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기 May 11. 2022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Day 7~8


Day7

일리니 주립공원 - 웨노나 시티파크

72km




 아침에 일어나 포키 밥먹는 소리를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길을 지나게 될까?







오늘은 바이크트레일이 아닌 아스팔트 도로를 계속 달렸다. 해가 어찌나 강렬한지 신기루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살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포키를 위해서라도 그늘이 보일 때마다 쉬어 갔다.





그렇게 그늘만 나타나기를 바라며 달리다가 커다란 나무가 있는 농가 하나를 발견하였다. 집앞에 나와 일하고 있는 중년 부부에게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당연히 된다고 하면서 얼음물과 차가운 귤을 가져다 주셨다. 거기에 더해 아저씨는 부인에게 시원한 사과 같은 것도 있으면 주라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바나나 두 개와 텃밭에서 직접 기른 토마토 다섯 개를 비닐에 담아 주셨다. 부부 역시 닥스훈트를 키우고 있어 개를 너무 좋아했고 사료 있냐고 물으며 조금 챙겨주었다. 자전거 타면서 늘 머릿속 가득한 얼음물까지 주셔서 시원하게 들이키며 꿀같은 휴식을 취했다.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라이더를 마주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처음으로 길 위에서 라이더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부인과 함께 자전거여행 경험이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이 더운 날씨에 라이딩을 즐기고 계셨다. 그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부인에게 보여주겠다며 내 사진을 찍어 갔다.




그늘이 보이면 무조건 쉬었다 갔다. 잠시 뒤, 그늘에서 쉬다가 출발하려는데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낸 녹색 지프가 내 옆에 멈춰 섰다. 남자 두명이 타고 있었다.

 

 “개 한마리가 도망갔는데 혹시 못봤나요?” 남자가 물었다.

 “못 봤어요.”

 “오늘 어디까지 가요?”

 “웨노나까지요.”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그들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고 사라졌고, 나는 다시 그늘 한 점 없는 길 위에서 언제쯤 끝날까만을 생각하며 절대 끝나지 않는 뜨거운 길 위를 달렸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목적지는 더더욱 다가오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 조금만. 하지만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힘이 빠져서 속도가 나지 않았고 2마일만 더 가면 되는데 지금까지 달린 거리보다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 옆에서 차 한대가 멈췄다. 돌아보니 아까 그 녹색 지프였다. 도망갔다는 개도 함께 타 있었다. 그들은 내게 차에 타라고 하면서 내 자전거는 그들중 한명이 타고 오겠다고 했다. 거의 한계에 달해있던 나는 바로 그러겠노라고 하며 자전거에서 포키만 꺼내서 차에 올라 탔고, 남자는 내 핸드폰, 카메라, 지갑 등 모든 물건이 실려 있는 자전거를 뒤뚱거리며 타고 뒤따라 왔다. 우리는 차 위에서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내게 음료수도 사주었다.


포기하고 울고 싶은 순간 다가온 손길과 차가운 탄산음료. 그보다 더 거절할 수 없이 달콤한 게 또 있었을까?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내 모든 물건을 실은 자전거를 맡겼다. 처음엔 도서관까지 간다고 했다가 시티파크까지 가야 한다고 하자 200미터 남짓밖에 안하는 거리를 태워주기 위해 굳이 자전거를 차에 싣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시티파크까지 태워다 주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내려주었어도 그들은 충분한 호의를 베푼 게 아니었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준 것에 너무 고마워서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떠나고 시티파크에 텐트를 치고 짐정리를 하는 중에 오늘의 호스트 쉴라가 왔다. 웜샤워 사이트에 쉴라가 공원에 텐트를 칠 수 있다고 올려 둔 것을 보고 연락해둔 터였다. 인사를 하고 쉴라가 내게 이것저것 일러주고 있는 중에 얼핏 고개를 돌렸더니 분명 아까 떠난 녹색지프와 남자들이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들과 두번째 헤어질 때까지 의심 하나 하지 않고 기념 사진까지 찍어두었는데 세 번째 그들을 마주친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아까 분명히 떠났고 멀리 산다고 했는데 왜 다시 나타난 거지? 그들을 보자마자 쉴라에게 물었다.


 “여기 안전한가요?”

 “응, 안전해”


남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디 사나요?” 쉴라가 남자에게 물었다.

 “이 동네에 안살아요. 아까 이 애와 길에서 만났는데 여기서 혼자 잔다고 한 게 영 걱정돼서 말이죠.”

 “여기 경찰도 다니고 마을 주민들도 가까이 있어서 안전하니 걱정할 거 없어요.” 내가 그 남자들을 보고 여기 안전한지 물은 것을 눈치챈 쉴라가 그들에게 강조해서 말했다. 그들은 그러냐며 겸연쩍게 웃어보였다. 쉴라는 돌아갔고 남자도 내게 뭐라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뒤 돌아갔다.


아까 남자 중 한 명이 내 자전거를 타면서 비싼 자전거라고 말한 것과, 다른 한 명이 방금 내 자전거를 흘깃흘깃 쳐다본 눈빛이 별안간 떠올라, 혹시나 아까처럼 내 자전거를 차에 번쩍 실어 가져갈까봐 자전거를 평소보다 더 단단히 기둥에 묶었다.


쉴라가 시티파크 바로 앞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해주어서 아주머니가 저녁으로 파스타와 아이스티를 주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텐트 안에 누웠다.

 

 작은 마을의 개방된 공원. 무서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을 아무리 배제하려 해봐도 잘 되지 않았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남자들이 밤중에 다시 나타나서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면서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기를 반복하다가 '그들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아까 밝을 때 다시 올 게 아니라 밤에 왔겠지'라고 속으로 합리화하다 마침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다.


물론 그들이 정말 진심으로 내가 걱정되어서 왔던 걸지도 모르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 혼자 다니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의 호의를 경계의 눈초리로 볼 수 밖에 없고, 그 사실이 매우 안타깝고 슬프지만 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온종일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서 햇빛 화상을 입었다.






Day8

웨노나 시티파크

휴식




이곳 웨노나는 할 거 없는 정말 작은 마을이지만 허락 하에 무료로 캠핑할 수 있는 곳이기에 여기서 하루를 더 자고 가기로 했다. 아침으로 커피와 바나나, 토마토를 먹고 텐트를 그늘로 옮긴 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잤다. 어제의 뜨거웠던 태양을 생각하니 이렇게 그늘에 편하게 누워 있다는 사실에 기뻐 피식 웃음이 났다.



 행복한 기분에 젖어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종소리에 깼다.

 하나, 둘, 셋, 넷,...열, 열하나.


몇 번 울리나 세어보니 열한 시였다.






쉴라가 패밀리달러까지 태워준 뒤 점원에게 강아지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봐줘서 포키와 패밀리달러 쇼핑을 했다. 마트에서 산 맥앤치즈로 점심을 대신하고 디저트를 사 먹으러 스위트샵에 갔다.



언니 여기 있으니 걱정 마~




마시멜로 콜라라는 게 있어서 사먹어 보았다. 시럽 넣은 콜라 위에 마시멜로를 뿌려주었다.


그런 다음 약국에 선크림을 사러 갔는데 햇빛화상에 바르는 알로에젤이 있길래 작은 사이즈는 없냐고 물었더니 주인아저씨가 어제 251번 도로에서 나를 봤다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큰 병에 든 새 알로에젤을 뜯어서 작은 공병에 담아 주셨다. 얼마냐고 물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다.


포근해진 마음으로 텐트로 돌아가 미역국을 끓여 저녁을 먹었다.



포키도 꿀휴식



그날 저녁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선베드에 누워 맛있는 거 먹으며 뒹굴거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자전거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 04화 느리더라도 꾸준한 게 최고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