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네덜란드 단편
* 작품들의 장면과 결말 포함
<하이 타이드>(2018, 클레어 주)
타리크는 가족과 떨어져, 젊은 남자가 소유한 별장에 머물게 된다. 붙임성 좋은 남자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타리크. 홀로 남은 타리크가 샤워를 하려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 남자는 수도를 고치러 와서 옷만 적신다. 머뭇거리던 타리크는 남자에게 수건과 티셔츠를 건넨다. (모호한 듯 아닌 듯,)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간지러운 대사 몇에 몸둘바를 몰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반부부터 숨을 죽이고 보게 만들었던 것은, 타리크 역 배우의 연기와 그것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카메라. 한밤중 물을 마시던 그가 잠든 남자의 실루엣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장면부터 줄곧- 인물의 내면에서 비롯된 진동이 그대로 화면으로 전해졌다. 불필요한 클로즈업은 피곤하지만, 이런 얼굴들은 클로즈업이 필요하지. 배우의 차기작이 궁금해졌다.
<아이엠 낫 어 넘버: 알레한드라>(2023, 바트 피터스)
알레한드라는 멕시코 출신 트랜스 여성으로, 네덜란드에서 난민 신분으로 살고 있다. 멕시코 트랜스 피플의 평균 수명은 35세, 알레한드라는 36세 생일이 되던 날부터 ‘여분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고백한다. 그는 ‘나는 숫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미국에서 성 노동을 하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조용히’ 사는 동안 ‘나를 잃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이해 받을 것이라 여겨 네덜란드로 넘어왔지만, 정부와 공기관은 그를 부당하게 대우했다. 반면 커뮤니티는 그를 안아주었고, ‘바쁘고 즐겁게’ 살도록 도와주었다. ‘두 가지의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알레한드라는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다큐멘터리 촬영 시작 직전, 네덜란드 정부가 내 두 번째 망명 신청을 거부했다’고 알려준다, ‘이제 법정으로 가야 한다’. 영화는 그 자신의 목소리로 알레한드라의 삶을 들여다보며,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사는 퀴어와 트랜스 피플이 맞닥뜨린 상황을 다룬다. 그 속에 있는 연대, 공동체와의 만남, 즐거움…을 포착하면서도, 서늘하게-그러나 힘있게- 현실을 직시하며 마무리한다.
<그들의 아침>(2019, 조르디 비날다)
시놉시스를 읽지 않고 관람했고, 설명을 최소화하고 각 인물의 일상과 표정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정황으로 전개를 파악했다. 위탁 가정의 하루일 수도, 네덜란드이기에 발생하는 다른 특수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고 추측했는데, 전자가 맞았다. 그러고 보니 원제가 ‘Foster’. 게이 커플과 두 소년이 사는 위탁 가정, 동생이 입양을 가는 날의 이야기다. 그들 사이 비치던 위화감은 곧 찾아올 이별에 대한 불안과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평범한 아침 인사와 식사,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헤어짐에 숨기지 못하는 아쉬움, 눈물, 추억. 앞서 고성을 주고받았던 아빠와 아들은 울며 포옹한다. 잠깐 머무르는 곳으로 여겨지는 위탁 가정의 구성원이 그 지속성이나 함께 했던 시간의 길이와는 상관 없이 ‘가족’일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투모로우 윌 비 배러>(2023, 요텀 콕)
딸은 무언가를 야심차게 인쇄한다. 엄마의 생일 선물이다. 초를 꽂은 컵케이크로 모닝콜을 선사하는 딸, 기뻐하는 엄마, 친밀한 모녀지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딸이 제목에 ‘페미니즘 비평’이 들어가는 저작 초고를 선물로 건네자, 분위기는 미묘해진다. 엄마는 별로 기뻐 보이지 않고, 딸은 이를 감지하고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낸다. 허나 여전히 사이 좋아 보이는 모녀. 함께 장을 보러 나간 그들이 엄마의 지인을 만나자, 분위기는 다시 미묘해진다. 엄마는 어쩐지 딸의 성적 지향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듯 보이고, 딸은 자신이 ‘여자친구’와 헤어졌음을 강조한다. 영화는 끈끈해 보이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순간들에 집중하는데, 그 긴장감을 얇은 수면 아래 두고 유지하는 대신 화면에 금방 터트린다. 그들은 ‘대화하는’ 가족이고, 특히 딸 요나는 싸우기 싫어 감정을 숨기기보단 정면으로 꺼내는 자다. 때로는 비꼬는 투로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가 서운함을 말하고 엄마가 거기 답하며 상호작용이 이루어졌기에, 엄마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엄마는 백인 이성애자 여성이고 나는 흑인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단순히 마이너리티를 전시하는 빈 언어가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여러모로 다르나, <딸에 대하여>가 생각나기도.
+ 요나 역 배우의 미소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첫 장면부터 감탄했다.
<섹스 사이런스>(2019, 맥스 쿠첸로이터, 포피 산체스)
네덜란드 볼룸 문화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성적, 인종적 소수자들이 모여 있는 볼룸, 퀴어한 몸을 뽐내는 대회가 열린다. ‘성’을 나누는 항목이라도 ‘female figure’, ‘male figure’라는 모호한 묶임성이지, 여성/남성, 혹은 여자/남자의 구분이 아니다. ‘섹스 사이런’은 볼룸 경쟁 카테고리 중 하나로, 신체의 독특한 섹시함을 평가한다. 영화는 참가자 네 사람을 인터뷰하고 준비 과정을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해서 참가하게 되었고 왜 이것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 스스로에게 또 자신을 보는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담는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섹스 사이런’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가 갈린다고 말한다. ‘만점, 아니면 0점.’ 몸매나 피부색, 성 정체성이나 지향성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마른 흑인 남자가 섹시하다는 것‘, ’마르지 않은 여성형 몸이 섹시하다는 것‘은 중요한데, 외부의 시선보단 참가자 스스로의 자신감, 그리고 대표성과 관련이 있다. ‘사이렌’, 매혹적이고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이단적’ 존재들, 그들은 기꺼이 그것이 되려 한다.
“내가 관객이라면, 참가자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달아오르게 만들기를 바랄 것이다”
“좋든 싫든, 당신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