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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Nov 07. 2017

제주도, 나를 치유하는 곳 - 1

여행의 끝에서 바라보는 나의 제주



나의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이었는데, 사실 그때는 어디 어디 갔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리기도 어렸고, 또 철모르던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 몰래 가져왔던 술을 나눠 마셨다가 여행 내내 골골댔으니, 무엇하나 기억에 남을리 없다. 아! 유일하게 기억났던 장소가 바로 지금 내가 앉아있는 성산일출봉이었는데, 술병으로 속이 안 좋은 상태에서 성산일출봉의 가파른 계단을 올랐으니 아주 죽을 맛이었겠지... 이게 내게 남아 있는 첫 번째 제주도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수학여행 이후, 나는 지금까지 네 번 정도 제주도를 찾았다. 첫 번째는 친구와 함께, 두 번째는 나혼자서, 세 번째는 엄마랑, 언니랑 같이, 그리고 아직 여행 진행중인 네 번째는 또 나혼자 왔다.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면 그게 무슨 재미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보다 나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물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즐겁고, 신나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 만한게 없다.


이번 여행은, 퇴사 후 아무것도 매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홀가분하게 혼자 떠나왔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아, 그리고 나름 테마도 있다! 삶, 죽음, 사랑, 인생에 필요한 세 가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이번 여행의 테마다. 테마가 있다고는 하지만, 여행 내내 이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눈앞에 그림같은 자연 환경이 펼쳐져 있는데,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자연 환경에 대한 모독이니까. 그래도 문득문득, 나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또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는 미션을 잊지 않으면서 여기, 저기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바로 ‘우도’다. 우도 섬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 한 바퀴를 어떵어떵 돌다오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아, 물론 부작용도 있다. 우도 여행이 끝나고 나면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감과, 햇빛에 거뭇거뭇 탄 얼굴, 그리고 다음날 내 다리에 남겨진 튼튼한 알다리. 우도 자전거여행으로 얻은 훈장쯤 되겠다.















우도는 섬마을 답게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 햇빛이 반짝 반짝 빛나다가도 어느새 구름이 몰려와 어둑어둑해진다. 그러다가 또 구름이 걷히면 언제 그랬냐시피 바닷물이 반짝반짝 금가루처럼 빛난다. 날씨가 좋건, 나쁘건 상관 없이 우도의 바닷물은 너무나 예쁘다. 바다 속 돌맹이 뿐 아니라 보말 등 해양 생물이 몇 개나 있는지를 셀 수 있을 만큼 투명한 바닷물을 자랑한다. 그런 바닷가를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 마음도 이렇게 투명하고 깨끗해서 숨기는 것 없이 다 알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상대방의 마음을 의심할 일도, 상대방이 나에게 좋다 안 좋다 표현하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으니 혼자서 마음 끓일 일이 없을텐데 하고 말이다.



참, 그리고 이번 여행에는 한라산도 다녀왔다. 지난 세 번에 여행에서 한라산을 꼭 가겠어!라고 다짐했지만, 어쩐 일인지 한라산을 가려면 주변 사람이 말리거나, 가족들이 반대하거나, 또는 눈싸래기가 싸대기를 때릴 만큼 날씨가 안 좋아 한라산 입구만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일인지, 한라산 가는 날 햇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날씨가 허락됐다!(물론, 이번 7박 8일의 여행 중에는 오늘 빼고 모든 날의 날씨가 좋았다.)


사실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성판악 코스로 오르고 싶었지만, 동네 뒷 산도 올라보지 않은 내가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일 것 같아 대신 이것, 저것 볼 게 많다는 영실코스를 택했다. 가을이라 단풍이 들었겠거니 하고 울긋불긋한 산을 기대했지만.. 영실코스에는 단풍이 거의 없었다... ㅎㅎㅎㅎ



울긋불긋한 단풍은 없었지만, 영실코스에는 기암절벽이 곳곳에 많아 진풍경을 자아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계단을 오르다 “아 이제 진짜 못 올라가겠어” 싶을 때 하늘을 쳐다보면, 그런 불평이 싹 사라진다. 파란 하늘, 회색 바위, 그리고 노란색과 파란색 페인트가 그려져 있는 계단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정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종아리랑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산을 오르게 된다.



영실코스 정상쯤에 거의 다다르면, 넓다란 평지가 펼쳐지고 그 끝에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그 거리에 백록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발 약 1400미터쯤 되는 이곳에는 구름이 걸쳐져 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수증기에 불과한 구름을 만지는 것 만으로도 내가 신선쯤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건 나만 그랬다. 이 날 함께 산을 올랐던 나의 대학시절 친구이자 이제 제주도 도민이 된 친구는 얘가 왜이럴까잉~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한 댓가로 나는 하산하는 내내 덜덜 떨리는 다리는 부여 잡고 내려와야 했지만, 그 정도 경치에 비하면 다리 아픈 것 정도야 다시 한번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엔 영실이었지만, 다음엔 백록담이다!!를 외치며 내려왔으니, 당장 이번달부터 동네 뒷산이라도 꾸준히 등산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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