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발바닥에 땀 흘리지 않는 날을 위하여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

by 스페라

고양이는 환경 변화에 극도로 민감한 동물이다.

영역이 바뀌거나 냄새, 소리, 물건의 위치가 변하면 위험 신호로 즉각 반응한다.

그래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소리, 같은 손길에 안정감을 느끼고 예측 가능한 루틴을 좋아한다.


나는 환경 변화를 극도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영역이 바뀌거나 냄새, 소리, 물건의 위치가 변하면 설렘의 신호로 즉각 반응한다.

그래서 매일 다른 공간, 다른 소리, 다른 공기에 안정감을 느끼고 예측 불가능한 루틴을 좋아한다.


그런 우리가 만나, 예측가능하되 가능하지 않은 그 중간쯤을 찾고 있는데 과연 가능할까?






첫 시도로 '늦은 밤 드라이브'를 선택했다.

멀리 가고 싶었지만 태양이의 적응을 위해서 10분 정도 도로를 달려보기로 했다.


이동가방에 태양이를 옮겼다. 별 탈없이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여기저기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에 타서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내가 안았다.

집이었다면 조금 안겨 있다가 벗어났을 텐 데, 차라서 그런지 잘 안겨 있었다.


태양이가 영역 동물인 건 알지만, 매일 우리만 나가고 집에 있는 게 내 입장에서는 늘 짠했는데

이렇게라도 바깥공기를 쐬주니 설렜다. 물론 내 욕심이라는 건 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달렸는데, 태양이가 창문밖을 정신없이 보면서 간간히 울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괜찮아, 드라이브하는 거야, 놀러 나온 거야, 저게 나무고, 강아지도 있네 등등 말을 걸어주었는데

내 목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품에서 벗어나지 않고, 창문밖을 이리저리 보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발도 만져주는데 어라? 발바닥에 땀이 난다.


사람은 온몸에 땀샘이 있지만, 고양이는 발바닥에 땀샘이 집중돼 있다.

그래서 발바닥으로만 땀을 흘리는데, 발바닥으로 흘리는 땀은 체온 조절보다는 감정 반응용으로

긴장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흘린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태양이 발바닥에 흥건히 묻어 있는 땀!

녀석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입양 왔으니

그 기억 때문에 더 긴장한 게 아닐까 싶다.


괜히 데리고 나왔나?...


발바닥에 땀을 닦아주고, 쓰다듬고 뽀뽀도 해주면서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들 녀석 품에 안겼다.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기 같이...


곧 아들 품에서 빠져나와 거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더니 생전 듣던 보도 못한 짜증 섞인 소리를 냈다.


고양이 울음은 참 다양하다.

사람에게 들려주는 '야옹'부터, 사냥 본능이 깨어날 때 나오는 '채터링'까지.

기본적인 소리 외에도 기뻤을 때, 흥분했을 때, 실망, 짜증 사람이 표현하는 대표적인 감정들을

고양이는 다양한 울음으로 표현한다.

들으면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지금 감정이 어떤 건지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태양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짜증 섞인 소리를 두어 번 내길래, 사과의 뜻으로 간식을 줬더니 좋다고 먹는다.

먹고 나서는 편안하게 그루밍을 하고 엉덩이를 토닥거려 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괜찮아졌나 보다.




며칠 전 친정식구들이 집에 왔다.

태양이가 오고, 낯선 사람이 처음 오는 거라,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내가 알기론 겁이 많은 고양이들은 손님이 오면 숨는다고 했는데, 다행히 태양이는 숨지 않았다.

가족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냄새를 맡고, 보통 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안겨 있고 싶은 사람한테는 살짝쿵 안겨 있다가 빠져나가기도 하고, 싫은 사람이 안으면 발로 밀어냈다.

형부가 간식을 주니 받아먹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태양이 집에 처음 갔을 때도 숨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태양이는 자기 영역에서는 쫄지 않는다.

다만 공간이 변할 때는 약간 긴장을 하는 것 같다.


차근차근 적응하면 괜찮을까?...


고양이를 두고, 여행을 다니는 꿀팁을 배웠다.

친구말에 의하면 물과 밥, 화장실을 여러 군데 두면 2박 3일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데리고 다닐 수도 없을뿐더러,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뭐가 낫다는 걸까?


물리적으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마음은 어떨까.

고양이에게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있을 텐데...


우리가 하루 종일 밖에 나갔다 오면 평소에 부리지 않는 오만 애교를 다 부린다.

왜 이제 왔냐는 듯이 쫓아다니고 안아달라는데 며칠을 혼자 두는 건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많은 집사들이 긴 여행을 포기하고 산단다.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고양이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나를 알아가듯, 집사로서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은 변한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변한다고 믿는다.


산도, 물도, 세상도...

온 우주가 매일의 변화 속에 사는데 한낱 인간이 뭐라고, 인간의 마음이 뭐 그렇게 꼿꼿하다가 변하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인데, 세월도 흐르면서 변하는데 왜 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람 마음에 '절대'란 없다.


절대가 없는 그 마음속에서 나는 태양이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지 궁금해하며 변할 것이다.

너도 나도 행복한 파라다이스 같은 그곳.

그 환상의 섬이 우리 곁에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보다 조금 더 다정한 내일을 기대해 본다.


발바닥에 땀 흘리지 않는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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