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기 Oct 19. 2023

거기에 곰이 산다고 하던데

[강아지와 90일 자전거여행] Day59~60

Day59 TorC – 힐스보로


출발하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앞바퀴에 펑크가 나 있었다. 그런데 펑크를 때운 뒤 다시 출발하려는데 또 펑크가 나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호스트 아저씨가 아예 모든 튜브를 물에 담가보면서 꼼꼼히 확인해 주신 결과 펑크 4개가 더 있었다. 아마 엊그제 와일드캠핑할 자리를 찾으려고 가시 돋친 풀들 위로 왔다 갔다 했을 때 펑크가 난 모양이다. 여기까진 대체 어떻게 온 거지. 어쨌든 아저씨 도움을 받아 펑크를 다 때운 뒤 마침내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은 대체로 오르막길이었다. 점점 산 쪽을 향해 가고 있다. 가다 보니 또 해가 진다. 두려운 시간.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처음 선 차는 여행 중인 커플이었는데 차가 작아서 태워줄 순 없었지만 물을 주고 갔다. 계속해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고 다시 차 한 대가 멈췄다. 아저씨 두 분이 타고 있었고 나를 태워줄 수 있다며 호의적인 태도로 차에서 내리셨다. 자전거를 싣기 위해 트렁크를 열고 뒤에 오는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젊은 여자가 탄 픽업트럭이 지나가지 않고 창문을 내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나를 태워야 하는데 차에 자전거가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여자는 바로 그럼 자기 트럭에 실으면 되겠다고 했다. 너무 친절한 여자였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 아저씨들은 가고 크리스티의 차에 탔다. 그녀는 TorC로 편도 한 시간씩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남편은 소를 키우기 때문에 시골에서 산다고. 하지만 매일 좋은 풍경과 노을을 보면서 운전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너무 친절했다. 내 무거운 자전거 드는 일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들어 올리고 내려주었다. 힐스브로 캠핑장이라는 곳에 내려주며 그녀가 말했다. 


"여기가 킹스턴 캠핑장보다 동물은 적고 사람은 많으니까 더 나을 거예요."

"네 여기서 잘게요. 감사합니다."

"무슨 일 있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해요." 크리스티가 전화번호 적은 쪽지를 건네며 말한 뒤 떠났다. 

 아무도 없는 암흑 속 유일한 빛이었던 크리스티 차가 떠나고 있다. 무료캠핑장이라고는 하지만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잔디밭이다. 텐트를 쳐도 된다는 표시와 피크닉 테이블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어둠 속에서 텐트를 쳤다. 불 꺼진 화장실은 무서워서 근처에 가보지도 않았다. 도로변에서 캠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나 크리스티가 안전할 거라고 했기에 안전할 것이라 믿고 잔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까 길에서 만난 커플이 준 물을 끓였는데 희뿌옇고 약 냄새가 났다. 그래도 물이 귀하니까 그냥 먹었다. 컵라면에 부어서 치즈 한 장을 올려 맛있게 먹었다. 핫초코도 끓여 감자칩과 함께 먹고 잠을 청했다.  

 잠결에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두려울 때는 몰려드는 생각을 내쫓고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든다. 텅 비게.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더 두려워지니까 생각들을 비운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든다. 



Day60 힐스보로 - 길라 내셔널포레스트


다음날 아침, 무사히 자고 일어나 출발 전 핫초코 한 잔을 끓여 먹었다. 미국 대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산맥을 한 번은 넘어야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 로키산맥을 넘는 날이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완만한 경사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되어서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풍경은 정말 예뻤다. 가다가 킹스턴이라는 마을에 작은 카페 하나가 있어서 쉴 겸 들어갔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가지고 있던 아보카도를 숟가락으로 퍼서 먹다가 카페 주인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네가 오늘 가려는 내셔널 포레스트 캠핑장에는 곰이 있대. 심지어 얼마 전에는 여기 카페 옆 킹스턴 캠핑장에서도 어떤 가족이 텐트 안에 곰이 들어가 있는 걸 보고 여기로 뛰어 와 문을 쾅쾅 두드리더니 결국 여기서 자고 갔지 뭐야. 곰이 있으니 절대로 곁에 음식을 두면 안 돼. 나무 위에 매달아 놓고, 절대 텐트 안에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해. 조심해!" 아저씨가 음식을 나무에 매달아 둘 수 있는 케이블을 챙겨 주며 말했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다시 길을 나섰다. 지나가던 차가 멈추어 시원한 생수 두 병을 주었다. 그때 빼고는 멈추는 일 없이 쉬지 않고 산을 올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곰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다.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던 중에 어쩌면 내 삶도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나는 내 삶을 빛나게 닦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나는 그 누구보다 삶에 의욕적이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색으로 채우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희망을 가득 품고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목이 메었다. 

 가다 보면 가다 보면 가다 보면, 정말 도착하지 않을 것 같은 곳도 결국 도착하게 된다. 아까 들른 킹스턴 마을에서부터 3시간 반을 거의 걸어서 8,228피트(약 2,500미터) 정상에 도착했다. 기념사진을 후다닥 찍고 춥고 시간이 늦어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이미 도시까지 내려가기엔 늦은 시간이라 내려가는 도중에 있는 무료 캠핑장에서 자기로 했다. 도착한 캠핑장은 무료다 보니 관리사무소 같은 것은 있을 리 만무하고 자리를 표시하는 숫자 팻말과 안내판만이 이곳이 캠핑장임을 알게 해 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텐트를 친 뒤 가방 안에 있는 음식물들과 향기 나는 샴푸 같은 것들을 모조리 가방 하나에 모아서 텐트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 매달았다. 산을 오르는 내내 그리고 텐트를 치는 순간까지도 마치 곰에게 뒤쫓기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분주히 서둘렀다.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음식을 꺼내서 저녁을 먹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음식을 나무에 걸어두고 바로 텐트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저녁 6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산속에서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발자국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사람 발소리는 아니다. 숨을 죽이고 소리에 귀 기울였다.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이윽고 텐트 바로 옆까지 오더니 텐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텐트 문을 열기라도 할 것처럼 툭툭 건드리기까지 했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이 상황을 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포키를 꼭 잡았다. 의지할 곳은 포키뿐이었고 가만히 숨죽이고 제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발자국 소리는 텐트 한 바퀴를 돌더니 점점 멀어졌다. 휴대폰을 꺼내 911을 눌렀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걸어 보았다. 그것밖에 매달릴 것이 없었다. 당연히 신호는 가지 않았다. 누워서 밤이 무사히 지나길 바라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멀어졌던 발자국 소리가 텐트 옆으로 다시 다가왔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세 번을 더 반복했다. 입술과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곰일까? 텐트를 찢고 들어오면 어떡하지. 처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무사히 오기를. 제발.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러다 나에게 내일 아침이 오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절대 그럴 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생각들을 하다가 점점 긴장이 풀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이전 21화 저 별이 우릴 지켜줄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