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거점과 손실회피효과 (loss aversion effect)
'검소한 손흥민'이라는 밈(meme)이 있습니다.
주급이 약 3억 원 정도로 (월급 12억) 알려진 손흥민 선수의 옷, 액세서리, 월세 등을 월급 300만 원의 직장인으로 치환해서 계산한 글에서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손흥민이 입은 80만 원짜리 점퍼가 직장인에게는 2천 원, 240만 원짜리 코트는 6천 원, 1억이 넘는 시계는 30만 원, 3억이 넘는 스포츠카는 겨우 100만 원도 하지 않는 자동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느끼시기에 손흥민 선수는 검소한가요?
1700년대 스위스의 다니엘 베르누이는 사람들이 돈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 돈이 주는 효용감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00만 원을 가진 사람에게 10만 원의 추가 수입이 주는 만족은 200만 원을 가진 사람에게 20만 원을 얻을 때의 만족과 동일합니다.
이는 만족뿐만 아니라 손실로 인한 실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선 '검소한 손흥민' 밈은 베르누이의 주장과 같은 궤에서 손흥민 선수의 소비를 바라본 사례입니다.
베르누이의 전통적인 경제학적 주장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문득 그럴 것 같지만 베르누이는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다른 예로 생각해 보도록 하죠.
같은 그룹의 다른 계열사에 근무하는 비슷한 연차의 연봉이 7천만 원과 3천만 원인 두 직원이 동일하게 10%의 연봉 상승률을 제안받았습니다.
베르누이의 주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동일한 비율의 상승률을 제안받았으므로 동일한 수준의 만족감, 효용감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연봉이 3천만 원인 사람은 이 인상률에 불만족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베르누이의 주장에는 준거점(reference point)이라는 개념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준거점(reference point)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이나 성과를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특정 기준점입니다.
* 준거점과 앵커링 이론에 대한 설명은 앞선 연재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화 링크>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준거점을 설정하고 평가할 때 절대적인 수치가 아닌 상대적인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앞선 연봉 인상 사례에서 연봉 3천만 원인 직원의 준거점은 같은 연차의 연봉 7천만 원인 다른 직원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연봉 7천만 원인 직원과 동일한 연봉 10% 인상 제안은 공평한 것이 아니라 두 직원 사이의 Gap을 4천만 원에서 4천4백만 원으로 늘리는 참담한 제안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준거점을 기준으로 한 이익이 아니라 손실입니다.
주식 투자를 할 때 10만 원의 수익이 주는 기쁨보다 10만 원의 손실이 주는 고통이 훨씬 큽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적인 관점인 베르누이의 주장에 따르면 두 감정의 크기도 동일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10만 원의 손실이 주는 고통은 우리가 주식의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어리석은) 추가 투자를 유도하고, 손절 타이밍도 놓치게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손실이 초래하는 괴로움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2배의 이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도의 한 회사가 다음과 같은 인센티브 전략을 펼쳤습니다.
A 그룹 : 월간 목표 달성한 직원에게 인센티브 지급
B 그룹 : 인센티브를 먼저 지급하고 목표를 미달성한 직원들은 다음 달 급여에서 삭감
A 그룹은 40~45%의 인센티브 목표 달성율을 거둔 반면 B 그룹은 70%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이미 받은 인센티브를 빼앗기는 것은 직원들의 무의식에 손실로 작동했습니다. 손실 회피가 이익 추구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동한 사례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손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뇌을 자극 합니다.
쿠팡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죠.
쿠팡을 실행하면 첫 화면에 이런 내용의 팝업이 뜹니다.
두 팝업은 쿠팡 로켓프리시 무료 배송을 '시크릿하게'(좌), '특별히 선정'하여(우) 지급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두 개의 팝업은 당첨된 혜택이 '곧 종료'된다며 손실을 강조하게 작성되어 있습니다.
고객이 우연히 얻은 이득인 '로켓 프레시 무료 배송'은 원래 가지고 있지 않던 혜택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만료되더라도 본질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혜택을 지급받은 순간 고객의 준거점은 무료 배송이 가능한 상태로 변화되고 다시 배송비가 발생되면 이제 손실로 느끼게 되는 것이죠.
Past : 유료 배송
As is : 시간제 무료 배송 -> 준거점으로 설정됨
To be : 유료 배송 - >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이지만 손실로 느낌
100만 원의 수익을 내던 계좌가 수익률 0%가 되면 본질적으로는 투자금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100만 원을 손해 본 기분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타임 세일도 고객의 같은 무의식을 자극합니다.
저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할인을 제공받기 어렵죠.
할인 종료로 인한 손실은 타이머를 통해 고객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전달됩니다.
이렇게 만기가 있는 혜택은 상시 제공되는 할인과 혜택보다 고객의 무의식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쿠팡은 늘 상시 무제한의 혜택이 아닌 기간이 한정된 혜택을 지급합니다.
다른 사례를 볼까요.
무신사와 당근 두 플랫폼에서 알림 설정을 끌 때 나오는 팝업입니다.
무신사는 알림을 동의했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익)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는 반면 당근은 중요한 정보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손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저 간 상호 중고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당근에서 유저에게 구매/판매 메시지를 알려줄 수 있는 알림 꼭 필요한 설정일 것입니다.
두 회사의 내부 데이터는 알기 어렵지만, 추정컨대 손실을 강조하는 당근의 UX 라이팅이 무신사보다 알림 끄기 버튼을 누르지 않게 하는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손실 회피 효과를 이용한 기업의 사례는 매우 다양합니다.
Uber 고객에게 "지금 예약하지 않으면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hellotickets은 "지금 보고 있는 상품은 곧 매진될 예정"이라고 알려줍니다.
Apple은 사용 중 발생할 수 있는 고장이나 사고로부터의 경제적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AppleCare를 제안합니다.
비싼 수리비가 발생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는 워런티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합니다.
병원은 수술의 실패 확률보다 성공률을 강조하지만, 보험사는 수술의 실패와 같은 사고를 강조합니다.
손실회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과하지 않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허황된 손실을 강조하더나, 실제로 발생되지 않는 손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기업은 고객의 신뢰를 잃습니다.
"우리 학원 강의를 듣지 않는다면 당신은 대학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라던지 "경쟁사 제품을 먹는 고객들은 전부 암에 걸릴 것입니다."라는 식은 극단적 손실은 고객의 신경을 긁는 역효과만 일어납니다.
저도 더 이상 쿠팡의 무료배송 팝업을 보면서 손실을 우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쿠팡을 실행해도 저 팝업의 혜택은 똑같이 제안될테니까요.
지난 글 한 줄 요약 : 외부의 자극 (소리, 냄새, 이미지, 단어 등)에 의해 이후의 의사결정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점화효과 (Priming Effect)라고 하고 이 점화 효과를 유도하기 위해선 기폭제(Trigger)가 필요하다.
이번 글 한 줄 요약 : 사람들이 상대적 차이를 통해 준거점을 설정하여 자신의 이익과 손실을 평가하는데 인간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준거점을 기준으로 한 이익이 아니라 손실이다.