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좀 자면 어때서

고양이와 자면서 배운다

by 스페라

낮잠 좀 자면 어때서?

하루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혼나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휘청거리는 것도 아닌데

낮에 잠을 자는 건 참... 안된다. 뭔지 모를 허비, 죄책감까지는 아니지만 그 비스므리한 감정들이 나를 재우지 못한다. 너무 피곤해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질 때도 자는 건 왠지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스티븐 코비는 시간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중요하고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

그리고 진짜 성장은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한 일, 급하지 않은 일로 구분해서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에게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까?


나의 하루는 중요 여부를 떠나서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많은 일들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를 생각해 보면 딱히 어떻게 되지도 않는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만두면 회사가 무너질 것 같지만 회사는 잘 굴러가고,

내가 죽으면 세상은 끝날 것 같지만 나는 금방 잊혀지고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하지만 우린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믿음, 확신 때문에 오늘도 바쁘게 산다.


스티븐 코비가 말하는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수없이 많이 하면서.


나 또한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매일 반복하면서 '삶'이라는 걸 산다.

아닌가?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인가?


도대체 뭐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만약,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살겠다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오늘 당장 죽는다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순위를 정하고 먼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면서

기계처럼 살겠는가?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닐 텐 데..

그게 참 안되니 나는 부처처럼 열반에 오를 수도 초탈을 할 수도 없다.


낮잠 한번 안 자고 바쁘게 사는 수밖에.


그런데 이 녀석 그러니까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녀석은 잔다.

바람이 불면 창밖을 보고 명상도 하고,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책도 안 보니 볼 거라고는 자연밖에 없다.

도시 한가운데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는 창문으로 뭘 그렇게 볼 수 있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단지에도 바람은 분다.

햇살이 가득하기도 하고, 비가 주룩주룩 오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계절마다 모습이 변하고, 날아다니는 새들도 구름도 자꾸자꾸 바뀐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태양이의 모습을 보면 나는 너보다 생각 없이 사는구나 싶다.

하늘 한번 바라보지 않고, 잠시 쉬어 바람 한번 느껴보지 않고 바삐 움직이는 내가 너보다 생각이 깊은 척

사는구나 싶다.

'생각'없이 사는 삶은 삶이 아닌 것을 잊은 채.


당신은 오늘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설마 점심은 뭐 먹지? 저녁은? 오늘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거 사야 하는데...'가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명상 후 거실 한가운데 드러누워 낮잠 자는 모습을 보면, 녀석의 여유로움에 멈칫할 때가 있다.

좀 쉬었다가 하라는 신의 계시 같기도 하고,

"쉬거나 좀 주무셔요~ 이렇게 잔다고 큰일이 생기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책의 한 줄 같기도 하다.

에라 모르겠다.

뭐 그렇게 아등바등 2025년 현재를 사는 고양이나 나나 똑같은 삶인 것을 나는 왜 저 녀석처럼 못 사는 거지?

자자. 자자. 그냥 나도 한번 늘어지게 자보자!! 하고 태양이 옆에 누워 잠을 잤더니 밤이 되었다.


저녁을 차려야 하는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있는 남편과 아들을 보고는 "차려줄 건데... 깨우지?" 했더니 자는 사람을 뭘 깨우냐며 일어났으면 밥 먹으라고 남편이 그릇에 밥을 퍼주었다.

한 숟가락 떠서 먹는데 태양이도 밥을 먹고 있었다.

아,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배가 고프면 먹으면 되는 것처럼.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그렇게 살면 될 것을.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 따지느라 허비할 필요가 없는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나?


고양이의 하루를 지켜보면 답이 술술 나온다.

부처가 자연에서 답을 찾은 것처럼...

삶은 단순하고, 단순해야 '삶' 임을... 깨닫게 된다.


태양이의 하루가 나의 '자연'이고 '명상'이 되어가고, 우린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함께 낮잠 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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