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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19. 2023

9월 18일 월요일

9월의 두번째 월요일기

1. 손목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슬아슬하게 통증을 빗겨나가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무릎, 허리, 골반도 아프기 시작했다. 아기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안았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다보니 안 아픈 게 놀라울 정도. 필라테스에서 배웠던 갈비뼈 닫기 호흡법으로 열심히 버텨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육아는 장기전이라더니 내 몸과 체력을 갈아넣어 하는 장기전인건가.


2. 더불어 삶

매일 아침 7시, 남편은 몸을 일으켜 아기를 깨우러 간다. 나는 8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몸을 일으킨다. 둘이 지내던 때에도 남편은 늘 모든 가사일을 꽤 공평한 방법으로 나누어 감당했다. 음식은 남편이, 설거지는 내가. 쓰레기 분리수거는 남편이, 청소는 내가. 가족이 셋이 되니 감당해야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때로는 남편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기꺼이 육아를 도맡아 주기도 한다. 아침이면 아기를 깨우고 저녁이면 나를 싣고 드라이브에 나선다. 때로는 육아야말로 우리 둘이 함께 해야하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면서도 고된 출퇴근과 더불어 모든 일을 나누어 하겠다고 나서는 남편에게 한없이 고맙고 미안한 날도 있다.


게다가 나는 친정 더부살이 중이므로 남편 외에 두 명의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본인 딸의 질좋은 하루를 위해 늘 집에 들러 점심을 차려주는 엄마. 갓 지은 밥을 먹이려고 아침부터 종종거리기도 하고, 일부러 한낮 햇살이라도 받으라며 산책을 종용하기도 한다. 가급적 이른 퇴근을 일삼고, 업무태만을 자처하며 다 큰 딸과 손녀를 돌보는 귀여운 우리 엄마. 일이 바쁘거나 여행이라도 다녀올라치면 누가 손녀를 빼앗기라도 할 듯 하루종일 안고 놓아주지 않는 날들도 있다. 그 모습에서 사랑이 눈에 보인다.


저녁마다 아기의 목욕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달려오는 아빠. 아기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따뜻한 물줄기를 쏘아주며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한다. 어두워진 저녁 아기의 마지막 수유를 해주기도 하고, 아기의 옹알이에 무한 반응해주어 아기가 수다쟁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때때로 아기를 돌보는게 지쳐 아기와 함께 낮잠에 들어가기도 하는 할아버지.


온 집에서 더불어 육아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은 이것이 당연하다 느껴질 때도, 어느 순간은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먹기 싫은 밥을 먹어야 하거나, 자기 싫은 잠을 자야하거나, 아기에게 괜히 더 매진하고 싶어지는 그런 이상한 순간들. 그럼에도 아기를 겨울에서 봄,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키워낸데에는 분명한 조력이 있었다. 이제 한 달 후면 집으로 돌아가 오롯이 아기와 나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래봤자 복직까지 고작 4달 정도의 시간일 뿐이겠지만 잘할 수 있을까의 마음과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이토록 자신없는 결심과 용기없는 결정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의 삶에 집중해야지.


3. 당근마켓

임신했을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당근을 자주 들여다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건을 구입하는 바로 그 순간의 희열때문에 같은 물건도 꼭 비싸게 백화점에서 사곤 했던 내가 무려 갓 태어나는 아기의 물건을 누구의 손을 거친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당근에서 구입하게 될 줄이야.


아기를 낳고 나니 선물 받은 몇몇 물건을 제외하고는 90% 이상의 물건을 당근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아기가 아주 빠른 속도로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국 아기 물건의 최종 결정권자는 아기 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예쁜 장난감도 아기가 가지고 놀지 않으면 그대로 당근에 '미개봉새상품'으로 올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당근마켓에 상시 잠복하고 있다가 그런 좋은 장난감들을 바로 낚아채야 하는 것이 똑똑한 소비자라는 것을 이제야 체감하고 있다.


몇 개월 전, 아기의 발달보다 조금 빠르게 구입했던 장난감이 있었다. 구입해서 오자마자 앉혔다가 아기의 오열을 맛본 바로 그 장난감. 아마존 쏘서. 그렇게 한 달 정도 집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얼마 전부터 그 장난감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기 키가 훌쩍 자라면서 장난감이 조금 작아져 어쩔 수 없이 당근에 되팔아야 했는데, 가족들이 모두 아쉬워할 정도로 아기가 부쩍 잘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5개월 된 아기 아빠에게 넘기고 아기와 함께 빠이빠이를 외쳤다. 그리고 새로운 장난감을 사왔다. 니모 쏘서. 아기는 또 본체 만체. 너의 시간을 기다려주마. 마음껏 낯가리다가 충분히 즐겨주렴. 그럼 또 다음 장난감을 대령하마. 엄마에겐 당근마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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