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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Oct 19. 2023

북아메리카의 선물

[강아지와 90일 자전거여행] Day61~63

Day61 길라 내셔널포레스트 - 실버시티


다행히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이 왔다. 짐을 정리하고 과감히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아침도 먹었다. 그래놀라에 밀크 파우더가 섞여 있는 제품에 물을 붓고 꿀을 뿌려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바람에 낙엽 굴러가는 소리를 동물발자국 소리로 착각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분명 무언가가 텐트 문을 긁었던 것 같다.

 어젯밤 나 자신을 다독이며 주문을 외웠다. ‘모든 일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일어나야 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출발. 내리막길을 엄청나게 내려갔다. 20킬로미터를 달려 금세 도착한 마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리고 오늘 많이 지친다. 어제 마음이 지쳤던 탓이기도 하겠고 산을 올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도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갔다. 배가 고픈데 곰이 나올까 봐 멈추지도 못하겠다. 오늘은 히치하이킹을 해야겠다. 그냥 지나쳐 버린 하얀 봉고차가 다시 차를 돌려 내쪽으로 다가왔다. 자전거를 싣고 실버시티로 향했다. 차를 세워준 아저씨에게 어젯밤 이야기를 하며 동물이 있었는데 곰이었겠냐고 물어보니 아마도 라쿤이지 않겠냐고 했다. 이틀 산에 있었다고 도시가 왜 이리 반가운지. 차에서 내려 소닉에 가서 치즈버거 세트를 사 먹었다. 산에서 저녁도 굶고 내려와 먹은 햄버거와 감자튀김, 얼음이 든 콜라.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너무 행복해… 맛있어…. 

 이 날은 어쩐지 사진이 딱 한 장밖에 없는데, 이 한 장이 그때의 내 마음을 대변하기에 적절한 사진이지 않나 싶다.

 겨우 오후 1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저렴한 모텔(Motel 6)에 가서 방을 잡고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다.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서 2.16달러짜리 캐러멜 마키아토를 사 와서 먹는데 너무 맛있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너무 좋았다. 다 마셨는데도 성에 안 차서 주유소 편의점에 가서 우유를 사다가 카누와 꿀을 타서 또 마셨다. 그리고 푹 쉬었다. 


Day62 실버시티 – 로즈버그


초반은 오르막, 후반은 내리막이었다. 열심히 달렸다. 작년에 한창 듣던 노래를 들으며 그때의 추억에 잠긴 채 자전거를 탔다. 내리막길에선 음악에 심취해 자전거를 타고 있는 건지 침대에 누워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딘가로 쭉 뻗어 있는 끝 모르는 길을 달리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덩컨과 로즈버그 갈림길에서 로즈버그 쪽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러브에서 갓파더피자를 산 뒤 해지기 전 서둘러 비지터 센터로 갔다. 아무도 없고 모든 문은 잠겨 있었다. 야외 휴게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피자를 먹었다. 다행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불이 들어왔다. 피자가 맛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기엔 좀 무서운데… 고속도로 옆이고 사람도 아무도 없고 가끔씩 화장실을 가기 위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래도 이미 어두워졌던 만큼 다른 곳을 찾아 움직이기도 무서우니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화장실 가려고 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캠핑하려 하는데 안전할까요?” 어리석은 질문인지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누군가가 안전하다고 해주기만 하면 그래도 믿고 안심하고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음.. 안전할 것 같지 않은데.. 러브가 24시간 사람들 있고 잠깐씩 따뜻하게 들어가 있을 곳도 있으니까 더 나을 것 같아요. 짐이 많아서 왔다 갔다 하기 힘들 테니 일단 우리가 차로 가서 텐트 쳐도 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온 그들이 말했다. 


“앞에 텐트를 쳐도 된대요. 점원들이 지켜봐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모텔 잡아줄 테니 거기서 자는 건 어때요?” 주유소 옆에 있던 모텔에 가서 가격까지 알아보고 오시느라 시간이 더 걸렸던 모양이다. 


“아니에요. 주유소에 텐트 치고 자면 돼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건 어때요? 우리가 방을 잡아주는 대신 당신이 어디쯤 있는지 이메일로 알려줘요. 얼마나 멋진 모험이에요! 우린 그 소식 듣는 걸로 아주 기쁠 거예요.”아주머니가 말했다.

“아… 그래도….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요?” 내가 주저하다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모텔로 다 같이 갔다. 아저씨가 계속해서 카운터에 말했다. “그녀에게 좋은 방을 주세요.” 계산이 끝난 뒤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사진을 찍었다. 두 분은 알고 보니 캐나다 사람이었다. 


“북아메리카의 선물이에요.” 인사를 하며 그들이 말했다. 


너무 좋은 방이다.. 최고. 행복하다…. 아까 피자를 먹었지만 코앞에 러브가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포키랑 걸어서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다가 또 먹었다. 행복… 로비에 오렌지주스도 있어서 오렌지주스를 떠다가 초코칩이랑 먹었다. 아까 비지터 센터에서 처량하게 피자를 먹고 무서워서 어찌 자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호텔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Day63 로즈버그 – 덩컨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달리던 중에 앞에 차가 한 대 멈춰 서 있고 사람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강도인가? 권총강도 아냐?’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다가갔는데 얼마 전 길에서 만나 내게 물을 줬던 여행자 커플이었다. 나를 다시 보고 반가워서 차를 세운 것이었다. 내가 산속에서 무서웠던 이야기를 하니 그들도 몇 년 전 PCT(Pacific Crest Trail, 미국 남부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4천 킬로미터 넘게 걷는 하이킹 코스)를 걸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생에서 자는 건 익숙한데 오히려 차가 더 무섭다고 했다. 어쨌든 너무 반가운 만남이었다.

 그리고 오늘 뉴멕시코주가 끝나고 애리조나주가 시작되었다. 사실 포키 얼굴에만 짜장 묻은 게 아니고.. 내 얼굴에도 왕창 묻었다. 덩컨의 웜샤워 호스트 데보라 집에 도착했다. 감기 기운인지 몸이 좋지 않아서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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