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90일 자전거여행] Day56~58
Day56 벨렌-소코로
다음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 린다 집으로 갔다. 요리를 좋아하는 린다가 나와 아이다매이를 위해 아주 근사한 아침을 차려주었다. 스콘 비슷한 빵에 버터와 잼, 바싹 구운 베이컨과 크랜베리 오트밀, 볶은 감자와 스크램블드에그 그리고 동그랑땡 비슷한 것. 자전거 여행자에게 너무도 귀하고 푸짐한 아침식사였다. 아주 배불리 먹고 다시 아이다매이 집으로 돌아 가 떠날 준비를 했다.
출발하려는데 앞바퀴에 펑크가 난 것을 발견했다. 다시 짐을 풀고 펑크를 때웠다. 그런 다음 마침내 출발했다. 작별인사를 하는 아이다매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새로운 길로 가려니 설렌다. 오늘 길이 좋았는지 힘들지 않게 금방 도착했다. 아까 펑크를 때우느라 출발이 늦어져서 11시 반인가에 출발했는데, 역시 라이딩도 마음가짐에 따른 건지 페달이 기분 좋게 술술 밟혔다. 소코로까지 거리가 70킬로미터가 넘어서 도착 못할 줄 알았는데 해 지기 전에 도착했다. 소방서 뒤뜰이 캠핑하기 딱 좋아 보여서 물어보니 시 관할이라 안 된다며 경찰을 불러 주었다.
"여긴 안 되고 좀 더 가면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 쳐도 돼요." 경찰이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공원을 향해 다시 출발해서 가다가 이코노 모텔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모텔마다 워크인 rate라고 쓰여 있어서 물어보니 60달러가 넘는다고 해서 다시 나왔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 제일 쌌던 모텔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들어가 보자 하고 모텔 입구로 향하고 있는데 차에 탄 한 남자가 나를 불러 세우며 무엇을 찾고 있냐고 물었다.
"잘 곳을 찾고 있어요."
"가격대는요? 40달러?"
"그 이하로 찾고 있어요."
모텔을 택스 포함 35달러에 해준다고 해서 따라가니 아까 들어갔다가 나온 이코노 모텔이었다. 원래 99.99달러짜리 방인데 훨씬 저렴한 가격에 묵는 데다가 방도 엄청 크고 전자레인지와 냉장고도 있고 지금껏 갔던 모텔 중에 제일 좋았다. 그 아저씨 뭐지? 어쩌다 나를 보신 거지? 게다가 아침까지 포함이고 원래 강아지 요금도 따로 있는데 다 포함해서 35달러라니 진짜 거저였다. 며칠 전 머문 캠핑장도 27달러였는데 말이다. 바로 앞에 월마트도 있어서 장을 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인스턴트 미트볼 스파게티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은 뒤, 디저트로 브라우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잠들기 전 린다와 아이다매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무 좋은 사람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잊지 못하게 될 사람들일 것 같다. 린다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어제와 오늘이요.'
텐트에서 자는 것도 좋지만 아늑한 모텔에서 포키랑 편히 있는 것도 좋다.
Day57 소코로 - 산타페 다이너 앤드 트럭 스톱 SANTA FE DINER AND TRUCK STOP
다음도시인 트루스오어컨시퀀시스(Truth or Consequences, TorC)까지는 도저히 내가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두 도시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오늘은 와일드캠핑을 해보기로 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출발했다. 계속 오르막길이긴 한데 그렇게 힘든 오르막은 아니어서 타고 올라갈만했다.
뉴멕시코는 그린칠리로 유명한 만큼 그린칠리 음식 한번 먹어 봐야 하지 않겠냐며 점심으로 그린칠리치즈버거를 먹었다. 포키 때문에 야외 벤치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고민했다. 여기에 무료캠프사이트가 있는데 여기서 잘까(아직 20킬로미터밖에 안 와서 오늘 여기서 자면 다음 날과 다다음 날 고생해야 한다), 아니면 더 가서 잘 곳을 찾아볼까? 일단 캠프사이트까지 가봤는데 아직 2시였던 만큼 해가 너무 뜨거워서 오후 내내 여기서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아, 더 가보기로 했다. 불확실함 속으로, 두려움 속으로 향한다. 계속 텐트 칠만한 곳을 찾으면서 갔다. '오 저기 좋겠다 저기도 좋겠는 걸.' 그래도 해가 질 무렵까지는 더 가보기로 하고 계속 달렸다.
이젠 더 늦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될 것 같아서 적당해 보이는 곳 앞에 멈춰 차들이 지나가지 않을 때를 기다렸다. 혹시 지나가는 차가 나를 보고 이따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서였다. 지나가는 차가 드물 때를 기다렸다가 도로 옆 경사를 따라 들판으로 내려갔다. 가시 돋친 풀들이 많았다. 내려가서 위를 보니 지나가는 차 운전석이 보였다.
'저 사람도 내가 보일까? 보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긴 안 되겠어서 다시 도로 위로 올라갔다. 흙길인 데다 가시 돋친 풀들이 많아서 자전거를 다시 도로 위로 끌고 올라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낑낑대며 겨우겨우 자전거를 올렸다. 한마디로 생쑈를 했다. 그 사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다시 달리다가 또 괜찮아 보이는 곳에 내려갔는데 이번엔 지나가는 차가 내쪽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처에 술병과 큰 동물의 발자국이 있어서 겁이 났다.
'여기도 안 되겠다.'
결국 어두워진 밤길을 달리는 쪽을 택했다. 완전 캄캄하고 빛이라고는 별빛뿐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전조등 배터리 수명이 다해 점점 희미해졌다. 도로를 살피며 가느라 무서움은 둘째였다. '괜찮다, 괜찮다. 하늘이 우릴 지켜줄 거야. 저 별들 중 하나는 분명 우리 엄마일 거야. 우릴 지켜줄 거야. 포키야 우린 괜찮을 거야. 잘하고 있다 우리.'
대낮에도 내가 안 보이면 짖으며 벌벌 떠는 포키가 어두운 밤 나와 있기에 안심하고 조용히 있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8.7킬로미터만 더 가면 주유소가 있다. 그래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자. 별빛 아래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주유소에 도착해 한참 참았던 소변을 보았다. 도착했다 도착했어 무사히 도착했다. 잘 곳이 필요하다고 하니 점원이 나를 위한 장소가 있다며 안내해 주었다. 주유소 옆에 허름한 방 3개를 숙소로 운영하고 있었다. 28달러라고 하더니 내게 20달러에 주겠다고 했다. 허무하게 잘 곳이 해결되었다.
따뜻한 방에 앉아 토르티야에 아보카도와 토마토, 참치마요네즈를 올려서 먹었다. 낮에 사 먹은 그린칠리치즈버거보다 맛있었다. 후식으로 감자칩을 먹고 씻고 침대에 누웠다. 바닥에 흘린 감자칩을 바퀴벌레 같이 생긴 것들이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많았다, 벌레가.
TorC에 웜샤워를 구했다.
Day58 산타페 다이너 앤드 트럭 스톱 SANTA FE DINER AND TRUCK STOP – 트루스오어컨시퀀시스
오늘은 웜샤워를 구해서 잘 곳이 있기 때문인지 마음에 여유가 있어 가는 길에 포키랑 사진을 많이 찍으면서 갔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따뜻해지는 게 느껴져서 좋다. 지금까지는 뉴멕시코주 풍경이 특이 예쁜 것 같다. 요즘 댕댕이도 훈련시키면 운전할 수 있다던데 혹시 너희도 그런 거니…?
장을 본 뒤 마침내 트루스오어컨시퀀시스(Truth or Consequences, TorC)라는 신기한 이름의 동네에 도착했다. 온천이 유명해서 예전 이름은 Hot spring이었는데 1950년에 유명한 라디오 퀴즈 프로그램 'Truth or Consequences'가 자기네 프로그램명으로 도시 이름을 바꾸는 곳에서 10주년 기념 방송을 하겠다고 했고, Hot spring이 도시 이름을 Truth or Consequences로 바꾼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꾼 다음 날 이곳에서 라디오 방송을 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매년 그때를 기념하며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TorC 호스트 집에 도착하였다. 중년 부부와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평온하고 기분 좋은 대화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인도에 의료관광을 다녀온 이야기, 자녀들이 자식을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 등등.
오늘의 내 방은 마당에 세워진 카라반이었다. 포키와 아늑한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