 아저씨는 떠나기 전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이든 길에서든 항상 조심해요."


모두가 좋은 사람 같고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데 모두가 내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니 오히려 무서워진다.


아무튼 이 공원은 공원 안에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크다. 제너럴 스토어에서 사 온 통조림 파스타와 오렌지 주스를 저녁으로 먹고 포키도 껌이랑 밥을 먹고 후식으로 감자칩을 먹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공원 관리인 아저씨의 시스터인데, 아저씨가 나 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해서 오신 것이다. 필요한 건 없냐, 뭐 가져다 줄 거 없냐, 음식이나 음료수나 담요 같은 거 필요 없냐 등 혹시나 내가 못 알아들을까봐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계속 물으셨다.


"괜찮아요. 밥도 먹었고 필요한 것도 없어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내게 포옹을 요청하시고 꼭 안아주신 뒤 떠나셨다.



그런데 잠시 후 아주머니가 담요를 들고 돌아오셨다.

"밤에 추울 거예요. 내일도 추울 테니 이거 그냥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써요."


마지막으로 다른 관리인 아저씨가 와서 공원에 차가 다 나갔는지 확인하고 이제 공원 정문을 닫겠다고 말해주시고 가셨다.


에어매트에 구멍이 났는지 바람이 자꾸 빠져서 돗자리 위에 아주머니가 주신 담요를 깔고 누웠다. 근데 그냥 따뜻하다. 마음이 너무 따뜻하다. 커다란 공원에 혼자 있지만 포키가 있어서 무섭지 않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신경 써주시니 안심된다.


텐트 안에 엎드려 안심되는 마음으로 노래도 틀어놓고 일기를 썼다. 안전하게 잘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도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마련해 준 것이라니.. 내가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게 되어 관리인 아저씨를 만나게 된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딱딱한 바닥에서 자야 하지만 서럽지 않다.


옆에서 곤히 자는 포키를 보며 아늑한 텐트 안에서 일기를 쓰는 이 순간,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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